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부영이'를 떠나보내며

-반려견 화장과 장례

by 시나페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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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는 반려견이 두마리가 있었다.

사진에 있는 검은색 푸들이 '순영이' 하얀색 비숑이 '부영이'다.

순하고 영리하다는 뜻으로 순영이로 이름짓고나니

그 이후에 들어온 하얀 비숑의 이름을 고심하다가 돌림자가 좋게다고 해서

'부영이'로 지었다.


순영이가 2017년에 처음 우리집에 왔고

부영이가 2019년에 좀 더 늦게 들어왔다.

순영이는 두번이나 이미 파양당한 상태라 분리불안이 강했고, 그래서 지금도 세번째 주인인 우리와 10년째 살고 있어도 불안도가 있는 편이다. (초반에는 외출만 하면 하울링을 해서 익숙해지기 까지 3개월 정도는 혼자두고 외출도 못했었다)

부영이는 일명 개공장! 뜰창에서 평생을 살면서 강제로 새끼를 낳기만 하다가, 동물구호단체에 의해 자유를 얻고, 그 이후 우리집에 오게 되었다. 비숑의 특징인지는 모르겠는데 부영이의 삶만 생각하면 오히려 순영이보다 더한 트라우마가 있을 것 같았으나, 오히려 해맑다고 해야 하나?? 순영이보다 더 순하고, 귀여웠다.(하긴 부영이는 안기는 것을 싫어했다. 오래 안겨있는 적이 없고,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했는데, 이 또한 과거의 어떤 떤 공포가 각인된 것은 아닌가 싶다) 여튼, 성격도 밝고, 처음부터 순영이와 놀고 싶어했는데 정작 예민한 순영이는 부영이를 경계했다. 부영이가 떠날때까지 순영이는 부영이를 싫어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둘은 전혀 친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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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숑하면 엄청 크고 동그란 헤어스타일이 특징인데, 정작 우리 부영이는 개공장에서의 고생때문일까? 눈 주변에 짓물이 정말 많이 나왔고, 악취가 날 정도라 부득이하게 예쁜 헤어스타일보다는 위생적인 스타일로 바리깡으로 빡빡 밀어줄때가 많았다.


image.png 항상 눈과 입주변이 더러워져서 바리깡으로 자주 밀어줘야 했다.
image.png 그리고 빡빡 등까지 밀면, 저렇게 검고 붉은 점들이흉하게 많아서 밝에 나갈때는 옷을 입혀야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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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png 부영이의 전매특허 자세인데, 나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항상 멀찌감치 떨어져서 쳐다보고 있다.

아, 그리고 뒤늦게 알게 된 부영이의 아픈 부분이 또 있었는데, 일자로 똑바로 걷는 것이 어려웠다. 거의 티가 안나서 한참 후에 알았는데,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목줄을 풀고 놀게 놔둬보니, 자꾸 한 쪽으로 방향이 쏠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산책 나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해서 목줄만 꺼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순영이나 부영이 둘다 할머니 나이뻘이라

체력이 딸릴 만도 한데, 부영이는 항상 강아지 처럼 발랄한 느낌이었고,

순영이는 이 기세에 눌려 산책도 늘 하는둥 마는둥 했다. (아이러니 한 것은 부영이가 떠난 지금 순영이는 혼자서 산책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순영이에게는 부영이의 존재가 지옥이었나보다. ㅠㅠ )


부영이가 떠난 지 벌써 반 년이 지나간다. (25년 8월에 떠났다. 글쓰는 지금은 26년 3월)

보내고 나니, 정작 부영이와 함께 떠난 여행이 한번도 없었다.

사실 부영이 오기전 순영이는, 1박 여행이든, 3박여행이든 같이 한 적이 많았다. 정작 불안증세로 차를 타도 난리를 떠는 순영이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은 고역이었다. 제주도에 비행기도 태워봤는데 역시 개고생 ㅠㅠ(당시만해도 애견동반 음식점이 많지 않아 3박4일 동안 대부분 편의점 음식을 사먹어야 했다.)

그 후로 순영이는 가족여행에 데려가지 않게 되었는데,

그 이후 들어온 부영이도 같이 못가게 된셈이다.


그래서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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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동네공원이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순영이,부영이 데리고 김밥과 돗자리 챙겨서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소중하게 느껴졌다. 부영이가 정말 신나했었는데. ㅠㅠ

이 때가 부영이 떠나기 3개월 전이었다.


부영이의 배에 종양처럼

혹들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 혹들이 점차 커져갔고,

8월 중순부터 갑자기 방향을 못잡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원을 크게 돌았다.

그리고,

거품을 물고, 간질처럼 발작을 했다.

상태가 워낙 안좋아서 하루 이틀을 못버틸것만 같았었다.

발작증세가 일어나면 1분 정도 거품을 물고, 온 몸을 떨고 힘들어했는데

다시 증세가 가라앉으면, 힘이 다했는지 푹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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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변훈련만큼은 평소 완벽했던 부영이였기에,

스스로 실수하는 것을 용납하기 싫었던 것 같다.

제대로 걷기도 힘든데, 방향도 잡히지 않는데

어떻게든 평소 볼일을 보는 화장실로 이동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소변도, 대변도 컨트롤 되지 않는 상황에

부영이 쿠션을 매일 세탁해야 했고,

기저귀에 지린 오줌과 대변으로 뭉개진 털을 매일 씻어내야 했다.

