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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May 02. 2023

[군대 면제, 손흥민은 되는데 BTS는 안 되는 이유]

마이클 샌델의 관점에서 -공리주의와 공동체주의 적용비교 

강제 징집제를 고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군입대 제도 안에서 누군가는 면제를 받는다는 것은 강제로 군대를 갈 수밖에 없는 절대다수의 한국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매우 예민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군 면제가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매우 제한적이고, 까다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만 가능함을, 대다수의 국민들 또한 동의하고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몸이 좋지 않아 군인으로서 수행해야 할 상당의 육체적 훈련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군 면제에 있어서 최우선이 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군 면제 제도에 있어서 BTS는 항상 뜨거운 화두였다. 사실, 정작 당사자들은 2023년 현재 한 명씩 입대를 하고 있는 중이고, 본인들이 적극적으로 군 면제를 요청한 것 또한 아니기에 이렇게 논쟁의 대상으로 오르는 것 자체가 본인들도, 혹은 그들을 믿는 아미들 또한 원하지 않는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정치인들이 끊임없이 BTS 이슈를 꺼내 들었고, 세계적인 스타로서, 국가의 위상을 높이는데 누구보다 큰 공을 세웠음에도 군대를 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 또한 사실이기에 부득이하게 다시 BTS를 소환하여 사례로 삼아 한국의 군 면제 제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국민 모두가 납득할 만큼의 군 면제의 사례로는 축구스타 손흥민을 들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이자, 세계의 가장 큰 축구리그인 영국에서도 최고의 선수임에 틀림없는 손흥민이 군대를 면제 받았다는 것에 불만인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 만장일치는 있을 수가 없다. 결국 스포츠인 축구종목에 대해 ‘그저 공차기 놀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국민 또한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기가 좋아서 하는 게임을 잘한다고 군 면제를 해주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불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손흥민이 그래서 군 면제를 받기에 자격이 충분하다면, 이제 눈을 BTS로 돌려보자. 손흥민이 최고의 축구스타라면, BTS는 최고의 한류스타이고,

손흥민이 한국의 위상을 높였다면, BTS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 전 세계의 아미들 덕에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름과 문화가 널리 퍼진 것을 부인할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군 면제의 사유가 국가의 위상이자 파급력이라면 BTS가 군대를 가는것이야말로 부당한 처우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면제를 받지 못한 것일까?

여기서부터 나오는 근거는 이 글을 쓰는 필자의 견해가 아니니 오해하지는 말자. 지금 이 글은 일종의 사고실험이며, 이론의 적용연습이다. 즉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등장하는 ‘공리주의’와 ‘공동체주의’의 적용을 통해서 어느 정도 현재의 상황, 즉 손흥민은 받은 혜택을 BTS가 왜 못받았는가의 나름의 설명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우선 공리주의, 행복과 고통이라는 감점을 정의의 기준으로 삼고, 행위판단의 적절성으로 판단하는 입장에서 보면 방금 위에서 살펴본 국가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 부분에서 손흥민과 BTS는 차별화되지 않는다. 즉 축구로 주는 행복과 음악으로 주는 행복이 뭐 그리 다르겠는가? 축구팬들에게는 최고의 기쁨을, 음악팬들에게도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는 슈퍼스타들이기에 공리주의 기준으로 따져보면 BTS는 군면제를 받아야 마땅하다. 즉 만약 대한민국 정부가 공리주의에 기반해서 군 면제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BTS가 지금 군입대를 하는 것은 상당히 부당한 처사다. 경제적 유발효과까지 따져보면 손흥민이 불러일으키는 경제적 가치보다 더욱 클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왜?

BTS는 군대를 가야만 했을까?

그 이유는 좀 더 복잡한 샌델의 입장, ‘공동체주의’ 논거를 적용해봐야 한다.

샌델의 공동체주의는 국가의 단순한 이익이 우선이라는 개념이 아닌, 영광과 명예, 그 공동체의 본래 목적에 맞는 행위에 관심을 둔다. 즉 공리주의가 경제학적으로 국민의 행복량을 수량적으로 계산하듯이 카운팅을 할 수 있다면 공동체주의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얼핏 공리주의의 ‘최대다수 최대행복’ 이나, 공동체주의의 공동체 우선에 대한 상식이 왠지 같아 보이는 것은 당연한 사고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두 철학은 결코 같지가 않다. 우선 공리주의는 애초에 공동체를 ‘실재’한다고 전제하지 않는다. 즉 공리주의의 행복의 계산 단위는 ‘개인의 행복량’에서 시작한다. 그 행복량을 한 명, 한 명 모두 더한 것이 공동체의 전체 행복이라고 본다. 반면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그 자체가 ‘실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즉 대한민국이 실재하는가? 라고 물을 때, 국가는 국민의 집합체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 공리주의고, 국가가 있고, 조국이 있기에 나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하자. 즉 공동체는 구성원 개개인을 모두 더한 값 그 이상의 카운팅 할 수 없다는 영광스럽고, 숭고한 그 무엇이 된다. 즉 공리주의는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들기는 효율주의에 가깝다면 공동체주의는 그러한 계산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공동체의 그 무엇! 조국의 독립, 민족의 자부심, 가문의 영광 등등에 중점을 둔다.

