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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pr 25. 2020

김태호 pd의 '놀면 뭐하니'와 들뢰즈의 '리좀'

유재석의 부캐와 들뢰즈


[리좀(Rhizome)은 들뢰즈가타리의 공저 《천 개의 고원》에 등장하는 은유적 용어 혹은 철학 용어이다. 원래의 리좀은 지하경을 의미한다.


리좀은 가지가 흙에 닿아서 뿌리로 변화하는 지피식물들을 표상한다.


수목형은 뿌리와 가지와 잎이 위계를 가지며 기존의 수립된 계층적 질서를 쉽게 바꿀 수 없는 반면 리좀은 뿌리가 내려 있지 않은 지역이라도 번져나갈 수 있는 번짐과 엉킴의 형상을 지지한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C%A2%80>






 2020년을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유산슬'이라는 말은 중국음식의 이름보다는 '유재석'을 떠오르게 할 것이다. '유산슬=중국요리',라는 공식을 깨고 '유산슬=유재석'으로 한국사람들의 머리속에 각인된 것이다. 그리고 '유재석=예능mc' 라는 공식이 '유산슬'을 매개로 깨어진다. '유산슬=유재석=신인트롯가수',라는 새로운 공식이 들어선다.  


재미있지 않은가? '유산슬이면 중국요리인데?'라는 사람들에게, 유재석하면 국민mc인데?라는 사람들의 기존 지식에서 새로운 놀이가 파생된다.


누가 알았겠는가, 유재석 본인도 몰랐다. 김태호pd의 생각에서 시작되었을뿐이다. (그렇다고 김태호pd가 모든 것을 아는가? 모르는 것이 이 예능의 핵심이다. 만든자도 결과를 알 수 없는 예측불가의 드라마)



10년넘게 '무한도전'이라는 예능의 대명사를 스스로 저버리고 오랜 숙고 끝에 김태호가 들고나온 예능의 컨셉에서 나는 들뢰즈의 '리좀'이 떠오른다. 김태호가 철학자 들뢰즈를 모를 수도 있으나 그의 새로운 예능은 기존의 예능 도식을 완전히 뒤엎는 시도이며, 이는 들뢰즈가 강조한 '노마드'적 탈주이며 '수목형'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리좀적 사고와 실천' 바로 그것이다.



 '놀면 뭐하니?'라는 제목속에 나름 힌트가 있다, 이 제목에는 정형화된 예능의 컨셉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놀면 뭐하니? -뭐라도 하자'라는 열려있는 맥락이 숨어있을 뿐이다. 바로 '뭐라도 하자'라는 감춰진 속내에는 이중으로 감춰진 무한한 놀이가 또 숨어 있는 것이다.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을 보필?해온 주요멤버들 모두 사라지고 오직 유재석 단독이다. 그렇다고 그를 돕는 멤버가 없는가? 아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유재석이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캐미가 발생한다.


 처음에는 카메라릴레이 방식으로 시작했다. 예능에는 확고한 컨셉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게 없다. 그냥 딱 하나, 브이로그 방식처럼 카메라를 그저 던져줄뿐, 유재석이 조세호에게, 조세호는 다시 지인에게… 계속 릴레이식으로 넘어간 카메라에 예측할수 없는 다양한 연예인들의 일상이 담긴다. 김태호도 모른다. 유일한 진행자 유재석도 모르는 전개속에서 기존예능의 통제가능하고, 유한한 컨셉의 장은 깨어져버리고 통제불가능한 무한한 새로운 예능의 공간이 열리는 것이다.


그 후에는 드럼을 전혀 못치는 유재석에게 드럼의 가장 기본박자만 가르쳐주고 그것을 녹음하여 음악계의 고수들에게 악기 하나씩, 음색하나씩 덧입힌다. 비트만 연주한 유재석의 단조로운 작은 실행에서 수많은 음악가들의 번뜩이는 재치가 덧붙여져 엄청난 곡이 만들어지고 유재석은 '천재드러머'의 컨셉으로 콘서트까지 갖는다.


그리고 트롯신동이라는 컨셉으로 '유산슬'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하며 '놀면뭐하니'라는 독특하고 유일무이한 새예능에 정체성이 입혀진다, 어떤 시청자도 무시할 수 없는


김태호,유재석만의 예능말이다. '무형식의 형식'을 표방하지만 그 무형식의 다양성이 컨셉인 유일무이한 예능,


'유산슬',의 행보는 놀라왔다. 유명 작사,작곡가를 통해 유산슬만의 신곡이 2개가 생기고 방송3사를 넘어 전국 곳곳의 유명행사에도 유산슬이 초대가수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즉, 토요일 저녁방송 '놀면뭐하니'에서만 유사슬을 보는 것이 아니라, mbc가 아닌 방송에 유산슬이 등장하는 것이다.