부영이의 고통이 워낙 커서 차라리 2,3일 내에 떠났으면 하는 바램이었는데

부영이는 열흘 넘게 버텨냈다. 그것이 또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사실 나는 좋은 반려견 주인이 아니다.

순영이도 부영이도 힘든 과거가 있는 아이들이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랑을 주는 가족들과, 보호받을 수 있는 안식처와 먹을 것만 챙겨주는 정도였다.

최근 반려견을 가족처럼 아끼는 견주들에 비하면 한없이 부족했고,

예전에는 부영이의 마지막처럼 똥오줌 다 받아내는 날을 상상만해도 끔찍해했었다.


그러나 부영이가 간질증세가 조금씩 나아져 보일 때는 묘한 희망을 갖게 되었었다.

차라리 잘걷지 못하고,

이렇게 똥오줌 받아도 되니

부영이가 좀 더 살았으면 좋겠다고. 고통만 느끼지 못한다면

유모차도 사서라도 산책을 다니고 싶었다.

하지만,

결국 부영이의 끝은 찾아왔다.

시름시름 앓고, 잠들었다가 다시 깨어 시름거리다가


밤10시 30분쯤, 내가 옆집에서 일하고 있는 동안 숨이 멎었다고 했다.

평소 학생들을 가르치느라 수업중에 나올 수가 없는데,

수업중 딸아이가 소식을 전했었다.

수업을 마치고 밤11시에 집에 가보니 기적처러 부영이가 다시 눈을 떠서

나를 맞아주었고, 3분 정도 지났을까......

부영이의 숨은 거기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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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부영이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이미 가족들 모두 마지막 인사를 했는데,

나는 그날 밤 거실에 누워있는 부영이 옆 소파에서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었고,

눈을 뜨자마자

여전히 누워있는 부영이를 보았고,

다가가서 만져보았다.

한없이 차가웠고,

한없이 딱딱했다.

온몸이 굳어버린 부영이를 만지다 눈물이 터졌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그렇다. 결국 남아있는 가족들은 계속 삶을 살아야 한다)

아내와 나는 미리 예약해둔 반려견 화장업체에 연락을 했다.

https://naver.me/G65jzbrs


평소 순영이 부영이 모두 노견이어서

죽음을 준비해야 겠다고 생각은 해왔는데

정작 수백만원이 든다는 반려견 장례는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렇다고 일반 폐기물로 취급되는 쓰레기봉투에 이 아이들을 담아서 내놓는다?는 그 행위 자체는

결코 해서는 안되는 짓 같았다.


그러다가 알게된 업체가 반려견 화장업체인데

정작 내가사는 동네라는 걸 알게되었고,

몇백미터 되지 않는 곳이라

예약을 하고

아내와 함께 예약된 시간에 찾아갔다.

아내는 사지가 경직된 부영이를 아기 속싸개로 감싸고 안아서 갔다.

간소하지만

그래도 업체 직원분들은 친절했고, 엄숙했으며,

잘 이끌어주셨다.

부영이를 보내는 절차를 진행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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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마지막 인사를 하고,

업체분들에게 부영이를 인도했다.

사실 이 업체의 특징은 신청자가 있는 집까지 찾아가서

특수개조된 승합차 안에서 화장을 하는 방식이었는데,

아직 서울시 허가가 나지 않아서(화장을 하는 장소는 허가가 필요하다)

개를 인도받아, 마포구에 지정된 장소에 화장시설이 탑재된 승합차를 끌고 가서, 거기서 화장을 하는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었다.




나와 아내가 집에 돌아와서 기다리면

업체는 화장 과정을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주고,

화장이 끝나면 유골함에 담아서, 인계해주는 것이다.


image.png 사람의 유골을 볼때도 늘 슬프지만, 부영이의 유골 사진 또한 보는게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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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예쁜 유골함에 부영이는 몇개월간 우리집 거실 테이블에 놓여있었고,

지금은 라일락 꽃나무 화분 밑에 부영이의 유골을 뿌렸다.

한동안 가족 모두 부영이의 빈자리를 느껴야했다.

아이들은 어느정도 잊은 것도 같지만

아내와 나는 지금도 불현듯 부영이의 애교와 부영이의 튼실한 엉덩이, 부영이의 휘어진 앞발, 부영이의 짧은 주둥이, 집에 돌아올 때마다 반갑다면 이를 드러내며 친근함을 표시하던 부영이가 보고싶어진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자 슬픔이라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다.

원래는 인간에게 해당되는 원칙이라고 믿고 살았는데

결국 마음을 내주는 만큼 고통도 커지는 것 같다.


나름 나쁜 견주라고 생각하며 살아왔음에도

부영이의 빈자리는 생각보다 크고,

살아남은 나와 아내는 부영이의 빈자리만큼의 슬픔을 지고 산다.


그렇다고

남아있는 순영이에게 정말 잘해주는 견주가 될 수 있을까?

그럴리는 없다.

나는 좋은 견주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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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그린 그림 속에

우리 가족들의 초상이 들어있는데

부영이와 순영이도 한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3월이 되자 부영이의 유골이 깃든 라일락 화분에 새로운 입이 돋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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