그렇다면 다시 한국의 군 면제 제도를 살펴보자. 잘 생각해보면 한국의 군 면제는 주로 스포츠 스타들이 해당되는데, 아무 스포츠스타나 모두 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들어 손흥민이 군 면제를 받은 것은 세계 최고의 축구리그인 영국리그의 스타여서가 아니다. 만약 손흥민이 영국리그에서 지금보다 더한 활약을 해도, 즉 메시를 넘어서는 스타가 된다고 해도, 올림픽과 같은 국가 대항전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결코! 군 면제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손흥민에게 있고, BTS에게 없는 것이 무엇인가를 따져봐야 하는데 그게 바로 ‘국가대항전’인 셈이다. 보통 올림픽이나 아시아게임이 해당된다. 손흥민 또한 올림픽에서는 계속 메달권의 운이 따르지 않다가 아시안게임, 그것도 늦은 시기에 겨우 메달권에 들면서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자칫하면 손흥민도 모든 국민의 안타까움과 함께 BTS처럼 군입대를 할 뻔 했고, 그의 커리어에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었다.

결국 ‘국가 대항전’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한다. 올림픽을 일종의 국가별 전쟁의 상징적 시뮬레이션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세계인의 스포츠 대회가 생기기 이전, 국가별 갈등은 쉽사리 전쟁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왔었다. 예상해 보건대, 전쟁에서 승리한 국가의 국민은 그 어떤 때보다 사기가 드높고, 애국심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을 것이고, 패전국의 국민들은 그 어떤 때보다 수치스럽고, 국가에 대한 사기도 크게 떨어졌을 것이다. 즉 전쟁은 국가의 존재 이유와 정당성을 국민들에게 확인받는 어쩌면 중요한 관례 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핵전쟁이 가능해진 시대에 더 이상 전쟁은 불가능하고, 소규모 전쟁으로 국가의 정당성을 확인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다. 결국 세계인들이 모이는 스포츠의 장에서 서로 피를 흘리지 않고도, 각 국은 대표를 선발해서 공정하게 시합을 겨루고, 승리한 국가는 기쁨을 만끽하는 대체재의 역할을 스포츠가 나름 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올림픽 시즌만 되면 국민 전체가 평소에는 관심도 없는 스포츠 종목에도 열광하게 되고 핏대 높여서 응원하는 것이다. 종목 자체는 흥미가 없어도, 국가와 국가가 맞붙는 것 자체는 긴장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은 역사적으로 갈등관계가 있던 일본과 같은 나라와의 경기에서는 양국 국민 모두가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투영한다. 실제로 한일전에서 이기는가, 지는가는 선수들만의 승패 문제가 아님을 우리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듯이 말이다.

