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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07. 2020

[공개입양수기 2편]왜 꼭 공개입양이어야만 했는가?





지난 입양수기 1편에서는 왜 입양을 했는지에 대한 답변과 왜 입양사실을 만천하에 떠벌리고 다니는지에 대한 나름의 항변?을 해보았다. 이 시간에는 아이의 상처입을 미래를 알면서도 왜 굳이 공개입양을 해야 했는지에 대한 얘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그러나 그 답변을 하기에 앞서서 지난 시간에 빠뜨린 내용이 있어서 보충을 해야겠다. 나는 딸딸이 아빠인 셈인데(그렇다, 그 딸딸이는 아니다) 첫째딸 이름이 하진, 둘째딸 이름은 하얼이다. 혹시나 벌써 눈치 챈 분들도 있을텐데 우리부부는 둘 다 크리스찬이다. 하진이는 하.나님의 진.리의 앞글자이고, 하이는 하.나님의 얼.굴앞에서 의 앞글자를 따왔다. 기독교가 요즘 워낙 한국사회에서 욕을 많이 먹는 종교라서 벌써부터 눈살을 찌푸릴 분들도 계시겠지만, 여튼 우리가 입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이기에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을 듯 하다. 기독교에는 ‘청지기’라는 개념이 있다.(용어가 생소하면 집을 관리하는 ‘집사’정도로 이해하시면 된다) 이는 일종의 사명직인 셈인데, 만약 주인이 청지기에게 자신의 소유를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면 그 청지기에게는 주인재산에 대한 사용권은 주어지되 소유권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즉 주인이 다시 돌아올 때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고스란히 돌려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처럼 청지기적 사명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을 소유하고 파괴할 권리가 애초에 없으며, 단지 신이 잘 가꾸라고 맡긴 만큼 자연을 더욱 소중히 여기면서 인간의 삶과 함께 보존해 가는데 그 의미가 있다.

이러한 논리를 자녀 출산과 양육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즉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나는 내 자녀들의 세례식 때 부모의 신앙고백으로써 아이를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시고 그 생을 거둬가시는 것도 하나님이라는 고백문을 썼더랬다. 나에게 이 아이를 키우라고 맡기신 것이지 결코 나의 ‘소유’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부모가 자녀의 삶을 소유하는 걸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케이스가 너무나 많기에 교육이 엉망이 된 건지도 모른다. 남들이 어찌 생각하건 간에 나는 여하튼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신이 나에게 임시로 맡겨준 사명이라고 생각하기에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만 최선의 사랑으로 돌봐주는 자 일뿐이다. 자녀에 대한 세계관이 이러하다면 혈연과 유전자에 대한 중요도는 현격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 우리부부의 인생관에서 본다면 배로 낳는 자식이나, 가슴으로 낳는 자식이나 모두 존재적으로 똑같은 자식이다. 어차피 신이 맡겨주는 것이고, 그것을 사명으로 받아서 청지기적 삶으로 키워가는 것이라면 굳이 가문과 혈연을 중시할 이유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기에 아마도 입양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우리 부부가 둘째 하얼이를 입양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왜 공개입양을 하려고만 하는가라는 질문 또한 많이 받는다. 사실 입양사실을 밝혀야 하는 부모의 입장도 난처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아이 입장에서 볼 때 차라리 출생 자체를 비밀로 해서 친 자식으로 평생 키우는 방법이 어쩌면 아이사랑의 측면에서 더 타당한 선택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인생은 출생의 사실 이외에도 수많은 고통의 연속이다


여기서부터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봐 겁이난다. 즉 나의 관점을 설명하다가 비밀입양을 한 모든 가정을 비판하게 될 여지가 있기에 설명이 조심스럽다. 따라서 먼저 강조해두지만 나는 입양을 하고, 안하고, 하더라도 공개든 비공개든 간에 어느 누구의 선택과 판단도 비난하거나 깎아내리고 싶지 않다. 또한 내 선택이 무조건 옳다고 설득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나의 관점이며, 각자의 상황에서의 최선의 선택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다시 돌아오자면, 입양오는 아이들은 이미 부모에게 한 번은 버려진 비극적 운명을 지고 태어났다. 자기 출생과 존재의 시작부터의 비극만큼 삶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삶과 인생이란 출생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점이다. 인생은 훨씬 더 힘들다. 자라나면서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칠 때도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환경에서 닥쳐올 또 다른 비극과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야만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다가오는 삶이 고통은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친다고 해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내가 하고픈 얘기는 아이의 출생의 비극을 숨긴다고 해서 이 아이의 미래가 더 행복하게 될거라는 확신은 어차피 누구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명백한 사실은 입양아가 아닌 대다수의 당사자들(나,그리고 이 글을 읽는 대다수의 분들)이 실제로 삶을 살아봤기에 충분히 공감할거라 생각한다. 죽고 싶을 정도의 삶의 고통은 누구나 겪으면서, 그리고 견뎌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팍팍하다. 그 고통의 여정속에서 찰나의 기쁨이 바로 인생의 행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리는 그 찰나의 기쁨을 부여잡고자, 혹은 지나간 그 순간을 회상하면서 눈앞의 고통을 이겨내는 지도 모른다. 말이 길었다. 여하튼 굳이 아이의 출생 자체를 숨기지 않아도 어차피 이 아이는 수많은 삶의 고통 앞에 서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가장 큰 규모의 고통이 될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정도의 고통도 자기 운명으로 짊어지고 가야만 한다고 매정할 정도로 확신하는 것이다.




영원한 거짓말이 과연 가능할까?