 내가 '놀면 뭐하니;에서 들뢰즈의 리좀이 처음 떠오른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한때 최고의 개그 4인방, '감자골4인방'이라고 불렸던 김국진,김용만,김수용,박수홍은 자신들이 데뷔한 방송사가 아닌 타방송사에서 방송한 괘씸죄??로 모든 방송에서 외면받는 핍박을 당했었다.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많은 예능인들이 자기 출신 방송사에 묶여서 더 많은 자기능력실현의 기회를 놓친적이 허다하고 그만큼 시청자들은 즐거워할 기회를 수없이 놓쳐왔다. 시청자입장에서 유재석이 어떤 방송국채널에서 등장하든 하등 상관이 없다. 그런데 데뷔 방송사의 경계는 무엇보다 두터웠던 시대가 얼마전까지다. 이것이야말로 한곳에만 머물려고 하는'정주형'사고이며 강력한 위계서열을 갖는 ;수목형' 그 자체였다. 뿌리는 그저 뿌리의 자리를, 잎은 잎의 자리, 줄기는 줄기여야만 하는 고착화된 체계, 그것이 한국의 예능이었다.


그런데 김태호 pd는 지금 한국예능계의 고착화된 수목형 시스템을 '리좀적'형태로 완전히 바꿔버리는 시도를 한 것이다. 가지가 흙에 닿아 뿌리가 되는 것, 줄기와 뿌리의 구분없이 어떤 환경을 만나는가에 따라 끊임없이 변주하고 이동하는 유목형, 탈주형 예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유산슬'이라는 트롯신동은 방송사 구분하지 않고 넘나들고 시간대 상관없이 mbc의 경계를 탈주하여 돌아다닌다. 배타적이었던 타방송사들도 거부할 이유가 없다. 왜? 시청률이 나오니까.


 여기서 신자유주의의 역설, 전복이 나온다. 시청률지상주의가 역설적으로 김태호pd가 구상한 리좀적 예능의 가능성을 열어준 셈이다. Kbs든 sbs든 아님 종편이든 시청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캐릭터가 특별출연한다고 했을때 그것을 기존의 수목형,정주형 사고방식의 틀에 갇혀서 거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모든 방송사가 윈윈하면서도 시청자에게는 즐거움을, 심지어 유재석에게는 새로운 캐릭터,심지어 무한 변신이 가능한 엄청난 캐릭터를 선물해준 셈이다


안그래도 이제 무한도전이후로 '유재석도 전성기가 지났다'라는 우려를 단박에 씻어주는 유일무이한 캐릭터인 셈이다.









 그후로 유재석은 라면을 끓여주고 손님들에게 응대하는 라면전문가의 캐릭터도 무난하게 소화했으며, 가장 근래에는 예술의전당에서 하프를 연주하는 변신까지 성공했다.이것이야말로 기존예능의 영토를 벗어나는 '탈주'이며 '재영토화'의 사례인 것이다, 어디로든 흘러가며 누구와 접속하는가에 따라 거기에 맞게 예측불가한 변주를 담담하게 해내는 김태호와 유재석은 들뢰즈의'리좀'인 셈이다.


나아가 이러한 포맷은 단순 예능에 머무르지 않을것이다. 유재석이 '별 능력, 별 재능'이 없는 영역에서조차 주변의 도움과 자신 특유의 끈기를 더해 어떻게든 변신에 성공하는 모습은 바로 현시대를  살아가는 일반인 모두에게 한줌의 희망이 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기존의 영역에 머물러 나의 영역,나의 직업을 제한해놓고 살아가는 시청자들에게 '나도 이런 걸 해볼수 있지 않을까'의 가능성의 영역을 넓혀주는 셈이다.





 한국예능계에서 가장 핫한 pd라면 분명 김태호와 나영석일텐데  몇 년 전부터 나영석 pd는 바쁜 삶속에서 여유로운 삶의 가능성을 '삼시세끼'나 '스페인민박'의 컨셉으로 잔잔하게 열어젖혔었다.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적 경계,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허물고 '삶'에 대한 질문과 답을 시청자 스스로 고민해볼  수 있는 여백의 예능을 이미 시작했었다.


그런데 김태호 pd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나영석과는 또다른 컨셉, 들뢰즈의 리좀적,유목적 사유와 실천을 들고나온 셈이다.


그냥 휘발적으로 웃어넘기고 소비되는 주말예능의 틀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이동하는 나영석과 김태호라는 두 피디의 시도는 분명 한국 방송사의 새로운 터닝포인트라 할 수 있을것이다. 시청자의 생각을 바꾸고 삶까지 자극을 주고자하는 그들의 야심아닌 야심에 나는 응원의 눈짓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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