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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Jul 16. 2020

[공개입양수기]3편-두려움?후회?

입양수기3편



입양하기 전의 두려움? 입양한 후의 후회?


비밀 입양을 당연시하는 이상한 입양기관의 처리 덕분에 우리 부부는 둘째 하얼이를 2011년 12월에 집으로 데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위탁부모로 한달 간 키워야 했다. 그리고 12년 새해에서야 법적으로 정식 입양처리가 되었고, 법적으로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공개입양을 하고 나서 자주 듣게 되는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입양하기까지 두렵지 않았는지, 그리고 입양을 한 후에 후회하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조심스러운 질문이었다. 이미 앞의 수기에서도 밝혔듯이 우리 부부의 입양에 대한 기준 자체가 뭔가 특별하거나 엄청난 결단을 통해서 시작한 것이 전혀 아니었기에 큰 두려움은 없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할 것 같다”라는 묘한 표현을 쓴 것은 직접 아이를 낳을 때도 부모라면 당연히 설레고 묘한 두려움이 있듯이, 둘째 하얼이를 기다릴 때는 정말 큰 기대감과 설레임이 있었고 이 감정에 두려움도 섞여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딱 한 가지 걱정이 되는 점이 있었는데, 이성적으로는 입양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직접 아이를 만나게 되었을 때 내 이성적인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혹여나 거부감이 들면 어쩌나 하는 불안한 상상이 어렴풋이 안개처럼 끼어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 그냥 싫게 느껴지거나, 마음에 안드는 감정을 갖는 인간의 특성은 노력만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은가.)


닮아도 너무 닮은


어릴 적 나
비슷한 시기의 하얼이


어릴적 내 사진과 하이 사진 비교


그런데 이러한 일말의 걱정도 기우에 불과했다. 생후 2주일 된 하이를 직접 보게 되었는데,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 처음 보자마자 그냥 내 가족을 보는 기분이었다. 여기서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내 마음의 준비를 통한 친숙함이 만들어낸 안정감이 아닐까 하시겠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짜 닮았다!! 정말 내 어릴 적 모습, 앨범에서나 확인 가능했던 내 아기 때의 모습과 판박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도 첫째 하진이와 둘째 하얼이를 함께 데리고 다니면, 하얼이가 입양한 딸임을 모르는 분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진심으로 이렇게 말한다 ‘둘째가 아빠랑 정말 똑같이 생겼네요?’ 첫째아이가 성장할수록 엄마를 닮아가는 반면 둘째아이는 처음 만나서 지금까지도 계속 나와 판박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문제는 나는 남자고 하얼이는 여자인데, 첫째 딸이 벌써 아빠 닮았다고 하는 소리에 질색하듯이, 둘째아이에게 마냥 좋은 소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하얼이를 남자아이로 오해하는 경우가 열에 아홉이었다) 심지어 주변에서는 우스갯소리인지 진심이지, 나와 하얼이의 유전자검사를 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던질 정도다. 몰래 외도해서 낳은 아이를 입양을 통해서 둔갑시킨 것은 아니냐고 진심 같은 농담을 던진다. 그러나 이런 농담이 결코 기분 나쁘지 않은 것은 입양한 딸이 친딸보다 더 닮았다는 소리니 이는 앞으로도 나와 하얼이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해줄 중요한 끈이 되기 때문이다.(게다가 나는 지금의 아내가 첫 연예 상대였다. 첫 연예로 바로 결혼한 셈이라 다른 사람과 정분을 맺어본 경험조차 전무하기에 이러한 농담들에 전혀 가슴 한켠이라도 찔릴 바가 없었다. 근데 이게 자랑할 거리인지는 모르겠다. 연예도 한번 밖에 못해봤다니~~)

그럼 이는 기적일까? 마냥 그런 것은 아니다. 사실 입양을 신청할 때 양부모가 자신들이 원하는 희망사항을 작성하는 란이 있다. 즉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혈액형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등등, 입양기관에서 최대한 양부모의 요청사항을 맞춰주려고 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우리 부부는 여자라는 성별만 택했을 뿐 그밖에 어떠한 조건도 적지 않았다. ‘그냥 아무라도 좋습니다. 그저 빨리 올 수 있으면 됩니다.’ 라고 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하얼이를 만나기 일주일 전에 다른 아기가 있었다. 우리는 당연히 하얼이를 만나기 전이었으니. '저희는 아무 상관없다'며 반겨했는데, 입양기관에서 센스있게도(?) 아이를 나의 사진과 비교해보며 콧대가 너무 달라서 안되겠다고 반려해 버린 것이다.(그렇다,나는 코가 크기는 하지만 주먹코에 가깝고, 아내는 콧대가 낮은 반면에 이 아기는 콧대가 날렵했다고 한다) 즉 아이가 자랄 때 부모와 생김새가 너무 달라도 난처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 비슷한 이미지를 맞춰주려고 배려했던 것이다. 여하튼 너무나 날렵했던 콧대를 갖은 그 아기는 우리 가정과 연을 맺지 못하게 되었고, 한주 후에 우리 하얼이를 만나게 되었으니, 돌이켜보면 이 또한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10개월 간의 밤샘


