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책의 공통점, 그리고 한국의 공정사회론에 관하여
올 한 해 가장 많이 팔린 인문서적은 단연 마이클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2010년에 작성한 글입니다)
출판업계에서도 예상치 못했던 판매량, 독자들의 관심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읽어내는 하나의 신호역할이 되었다.
물론 워낙 미국을 동경하고, 영미식 명문대 이름만 나와도 넙죽 엎드리는 한국인 정서상 책 표지의 '하버드대 20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라는 문구는 상업적인 자극을 주기에 충분하기도 하다. (올해 타블로 사건역시 그가 프랑스나 독일의 명문대출신였다면 사건의 크기가 훨씬 작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한국사회에는 영미식 명문대의 권력,기호가치는 월등하기 때문이고, 대륙유럽의 대학이름은 아직도 생소하게 다가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블로가 대륙유럽의 대학을 조기에 코스이수를 했다해도 별 질투를 받지는 못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지금도 경제일반분야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죽은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의 저자 토드부크홀츠(이름 익히기 상당히 어렵다, 발음하기조차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경제를 공부할때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될 정도로 스테디셀러다) 역시 '하버드대 최우수 강의상'이라는 문구의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일 것이다.
물론! 두 책 모두 훌륭한 강의를 바탕으로 쓰여졌음은 충분히 인정한다. 단지, 훌륭한 컨텐츠만으로 본다면 더 훌륭한 책들도 많이 있는데, 왜 유독 이 책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는가이다.
특히 올해 마이클샌델의 책이 가장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투박해 보이기까지 한, 책 제목 때문이 아닐까도 싶다. 요즘은 책 제목도 상당히 애둘러서 나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는 하는데,(위의 죽.경,살 도 그렇고, 철학콘서트니 뭐니,,,다 그런 영향이 있다) 이 책은 아주 당당하고 명료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상당한 임팩트가 가슴을 친다.
무엇보다 바로 한국적 상황, 시기나 공간적으로 간에 절묘하게 필요한 단어였던 것이다.
현 정권(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강력한 신자유주의, 성공의 질주, 성장위주의 방향성이 더욱 굳건해졌는데, 문제는 이러한 정부정책기조의 방향성 이전에 무언가 불공평하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시장이론이든, 정부이론이든 간에 정부, 기업의 투명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 효과는 어느쪽이든 미비하다. 문제는 승자독식의 현정부 방향성에도 불구하고 가시적 성과도 드러나지 않자, 바로 공평,공정에 대한 요구가 국민에게서 튀어나오는 것이다.
복지는 더욱 축소되고, 서민들의 살림은 힘겨워져만 가는데, 돈있고, 힘있고, 빽있는 자들이 승승장구하는 부당함이 언론을 통해 터져나오면서 한국사회 자체가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다. 결국 투명성, 공정성이 결여된 한국사회는 신뢰라는 핵심가치를 국민과 정부간에 상실해버림으로써 천안함사태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쪽 발표도 주장도 믿을 수 없어하는 최악의 불신현상을 표출해내었다. 게다가 대포폰을 이용한 청와대의 민간사찰, 국회위원들의 로비, 관료들의 인사비리등등 줄줄이 터져나오는 것은 모두 악취나는 불신의 증거들 뿐이였다.
마이클샌델은 그의 책에서 벤담의 공리주의 통한 행복, 칸트,롤즈를 통한 자유, 아리스토텔레스의 미덕,즉 행복,자유,미덕이라는 가치를 쉬운 예화로 설명해가면서 각자의 한계와 장점을 파악해간다. 무엇보다 수량적가치의 벤담식 행복주의에 강한 비판, 칸트,롤즈의 자유의 가치의 한계를 지적하며, 결국 공동체의 도덕적 가치, 공동체의 미덕에 대한 중요성을 도출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출간된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읽으면서 두 책의 상당한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두 학자의 연구분야는 다르지만, 결국 정의, 미덕,공정에 대한 견해는 두 학자의 주장의 핵심 전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대표적인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비판가다. 그렇다고 자본주의비판가가 아니다. (제발 이분법적 시각으로 이념을 나눠버리는 독단적 정치, 지식인들은 제발 시야넓은 독서좀 했으면 좋겠다 ㅠㅠ) 단지, 신자유주의, 주주자본주의위주의 경제정책이 현 세계의 불공정을 극대화시키고 있다는 점을 상당히 쉬운 예화와 논리를 통해 그러면서도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여 논증한 23가지의 주장인 것이다.
결국 정치학자가 되었건, 경제학자가 되었건, 현 세계의 가장 필요한 것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가 아니라, 공정함,도덕성이라는 미덕 그 자체인 것이다. 정의가 없이는 어떠한 정책도 이론도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현 한국정부도 공정사회론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데, 이는 역설의 묘미를 통해 국민인식에 물타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 셈이다. 분명 4대강을 오염시키고 있는데도 녹색성장이라는 표어를 내미는 역설처럼, 분명 불공정한데 공정사회를 외치는 역설이 시국을 정확히 읽어내지 못하고, 정치에 특히 관심이 없는 한국사회 젊은이들, 청소년들에게는 상당한 가치의 혼란을 주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정부에서 녹색성장,녹색성장하니까, 정부가 하는 일이 친환경적이라 쉽게 믿는다. 공정사회,공정사회하니까 조만간 한국사회가 공정해질꺼라 기대한다. 물론 현 정부가 실제로 공정에 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던,말건, 사회적 가치로 확산시키고자 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 공정사회가 되자는 데 무어가 문제겠는가...
단지 한국사회의 불공정성의 원류는 정부, 정치계에서 늘상 쏟아져나오고 있다는 것에서 문제가 될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될 거 같지 않다는 절망감이 점차 국민들에게 쌓여져 가고 있는데, 공정성을 정부에서 외쳐대니 울컥울컥 울화가 치미는 국민들이 더더욱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미리 대처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절망의 끝,불신의 끝, 불공정의 끝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사회도 나름대로 희망이 있다. 주가가 바닥을 치듯이, 이러한 불신,불공정도 바닥을 치는 현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절망의 끝에 다다를때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경제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두가지를 모두 움직이는 바로 '정의'에 더욱 관심을 갖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없는 십대들도 자신들이 쇄뇌당하는 교육의 끝이 불공정과 절망이라는 것을 우리세대보다 좀 더 빨리 알게 될 정도로 상황은 급박해 지는 것이다.
오죽하면 책 안읽는 우리나라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대 히트를 치겠는가. 주류경제학계에서 밀려서 되려 케임브리지로 간 장하준 교수의 책이 갈수록 관심을 받는 것도 바로 한국사회가 그러한 대목에 서있기 때문인 것이다.
한국의 정의는 이제 첫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