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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Mar 16. 2021

살림,그리고 노동, 그 힘듦에 관하여

셋째 출산과 더불어

 셋째가 3월2일에 태어났다.


셋째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아내는 2월24일에 고위험산모실에 입원을 했고

그렇게 일주일을 입원실에 갇혀지대다가? 출산을 하였다.

그리고 출산 후 바로 산후조리원으로 아이와 이동하여 3월18일까지 머물게 되었다.

산후조리원 데려다 준 날


아내가 고위험산모실에 있는 일주일간 나 역시 아내를 볼 수가 없었다.

코로나 시대에 의한 특이현상이겠지만

여하튼 보호자인 나도 아내 수술일까지는 면회금지였고,

수술하는 당일에서야, 수술실 들어가기 직전에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 출산후 병원에서 3박4일 동안 아내를 만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었는데


산후조리원에 들어가니 다시 면회금지.

그렇게 다시 아내를 안본지 2주가 되어간다.


나야 그렇다치고 집에있는 큰 딸과 작은딸은 엄마를 안본지가 벌써 몇주인가?

정말 영상통화를 제외하면 한달 가까이 엄마가 자신들의 삶에서 사라진 셈이다.

치워도 치워도 거실은 계속 어질러진다. 이건 물리학의 법칙?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을 아이들도 경험하고 있다.


자, 그리고 우리 셋은 여하튼 삶을 살아가야 했다.


나 역시 아내 없이 이렇게 오래 지낸적이 없었다.

2006년부터 함께 살았던 아내였다.


혼전 임신으로 둘다 신혼을 여유를 누려본 적도 없었고,

그런 서로가 어쩌면 불쌍하기도 했기에


우리는 일년 중 서로를 위한 여행을 보내준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국내 당일치기나 일박 여행을 서로에게 허락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단 한번도 육아에서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가족여행은 말그대로 가족여행일 뿐,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여행, 자신만을 위한 여행이 필요했기에

그렇게 서로를 보내주는 시간들이 있었다.


여튼 아내와 얼굴을 못보는 기간은 그런 여행외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집안 살림을 책임져왔던 '지휘관'? 의 부재는 무엇보다 컸다.


여기서 한국사회의 남녀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80년대 생으로

가부장적인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남자가 집안 일에 조금은? 뛰어들게 된 그 세대라고 볼 수 있겠다.

내가 첫째 아이를 07년에 안게 되었을때만 해도

남자가 아이를 업거나 아기띠를 하고 다니는 경우는 결코 흔하지 않았었다.

그때 나는 늘 아이와 아기띠로 안고 다녔고, 여름이면 늘상 아기와 나는 서로의 땀으로 흠뻑 티셔츠가 젖고는 했었다.

그 당시 아이를 아빠가 안고 다니는 것을 본 목사님의 한마디가 묘하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

'어이구 아빠가 저렇게 아기를 안고 다녀서야 큰일을 하겠나'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의 육아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직 둘이서 해결해야 했기에

나는 아내가 출산직후 집에서 산후조리를 할때(그 당시는 산후조리원도 필수는 아니었고, 물론 우리부부는 그럴 돈도 없어서 생각도 못했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요리책을 대여해서 요리 연습을 했었다.

아내를 위해 이것저것 요리를 해보는 과정에서

의외로 음식에 소질?도 있음을 알게되었다.


여하튼! 그런 시대였고, 그런 세대였다.

나름 나는 요리도 했고, 집안 일도 곧잘 도와주는? 그런 남편이었고,

그 당시는 그런 나를 상당히 좋은 남편으로 인식해주는 주변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시선이 익숙했던 만큼 나 역시 그런 상황 속에 규정된 나를 은근히 좋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아내의 부재기간 동안 여실히 깨달은 것이 있다.


정말 그동안 나는 살림살이를 한 것이 아니라

소꿉놀이를 한 셈이라는 것,

즉 아내는 살림을 했지만 나는 그 옆에서 깔짝대며 소꿉놀이를 한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한 남편처럼 으스대었던 셈이다.


집안 살림의 처음과 마지막까지 책임을 져왔던 아내의 자리가

어떤 것인지를 이제서야 깨닫는 것이다.

나는 그 방대한 스케일 속에서

고작 설거지, 분리수거, 빨래개어 수납하는 정도의 일들을 그저 '거들고' '도와'주었을 뿐이다.

