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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Mar 03. 2021

셋째 출산!이틀째

비트겐!논리철학논고는?

원래 오전7시였던 수술은

결국 오후2시가 넘어서야 시작되었다.

기나긴 기다림끝에

2시10분경에 아내를 수술실 앞까지 배웅했고

아빠인 나는 신생아실 앞에 대기하러 이동했다.

이미 첫째아이를 응급으로 제왕절개 출산한 경험이

있기에

얼마나 이 수술이 빨리 끝나는줄 잘 알고 있었다.

수술이 시작되면

아이가 아빠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20분이 채 안된다. 첫째아이를 낳으러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갔을때

주변 어르신들께 마저 연락을 한 후에

이제 아이를 위해 산모를 위해 기도해야겠구나하며

복도 의자에 무릎이라도 꿇으려는 찰나

수술엘리베이터 문이 구구궁!열리더니

'김ㅇㅇ 산모 보호자분!'을 외치는 소리에

깜짝 놀랐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여튼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나는 신생아실앞에서 우리 셋째와의 조우?를

기대했다.

한편으로는 출혈이 많을거라는 담당의사샘의 말을 떠올리며

수술대위에서 전신마취를 기다리거나,혹은 이미 했을

아내를 응원했다.

2시33분에 병원측에서 문자가 왔다.


[신촌세브란스] 김ㅇㅇ님 수술중(14:33~  )입니


아.이제 시작하는구나.


그리고 내 앞에 셋째가 나타난것은 2시50분경.

아...신생아가 이렇게 작았던가.

첫째아이가 1.8킬로 저체중이었는데도 그 모습과 크기는 기억이 없다.지금 2.95로 태어난 셋째만으로도 충분히 작았다.

여튼 아기 입원수속 및 정신없이 이것저것 보호자가 할 일이 있었다.

다 처리하면 곧 아내도 나오겠지?

마음 한켠의 불안을 번잡한 입원수속으로 달래며

아내가 입원해서 사용할 캐리어를 주차장에서 갖고 올라왔고

드디어 병실로 안내받았다.

전에도 얘기했었나? 코로나 시대이기에 보호자라고 병실에 함부로 못들어간다. 코로나 음성판정 받고도

아기가 태어나고 나서야 병실 안내를 받았다.

그나마도 아내가 아직 수술이 안끝나서 병실에는 짐만 놓고 나는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어랏! 2시33분 기준으로 한 시간이 족히 지난 4시가 다되었음에도 소식이 없다.


갑자기 문자가 오길래 얼른 살펴봤다.


ㅇㅇ님 수술진행중 입니다.3:59


아니. 처음이랑 같은 문자다.

수술이 끝났습니다,혹은 회복중입니다,가 아니라????ㅜ ㅜ


대기실 의자에 앉아 책을 보려고해도

이제는 집중이 안된다.

아침부터 읽어오던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논고'를 계속 읽는다한들

지금 셋째아이를 세상에 내놓고

열려있는 배를 다시 닫고 있는 아내의 절박함을

어찌 덜어줄 수 있겠는가.

물론 세계를 언어의 그림으로 해석했던 초기 비트겐슈타인이라면

그저 본것도 아니고 상상만 하고 있는 나에게 질책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라구.

그래, 지금 난 말할 대상도 없다.ㅜ ㅜ

그럼에도 혼자서 계속 상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갑갑해짐을 느낀다.

분명 아내 앞의 수술대에 올라간 산모는 한시간만에 끝나고 이미 병실 배정을 받았것만.

내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서 카톡이 스물스물 들어온다.

깨톡!

아기 잘 낳았냐는 안부 문자들...

분명 아기는 건강히 태어났으나

정작 산모가 아직 안보이니

어떤 답변도 힘들었다.

그나마 집에서 기다릴 첫째,둘째 딸들에게는

동생 사진을 보내줬다.

문자로 놀라는 아이들의 답변을 읽는다,

갑자히 정신이 아득해진다.

만에 하나. 혹여라도

수술이 잘못되면.......난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첫마디로 던질까....아니 뱉을까...

아내가 누울 병상을 찍어보고

아내가 실려올 복도에 처연하게 서있다.


망상에 빠져서 허부적대는 나에게

위안이 된 문자가 드디어 도착했다.


[신촌세브란스] 김ㅇㅇ님 회복중(16:18~) 입니다


오!그렇지. 수술이 끝났으니 회복을 하는 중이겠지.

갑자기 안도가 몰려온다.

다만 그 와중에도 꼭 내 눈으로 보고 싶었다.

문자가 아닌 아내의 생생한 모습을 말이다.


정말 세계는 언어의 그림인겐가?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결정적 한방의 문자.


[신촌세브란스] 김ㅇㅇ님 67병동으로 이동합니다.


5시15분에서야 내가 그토록 바라던 문자가 왔다.

그러고보니 문자만으로 이렇게 안심이되니

비트겐!자네의 말이 맞는 것도 같네.



한 숨을 돌리고

병실로 들어오는 아내를 맞이했다.


아!이렇게 반가울수가!!ㅜ ㅜ

그렇다.15년이 넘은 결혼생활이지만

이토록 아내가 보고픈 적이 또 있을까.

우리는 존재의 부재속에서 그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듯 하는데 부재 가운데 깨닫는 것은 그또한

비극이니

그 부재가능성 가운데 깨달은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아내가 병상에서 잠시 회복하는 동안

나는 그제서야 맘편히

혼자서 셋째를 면회하러 갔다.

걷지 못하는 아내가 함께보려면

최소 하루는 필요했다.

오!!이 자슥!!이렇게 생겼구나!!!

엄마의 건강이 확보되고나니

내 시야도 열렸나보다. 이제야 셋째 조이의 얼굴이

들어온다.


병실로 돌아와 아이 사진을 아내에게 보여줬다.

겨우 목소리를 내는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병원에서 그렇게 첫날을 보냈다.


둘째날 아내는 몸을 회복하기 시작했고

출혈이 심했던 수술과는 달리

수술후 출혈은 매우 적어 안정화되고 있다.


그리고 역시 엄마의 파워인가?

층이 달라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도

처음 걷기운동을 하면서 바로 면회하러 가자고 한다.

아이와 첫 대면!!

열달 가까이 뱃속에 품던 그 이상한??존재를

저렇게 꺼내놓고 대면할 때의 기분은 어떨까?

남편이라는 존재들은 절대 알 수 없는 기분이리라.



이제 퇴원 후 아이와 엄마가 2주간 지낼 산후조리원 계획을 다시 검토하면서

아 이렇게 우리 가족이 다섯명으로 재편성에 성공했다는실감이 들었다.


다시 나는,그리고 우리는 지금처럼 그랬던 것처럼 살아가겠지.

하지만 한가지 확실히 달라지는 것은

전혀 새로운 존재자 하나가 가족 구성원이 되었고

자기만의 개성으로 이 구성 전체를 바꾸리라는 것이었다.

분명 삶 그대로 지속되지만

그 안에서 거대한 파도가 밀려오고

그 파도를 잘만 탄다면

인생의 권태도 그렇게 타고 넘어가지지 않을까.

......

뭐라고?비트겐?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말라고?

자네도 나중에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나?

인생의 파도를 자네도 실컷 타놓고

나한테만 그러지 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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