무엇보다 아이를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 확실하지 않은 미래의 고통을 줄여보겠다고 다시 아이의 출생자체를 속여야 하는 거대한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보다 꺼림칙했다. 그렇다, 작은 거짓말이 아니다. ‘착한 거짓말’이라고는 하나 그 스케일이 너무 큰 거짓말이다. ‘나 사실은 학교 안갔어.’ 혹은 ‘나 사실 총각이라는 거 거짓말이야’ 따위의 거짓말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이의 출생 자체를 속이는 스케일이다. 게다가 비밀입양이 그저 태어날 아이에게만 잘 둘러대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실제로 우리부부는 어둠의 루트가 아닌(비밀입양 중에 입양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친부모나 불법 브로커를 통해서 입양하는 경우가 있다) 공식 입양기관을 통해서 둘째 아이를 입양했음에도 불구하고 황당한 경험을 한 케이스다. 즉, 공식 입양기관이라면 정부의 지원금을 받는 만큼 당연히 공개입양을 원칙으로 하는걸로 생각했었다. 입양신청을 마무리 한후 마땅한 아이가 나타나길 애타게 기다리던 어느 날 우리는 입양기관의 통보와 함께 둘째 하임이를 만날 수 있었고, 첫 만남이후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집으로 데려오는 날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아이를 데려올 준비를 다하고 기관에 갔는데, 업무 담당자는 우리 부부도 당연히 비밀입양이라고 생각해서 어떠한 공식적 서류절차도 준비해 두지 않았던 것이었다. 즉, 우리부부가 직접 주민지원센터에 가서 집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거짓 출생신고를 먼저 하고 오라는 것이었다. 즉 우리부부외에는 그 기관을 통해 입양하는 대부분의 부부들은 비밀입양을 해왔던 것이고, 행정절차가 편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양담당직원은 비밀입양을 적극 권장한 셈이었다. 만약 우리부부가 공개입양을 계속 주장한다면 절차상 아이(하얼이)를 지금 데려갈 수도 없다는 허망한 얘기까지 들어야 했다. 생각해보라, 내가 사고 싶은 핸드폰을 사러갔는데 다팔려서 못사고 돌아오는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허탈함일 것이다. 내 자식을 데리러 가는 날에 비밀입양이 아니면 내줄 수 없다는 황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공개입양을 계속 주장해야 할지 정말로 고민했던 찰나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같았다. 나는 결코 주민센터 직원에게 우리 아내가 급해서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을 뿐더러 (솔직히 요즘 시대에 집에서 출산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해당공무원들도 이미 이러한 불법적 관례를 익숙하게 처리하는 듯했다) 모든 서류를 꾸며내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차선책으로 한달간 법적으로 우리는 하얼이를 친자식이 아닌 위탁부모의 입장에서 데리고 있었고, 한달의 대기 끝에 입양기관의 정식 서류처리가 끝날 수 있었다. 결국 법적으로 입양을 통해 호적에 올리는 것은 집에 와서도 한달이 더 걸린 셈이다. 혹여라도 위탁부모인 상황에서 절차에 문제가 생겨서 하얼이가 다른 부모에게 입양될까봐 잠도 제대로 못잤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밀입양을 해야하는 초기의 과정도 쉽지가 않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아이가 커가는 과정에서 내가 해야할 거짓말에 대한 무게감이었다. 나는 과연 모든 스토리를 지어내가면서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첫째딸인 하진이에게도 거짓말을 ‘교육’시켜야 하는 상황까지 감당해야 하는데, 내게 이럴 권리가 과연 있는가? 양가부모님들도, 친척들도 이 상황극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 아마도 비밀입양이 언젠가 밝혀지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수많은 사람들의 철저한 역할극을 평생 유지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그렇다,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_) 나아가 과연 영원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가능키는 한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었다. 진실이라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결국 드러난다고 굳게 믿는 내 인생관에서 아이의 출생을 비밀로 한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실제로 성인이 되어서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결국은 알게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한다. 그랬을 때 겪게 되는 입양아의 고통은 몇 배나 더 크다고 하는데, 그러한 모든 과정까지 다 고려해서 비밀입양을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가 고민했을 때 결론은 공개입양이었던 셈이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간에 우리부부는 아직 이 큰 고비를 몇 년 앞에 두고 있다. 즉 내가 위에서 뭐라고 멋들어지게 공개입양에 대한 선택을 합리화했다 하더라도, 현실의 두려움은 그대로이다. 평균적으로 공개입양한 가정들의 경우 아기가 자기 출생에 관해 궁금증이 생기는 시기가 초등학교 1학년정도로 보고 있으며, 입양사실을 알리는 경우도 이 시기부터 2,3년 사이인 듯 하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 우리부부에게도 몇 년의 시간이 더 있는 셈이지만 우리부부는 그때를 지금부터 준비하면서 순간 마음을 졸이고는 한다. (입양에 대한 개념이 생기는 것은 평균 10세가 되어야 하기에, 개념을 인지한 후보다는 인지하기 전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견해가 있다) 결국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밀입양을 하든 공개입양을 하든, 역시 삶에 다가오는 위기와 고통을 어떤 식으로든 마주하게 되는 셈이다.


아직까지는 우리가정은 다른 입양커뮤니티에 가입해서 같은 상황의 가정들과 교류를 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이제는 준비를 해야할 시기이다. 아이가 미리 자신의 상황과 같은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어 가는 과정이야말로 나중에 자신이 마주하게 될 충격적인 사실앞에 그나마 고통을 미리 덜어낼 최선이 아닐까 싶다.


- 이 수기를 작성했던 시기는 벌써 몇년 전입니다. 지금은 본의아니게?? 하얼이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충분히 알아버렸고, 다행히도 잘 소화하고?있는 중입니다. 그리고 올해는 처음으로 입양가족 모임인 '소사나'에 첫 참석을 마친 상황이구요~~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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