비닐쓰레기는 왜 이렇게 자주,많이 나오는건가?

애초에 집안일을 '도와주는 것' 이 아님을 지금 세대의 부부들이라면 당연히 알 것이다.

엄연히 서로의 일이다.


그런데 그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정말 살림이 끝이 없음을 알게 된다.


살림살이의 가장 큰 어려움과 잔인함?은

무언가를 새롭게 생산하는 느낌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말그대로 현상을 유지하는 전투에 가깝다.

하루 세끼 밥을 챙겨먹고,

먹었으면 다시 먹기위해 그릇을 씻어야 하고,

우리의 몸도 씻어야 하고,

입었던 옷이 더러워지니 다시 입기 위해 빨아야 한다.

집안도 계속 생활을 유지해야 하기에 청소,관리를 해야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댓가로 버려지는 쓰레기는 반복적으로

정리해서 버려줘야 한다.

어찌보면 매우 단순한 일처럼 나열되는데

이것이 정말 고되다.

계속되는 일상의 반복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우선 아이들 아침을 챙기고

다시 아침식기 정리하고, 집안 청소 간단히 해도

금방 점심 때가 돌아온다. 코로나로 인해 화상수업이 많은 아이들은

학교도 안가고 집에 있어서 점심을 걱정해야 한다.

점심을 먹고 아침보다 많이 나온 식기를 다시 씻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일의 과정에서 의외로 놀란 것은

쓰레기다. 쓰레기가 너무 많이 나온다.

아이들이 야금야금 버리는 생활 쓰레기,

음식물 쓰레기,

식재료 등 택배에서 나오는 포장쓰레기,

한주에 세번 분리수거를 하는데 늘상 쓰레기가 엄청나다.

그래서 시간이 날때마다 나도 모르게 집안 내 쓰레기를 주섬주섬 주워다

계속 버리고 있다.

오후에는 산책을 기다리는 개들을 챙겨서 나갔다와야 한다. 물론 요즘은 아이들에게 개산책의

임무를 분담시켰지만 첫째아이는 개학과 동시에 학교끝나자마자 간식챙겨먹고 학원가기 바쁘다.

그나마 둘째아이와 한마리씩 맡아서 산책을 다녀온다.

아이들과 함께 개 산책! 큰딸은 이제 산책시킬 시간조차 없다.
이제는 둘째딸이 개산책을 도와준다

참고로 애견관리도 엄청난 일이다. 이건 평소에 내가 하던 일이기는 했지만

개들 털이 금방자라기에 몇 주에 한 번은 미용을 해줘야 한다. 셀프미용을 하다보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프고

그만큼 오래걸린다. 심지어 발바닦 털도 제거해줘야 한다.

개들 목욕은 일주일에 한번도 벅차다.  

저녁을 준비하고, 먹고, 정리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건조기를 돌리고, 옷이 건조되어 나오면 아이들과 서로 각자의 것을 나눠서 정리한다.

(거기에 화장실 청소도 3일에 한번씩은 해야한다. 락스를 뿌려서 변기를 닦는것은 이전에도 했었지만 오롯이 내가 해야하는 상황이니 그 강도가 또한 다르다)

락스칠하고 머리카락으로 막힌 배수구를 뚫어줘야한다.삼겹살 구웠다가 가스렌지와 바닦까지 닦아야했다 ㅜ ㅜ

이렇게 하루가 그냥 지나간다.

하루종일 '정비?' 만 하는 느낌이다.


왜 아내가 설겆이만 하면, 혹은 빨래만 하면 틈틈히 안방 침대에 가서 누워있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도 그렇게 틈만나면 쑤시는 생활근육의 통증을 느끼며 누워있는다.

항상 틈나는대로 뻗어있는 안방침대


정작 문제는 바로 '노동'이다.

즉 '가사노동'은 말로만 그렇지 실제 경제적 노동에 포함되지 않는다.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매일 느끼지만

이 노동의 가치를 화폐로 평가해주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모든 이 세상의 엄마들은 그렇게 무상노동을 하며 살아온 셈이다.

