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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02. 2020

[공개입양수기]1편-하얼이는 공개입양한 딸입니다.







*하얼이는 공개입양한 딸이예요

(아이가 이미 자신이 입양한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커가는 아이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겠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 하셨네요”


우리부부가 공개입양을 밝힐 때마다 자주, 아니 거의 똑같이 듣는 답변이다.

정말로 부끄러울 정도로 이러한 답변이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우리는 입양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입양사실을 밝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혹자가 보기에는 우리부부의 이러한 행동이 모순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위와같은 도덕적 칭찬?을 듣고 싶어서, 혹은 자신들의 입양사실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왜 공개입양이라는 표현을 숨기지 않고 그것도 적극적으로 발설하는 가에 대해서 말이다.


우선, 공개입양은 우리부부에게 전혀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즉 남들보다 도덕적으로 더 훌륭하다는 가치판단의 평가영역이 아니라는 소리다. 물론 인간사회의 윤리에 있어서 타인을 위한 마음과 헌신의 자세를 갖는 것 자체는 권장되어야 할 일이기에 그렇다고 우리부부가 비도덕적이라고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굳이 말을 이렇게 돌려서 복잡하게 하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의 공개입양이 칭찬받고자 할 마음이 전혀 없으며, 그럴 자격 또한 굳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다시 묻는다.


“그런데 입양을 어떤 계기로 하시게 된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답변은 “ 그냥” 이다.


그냥, 원래, 아이를 키울거라면 입양을 해서 키워도 되지 않을까라는 그냥,

당연한 생각이 우연찮게 우리 부부 모두에게 있었던 것 뿐이다.

따라서 우리 부부가 고민했던 것은 입양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한 아이만 키울까, 두 아이를 키울까 였다.

첫째 아이는 이미 ‘속도위반’으로 선택의 여지없이 배로 낳았기 때문에

둘째 아이를 키울거라면 입양하자는 것에는 전혀 이견이 없었고, 고민도 없었다.  


다시말해서 나는 이 수기를 통해서 입양을 생각도 안한 분들, 혹은 입양을 하기 싫었던 분들이 갑자기 입양을 하고 싶게 만들려는 설득의 의도는 전혀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입양 이전에 아이를 양육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다.

그 양육에 대한 선택은 철저하게 그 가정의 판단의 몫이며, 그 성향 또한 인정해줘야 한다.(심지어 아이를 키우지 않는 것도 존중받아야 한다. 그만큼 한 생명을 책임지고 키운다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한국적인 혈연주의가 자기도 모르게 강화되어있는 부부라면, 굳이 도덕적(?)인 이유로 입양을 억지로 하려는 것은 오히려 말려야만 한다고 본다.


우리 부부는 결혼전부터 서로 합의된 사항이었고, 두 사람 모두 입양에 대해서 전혀 거부감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타인을 위한 헌신과 윤리적 실천이라는 거창한 행위가 정말로 필요하다면 굳이 입양이 아니어도 이 세상에서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사람 모두가 다양한 성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반대로 우리부부가 할 수 없는 일을 너무나 거뜬히 하는 분들도 많은 것이다. 즉, 누군가는 입양을 한 우리를 보면서 어떻게 저런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칭찬하고는 하는데, 역으로 그 분들은 사회적 불의에 몇날 며칠이고 광화문에 나가서 이 사회를 위해 집회에 참석하고, 어떤 분들은 너무나 손쉽게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다른 가정에 필요한 부분을 돕는 분들이다. 즉 우리 부부입장에서는 결코 쉽게 할 수 없는 일을 다른 방법으로 하는 분들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수기를 쓰는가?


내가 이 수기를 통해서 설득하고 싶은 것은 아주 간단하다. 우리도 입양했으니 당신네들도 하세요! 는 결코 아님을 앞에서 이미 밝혔다. 그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공개입양한 가정들, 아니 설령 비밀입양을 했더라도 우리 주변에 입양을 하고, 입양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저 많이 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생각보다 많다. 그렇다, 삶을 살아가면서 남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고, 여자가 있는 것이 당연하듯이 인식하며 살아가는 것처럼 입양도 그렇게 봐달라는 것이다.


우리가정은 가난하다.


뜬금없이 무슨소리냐구? 가난의 기준이 모호하지만, 우리가정은 결코 부유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아니 개정된 현재 입양기준법에 의하면 결코 입양이 허가되지 않을 정도니 분명 가난한 측에 속하는 가정이 맞을 것이다. 즉, 우리가 배로 낳았든 가슴으로 낳았든 두 아이에게 풍족하게 챙겨주고 삶의 어려움을 부모의 능력으로 손쉽게 해결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부모로써, 입양된 우리 둘째 딸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노력은 무엇일까를 고민해 봤을 때 결론은 ‘우리는 공개 입양했어요’라는 홍보 아닌 홍보인 것이다.


아직은 아이가 자신의 출생을 인지하지 못하는 42개월된 어린아이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공개입양한 사실을 알려줘야 할 시기가 몇 년 남지 않은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 몇 년 동안이라도 한국사회의 입양에 대한 인식자체가 바뀌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재정적 능력없는 부모로써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노력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정부에서 거창하게 입양홍보를 대대적으로 하는 것보다,

우리 부부가 주변에 만나는 사람들에게 공개입양사실을 밝히는 것이 훨씬 긍정적인 홍보효과를 주는 것이 사실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 이렇게 입양하는 사람이 실제로 내 주변에 있구나’ 라는 인식을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둘째 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큰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랐을 때 입양하는 문화가 한국사회에 당연하듯 정착되어 있다면, 입양은 어떠한 낙인도, 따돌림의 대상도 되지 않을 것이기에, 우리 아이가 사회에 적응하는데 크나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조금도 욕심을 낸다면 ‘우리도 입양해볼까’라고 고민해왔던 분들에게 우리부부의 입양사실 공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점이다. ‘아, 정말 주변에 입양하는 분들이 있구나, 우리도 할 수 있겠다’라는 동지애적 위로가 크게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이왕 입양할거라면 비밀입양보다 공개입양을 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까지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욕심 아닌 욕심이다. 만약 입양을 고민해온 부부가 우리를 통해 입양을 실천하는데 계기가 되고, 공개입양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이는 곧 바로 우리 입양한 둘째딸에게 가장 큰 이익이 되는 것이다.(그렇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나는 착한 일을 해서 칭찬받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다. 어쩌면 입양자체가 나의 즐거움이었을 것이고, 공개입양인식이 퍼질수록 우리 딸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열심인 것이다.)



“그렇게 공개입양사실을 밝히는 것이 고민된다면 차라리 비밀입양을 하지 그래?”


굳이 아이에게 입양사실을 밝히고 그로인해서 아이가 사회적응에 힘들어 할 것을 예상한다면, 차라리 비밀입양을 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되묻는 분들도 주변에 많다. 나아가 사회인식은 둘째치고, 아이가 한번 친모에게 선택받지 못한 만큼, 그 비극적 사실 자체를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 숨기는 것이 낫지 않냐고도 묻는다.

이 부분에 대한 답변 또한 간단히 하고 넘어가기에는 오해의 소지가 크기에 다음 시간에 이어서 답변하고자 한다. 그리고 입양하게 된 동기만 구구절절이 설명하느라 많은 지면을 할애했는데, 구체적으로 입양을 하는 과정과 현실적인 어려움들,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한 구체적인 수기 또한 뒤로 미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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