결국 대리만족.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은 전쟁을 대체한 국가별 상징적 경쟁에 대한 국민들의 대리만족을 이끌어낸다. 한일전, 특히 축구 경기에서 한국이 승리할 때의 짜릿함과 그것을 넘어 밀려오는 태극기의 숭고함과 애국심에 어찌할 바를 모른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가? 반대로 한일전에서 패배할 경우, 밀려오는 수치감을 국민들이 대신 느끼면서 그 순간부터 며칠에서 그 이상의 시기를 치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국민들 또한 얼마나 많을지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이를 단순히 공리주의처럼 계산하여 얼마만큼 행복했고, 얼마만큼 고통스러웠다고 치부할 수는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면, 한국에서 군 면제를 해주는 기준은 바로 ‘공리주의’가 아닌 ‘공동체주의’다. 국가공동체의 영광과 명예를 드높여 주는 국가 대항전에서의 승리가 어쩌면 군복무를 통해 전쟁을 치르는 군인들이 가져올 영광과 명예와 동일시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전쟁이 없는 평화시기이지만, 군인들은 언제나 전쟁을 전제로 입대를 하고, 군생활을 하며, 전쟁을 대비한다. 만약이라도 전쟁이 나고, 그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바로 그 군인들이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감정이 국가대항전 스포츠를 통해서 승리하는 선수들이 국민들에게 선사하는 감정과 동일하다고 본다면, 왜 손흥민이 군 면제가 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한편 #BTS 또한 국가의 명예와 영광? 바로 공동체주의가 강조하는 그 부분을 충분히 감당하고도 남지 않냐는 반박이 생길 수 있다. 맞다. 왜 그 효과가 없겠는가. 그들 덕분에 이제는 외국에 여행다니는 한국 관광객들이, 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한국동포들이 반사이익으로 좋은 대우를 받을 때의 그 자부심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가치임에 분명하다.(한국 정부가 1억달러를 풀어서 노력한들 외국인들로 하여금 한국인들을 좋아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정부가 그 무슨 노력을 인위적으로 한들 BTS가 한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아미들에게는 안타까울 수 있으나, 음악 장르, 한류 음악이라는 장르는 스포츠와 같은 승패가 명확한 국가대항전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군면제는 일종의 전쟁을 패러디한 국가적 경쟁의 장이라면, 음악은 전 세계를 하나로 모이게 하는 화합의 장이다. 어찌보면 더 좋은 효과가 아니겠는가 싶겠으나, 애국심, 공동체의 영광과 명예라는 상당히 애매한 그 무엇에 대해 그나마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스포츠 경기인 셈이다. 즉 그 역할을 스포츠는 할 수 있는데, 음악가들은 할 수가 없어서,(사실 능력이 없는 게 아니라, 그런 여건, 스포츠의 룰이 적용될 수 없는 현실적 한계 때문에) 군 면제라는 예민한 문제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적용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BTS가 군대를 못가는 이유는 기준의 문제이기도 하다. 스포츠라면 동메달, 은메달, 금메달 획득이라는 명확한 경쟁에서의 승리가 확인되지 않는 한, 아무리 많은 수익을 거두고, 국가의 이미지를 개선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해도 그것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애매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만약 BTS를 면제시켜준다고 하면, 그 이전의 최초의 월드 가수라고 할 수 있는 싸이는 왜 두 번이나 군입대를 했어야 하는지, 혹은 BTS와 동시대에 한류스타로 이름을 날리는 보이그룹들 중 어떤 팀까지 면제를 줘야 할지 과연 그 기준을 누가 판단할 수 있을까. 결국 승패가 명확하고, 국가별 경쟁이라는 올림픽과 같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지금의 답변을 통해 속이 시원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한국이 ‘공리주의’의 원리가 아닌 ‘공동체주의’에 입각한 군 면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을 분석한 것일 뿐이고, 그 적용에서도 기준의 명확함이라는 형식이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미와 같은 한류팬들 입장에서는 불만일 수 있겠다. 무엇보다 군면제 특혜를 주기 위해서 메달 획득의 순간, 축구경기 끝나기 1,2분 전에 후보선수를 잠시라도 뛰게 해서 결국 군면제를 주는 상황을 고려해보면 여전히 BTS가 군대를 입대해야만 하는 이유는 상당히 무력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손흥민이 면제 받는 것은 국민들 다수도 바로 납득하지만, 아무리 축구 국대 선수여도 이름도 잘 모르는 후보선수가 필드에서 1,2분 잔디를 밟았다는 그 이유만으로 면제를 받는 것은 왠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891702

사실, 지금 이러한 정치철학의 이론을 적용하는 가운데서도 정작 필자가 가장 분노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면제받을 자격이 없는 한국 사회 기득권층들의 작태일 것이다. 솔직히 아무런 면제 사유도 없음에도, 돈이 많다는 이유로,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서류를 조작하고, 없는 질병도 만들어 부동시와 같은 말도 안되는 사유로 군 면제를 받은 자들이 한국 사회의 지배계층이라고 떵떵거리는 것이야말로 부조리 그 자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한국사회는 군대 강제징집제가 정말 맞는지, 공정한지에 대해 국민들은 되물어야 한다. 기득권 자녀들은 다 빠져나가는 현실에서, 힘없는 일반 서민들의 자녀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를 오히려 손흥민이나 BTS같은 훌륭한 젊은이들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가장 심각한 군 면제 비리부터 완전히 척결이 되고, 최고권력자의 자녀도, 최고 부자의 자녀도 당연히 군입대를 하는 상식이 이뤄질 때 BTS 군 면제 논쟁도 실질적 의미가 있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최소한 BTS 군 면제 여부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국민들이라면, 대한민국 권력층의 자녀들 군 면제에는 부디 최소 10배 이상의 분노를 낼 줄 아는 사회가 공정한 민주사회의 출발점이자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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