 너무나 닮아서 너무나 쉽게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된 것까지는 좋았으나 하얼이를 양육하는 과정은 전혀 쉽지 않았다. 첫째 딸아이가 워낙 온순했던 타입이라 더욱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으나, 하얼이는 집에 와서도 안정을 찾지 못하고, 항상 울어댔었다. 잠이 많지 않고, 자주 깨어났고, 찡얼대는 횟수가 정말 많았다. 무엇보다 밤이 없었다. 밤에 잠자리에 들어도 정확히 한 시간마다 깨어나서 울었고, 이는 배고픈 신호도, 오줌을 쌌다는 신호만도 아니었기에 더욱 난감했었다. 그나마 다행히 모유가 아닌 분유로 수유를 하였기에, 잠이 적은 내가 밤에 하이를 보기로 했다. 즉 내가 쪽잠을 자거나 밤새 책을 읽으면서 하이를 보고, 아침 9시에 아내와 교대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것도 내 직업이 직장인이 아닌 시간조정이 가능한 개입사업자라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렇게 10개월 넘도록 밤샘이 이어진 셈이다. 하이는 밤새 시간마다 울어대고, 나는 바운서를 계속 흔들면서 애를 재우고, 그러다 다시 아이가 깨고, 이런 생활의 연속이었다. 나중에는 영아산통까지 생겨서 밤10시경에는 자지러지게 울고는 했다. 입양을 하기로 결심하고, 양가 부모님들께 말씀드렸을 때 당연히 예상 가능하듯 강하게 반대를 하셨었다. 특히 나의 아버지가 반대가 심하셨는데, 경제적으로 안정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분명히 후회할거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10개월여 간의 밤샘 속에서 정말 딱 한번! 아버지의 만류가 떠오르면서 ‘아 어떡하지. 되돌릴 수는 없는건가?’ 하는 후회가 들었던 기억이 난다. 새벽녘에 여전히 칭얼대는 하이를 달래면서 넋이 나간 표정으로 바운서를 흔들면서 정말 울고 싶은 심정으로 이러한 후회의 감정을 잠시나마 가졌었다. 이 감정이 들었던 것 조차 아내에게 미안해서 아내에게도 얘기본 적이 없었다.


3개월간의 물리치료


정말 다행하게도 하얼이는 몸이 건강했다. 어떤 아이들보다도 확실히 건강한 편이다. 왜냐하면 콧물감기 정도는 자주 걸리지만,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앓아누운 적이 없다. 4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지금은 하얼이는 초등학생이다) 아파서 응급실을 가는 적도 한번도 없었다. (아이키우는 부모라면 밤 중에, 휴일 중에 아이를 들쳐업고 응급실 안 가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첫째아이는 뻔질나게 응급실로 보냈었다)

그런데 ‘사경’이라고 아이의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보통 생후에 바로 파악해서 물리치료를 하면 한 달이면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데, 우리는 6개월 가까이 지나서야 알았고, 뒤늦게 물리치료를 시작해야 했다.

무려 한 주에 세 번씩이나 종합병원에 가야 했고, 30분 물리치료를 위해서 울어대는 하얼이를 옆에 태우고 차로 통원을 해야했다. 차를 타는 내내 자지러지게 울고, 치료할 때는 그 두 배로 자지러지는 하얼이었다. 그리고 치료의 효과를 위해 아침 저녁으로 내가 직접 아이의 목을 반대방향으로 꺾어서 목을 곧추 세우는 물리치료도 해야 했다. 이 과정을 3개월 가까이 반복하면서 나 역시 지쳐갔고, 일종의 산후우울증 증세도 겪어야 했다. 물론 이 때는 입양을 후회하는 따위의 마음은 없었다. 그냥 양육이 힘든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는 누구나가 겪는 고통의 일부였고, 나는 공동육아에 가까운 역할을 하다보니 한국에서의 양육이 얼마나 힘든지를 온몸으로 느끼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종종 양육의 당연한 고통을 입양과 혼동하는 사회적 시선이 있을까 두려운 마음은 있다. 즉 양육과정에서 힘들어하는 푸념을 다른 사람에게 하면 우리가 입양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느끼고는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 부부만의 착각일 수는 있는데, 아내 역시 그런 점에서 조심스럽다고 하니 쉽지만은 않은 문제였다. 유난스럽게 찡얼거림이 심한 하얼이를 키우는 것에 지치고 힘들 때 우리 부부는 양육에 대한 푸념을 그저 편하게 하고 싶을 뿐인데, 자칫 모든 원인을 입양으로 치부하게 될까봐 표현하기도 힘들었다.

따라서 자주 울고, 찡얼대고, 어쩌다 사경증세로 목을 치료하느라 힘도 들었지만 이는 그저 양육의 과정이라고 보기에 사실 이 입양수기에 담아내기에는 적절치 않은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종종 하얼이 친모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 스트레스가 태중의 하얼이에게 분명 직간접적으로라도 영향은 미쳤을거라 생각은 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변수는 무한하다고 생각하기에 굳이 한방향으로만 연결 짓고 싶은 마음은 없다. 좋게 생각해보면 하얼이의 친모는 일반적인? 입양친모들과 달리 담배도 전혀 피지 않았다고 하고, 신체는 건장했으며 무엇보다 하얼이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이 세상에 낳아준 것만으로도 우리는 친모의 용기와 결단에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진심으로 갖고 있다. 현재의 양육이 힘들다고 자꾸 그 원인만 찾으려고 매달리면서 어떤 탓으로(?) 돌리기 보다는 지금 우리가 하얼에게 줄 수 있는 사랑, 앞으로 해줄 수 있는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하얼이를 만나기까지 분명 두려움도 잠시 있었고, 키우는 과정에서는 우울증세가 있을 정도로 힘들어서 후회도 한번 했었지만, 이 또한 부족한 부모로써 성장하는 과정인 것 같다. 아이들도 자라듯이 부모도 다 처음 겪는 양육이기에 시행착오를 겪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도 늘 부족한 부모라 생각은 하지만, 하얼이를 볼 때마다. 아니 생각할 때마다도 너무 귀여워서 어쩔 바를 몰라 한다는 점이다. 하얼이가 입양을 왔다고 해도 전혀 가족으로써의 이질감이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냥 기쁠 뿐이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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