물론 이제는 이런 집안 일, 살림살이가 여성만의 몫이 아닌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다들 머리로 인지할 뿐

완전한 가사분담은 멀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셋째 출생신고를 하면서

보육수당과 양육수당을 신청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나마 이런 수당이 우회적?으로

집안 살림을 하는 가사노동에 대한 위로금, 격려금이 아닐까?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바로 아이들의 학업관리도 해야한다는 점.

스스로 알아서 잘하면 좋겠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럴리가 없지 않은가.

나 역시 둘째아이가 아직 스스로 챙기지 못하기에

집안 일을 하는 와중에도

숙제 검사를 해야하고

학교 준비물은 잘챙기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첫째아이 새학기 시간표


이건 이미 벅차다.

집안 일로도 충분히 힘들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손을 놓았다. 그냥 최소한만 체크하고 잔소리 할뿐,

이런 상황인데 맞벌이 부부는 다들 어떻게 아이들 학업관리를 하는걸까?

여하튼 집안 일을 누가 맡아서 하든

살림살이에 대한 경제적 가치를 다시 평가해 주어야 한다.

그냥 삶을 유지하는 것일뿐 생산적이지 않은데 어떻게 보상하냐고 반박할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이 살림살이의 반복 덕분에 그 안에서

국가를 유지할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하는 것 아니겠는가?

결국 국가는 투자의 가치로 살림살이를 평가해주어야 한다.

부부 서로가 자아실현을 위해 맞벌이를 택할 수는 있어도

가사노동에 전념하는 전업주부에게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해줘야 한다.

누군가는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살림살이이고

특히 아이를 키우는 부부라면 더욱 더 그러한데

살림살이 자체에서 자아실현을 하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래서 쉽게 우울해지고 권태에 빠질 수 있는 만큼

그 가치를 보상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요즘인 것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내가 입원하고 2주 동안은 나는 진짜 경제활동을 거의 안했다는 점이다.

사실 할 시간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에 일을 거의 취소하고

집안 일에만 전념한 것이다.

만약 집안일만 전념해도 어느 정도 월급으로 보상된다면

정말 이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존 경제활동을 할 여력은 없었다.


그런데 현재 외벌이를 하고 있는 우리집 사정상 내가 일하지 않으면

가족은 굶게 된다.

즉 바깥 경제활동도 살림살이처럼 당연히 중요하다.

그런데 집안일에만 몰두해도

이미 충분히 몸과 정신은 힘들었고,

경제활동을 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그저 마이너스 통장을 까먹으면 유지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집안살림살이는 단기적으로 유지일뿐 생산이 아니다.

그래서 경제활동을 안하는 불안을 애써 잠재우며 올해 중하반기에 미친듯이 일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로하고 있다.  

안방에서 보는 창밖 풍경


와.....그럼에도 미혼모,미혼부, 맞벌이 부부 등등

살림살이와 경제활동의 병행조건이 훨씬 힘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런 그분들이 정말 대단해보인다.

일도 하고, 틈틈히 집안일 하고, 자기계발도 해야하는데......


난 최근 집안일에 몰두하면서

책도 거의 못읽고 있고(사실 책읽는 것이 내 주업에 밀접하기에 매우 중요한 활동이다)

일도 2주간 비워두었다.

아내가 돌아오면 모든 것이 다시 편해질까?

이미 새식구, 갓난 아기, 셋째가 같이 들어오는 만큼 당연히

온 식구가 다시 감내해야할 부분들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도 안된다.


내가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고 해도

그동안 내가 해왔던 살림살이가 소꿉놀이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번기회에 깨달은 만큼

나는 앞으로도 내 몫의 집안일은 제대로 해야만 한다.

이것은 염치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아내가 바깥 경제활동은 안하는 상황인 만큼

집안 살림의 사령탑은 아내가 맡겠지만

나는 더이상 구경꾼으로 머무를 수 없고,

'도와준다'는 애매한 문구로 깔짝거려서도 안될 것이다.


이번 일들을 계기로 다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삶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나 힘든데

다들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일까?

다들 어떻게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는 것일까?

학원간 언니는 제외하고 아빠와 둘이서 저녁먹는 둘째딸

결국 이런 지속된 반복의 삶을 살아내면서도

거기서 어떻게든 도약을 이뤄내고자 발버둥치는

우리내 삶이야 말로 정말 존경받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은가?


인간이라는 것,

삶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역할의 큰 일부를 해내는 것이 아닐까.


오늘 하루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모두에게 화이팅을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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