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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Mar 02. 2021

셋째 출산 두 시간 전.

연세 세브란스에서의 표류

 

셋째 출산 예정일은 원래 4월 4일이었다.

내 생일이 4월 5일이니

괜찮을 듯싶다가도

아이 입장에서 나중에 아빠에게 생일선물 받고

다음날 아빠 생일 챙겨야 하는 부담감?을 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설레발을 쳐봤었다.

그런데

셋째는 내 나이 마흔하나에 얻는 늦둥이다.

게다가 아내는 나보다 두 살 연상이니

건강한 출산이 쉬울 리 없었다.


아내는 전치태반이 있었기에

제왕절개로 3월 27일 수술 날짜를 받아놓은 상황이었다.

그러다

지난주 정규 검진 이후

자궁수축과 하혈 증세로 다음날 바로 내원했더니

바로 입원하란다.

그리고 새로운 수술 날짜를 받았다.

그게 오늘 3월 2일이다.


참고로 코로나 국면으로

아내 얼굴조차 5일간 볼 수 없었다.

일단 아내가 고위험 산모 병실에 갇혀있는 형국이라

아예 면회가 금지였으니까.

게다가 수술 당일에는 어떻게든 코로나 음성 판정서를

들고 있어야 들어갈 수 있기에

일요일 오전에 한 시간 남짓 대기하여 코로나 검사도

받아두었다.


이번 출산은

전치태반이 심하여

과다출혈이 예상되는 분만이라서

나 역시 나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술은 아침 7시라고 했다.

아내는 5시부터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대기하고

있었고

나는 집에 있다가 아이들 학교 갈 준비 챙겨주다

늦어서 6시 30분에 부랴부랴 병원으로 출발했다.

정말 간발에 차로 7시에 정확하게 분만실 앞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소식이 없다.

얼굴도 볼 수 없는 아내에게 카톡이 왔다.

자기도 검사만 계속할 뿐 수술시간 안내가 없다고.

그렇게 한 시간을 대기했는데

수술시간이 11시 30분으로 밀렸다는

아내의 카톡이 도착했다.

이런 ㅜ ㅜ


모든 게 틀어진다.

원래 아침에 수술을 해야

아내가 수술 후 회복하는 시간 몇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집에 딸 둘만 있기 때문이었다.

거동이 불편할 아내 옆에 최대한 내가 있어줘야 하지만

한편으로 아이들끼리 저녁 밥을 차려먹고 잠까지 부모 없이 자기에는 무리가 아닐까 했다.

그래서 상황 봐서 저녁이라도 내가 차려주러 왔다가 아이들 잠자리 들면 다시 병원으로 올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술이 늦어지면 아내 옆을 비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내 역시 이 상황이 걱정이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무작정 대기만 하는 내가 안쓰럽기도 했던 것 같고.


여하튼 수술 전까지 3시간이 갑자기 생겼다.

얼른 집에 가서 둘째 아이 새 학기인데 등교라도 같이 해주고 싶어 주차장을 빠져나왔는데...

아뿔싸. 20분만 걸린다는 네비 안내 믿고 나왔는데 신촌로 앞에 차가 가득 있고(하긴 출근시간이다) 네비는 야속하게 예상 시간대를 쭈욱 늘려간다. 30분이 넘게 걸리면 이미 아이는 학교로 가고 없을 시간...

집에 있다가 여유 있게 11시까지 병원으로 오려면 사실상 1시간 30분 정도의 여유밖에 없으니 갈 이유가 없어졌다.

다시 차를 병원으로 돌렸고

주차장에서 잠시 멍 때리고 음악이나 들었다.

뭐하지?

물론 아내 옆에서 한참의 시간을 보낼 것을 알기에 읽을 책들은 챙겨 왔다. 이걸 차에서 읽을까?

아냐.. 어둡고 좀 있으면 차 안도 추워질 거다.


그냥 병원으로 다시 올라와

밥부터 먹고자 했다.

원래는 차를 병원에 두고

오래간만에 신촌 거리 좀 걷고 거기서 밥도 먹을 생각이었으나

그조차 어제 받은 코로나 음성결과를 떠올리며 참아야 했다.

만에 하나 괜스레 나를 위해 돌아다니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면 그 파급효과는 끔찍했다.

결국 병원 구내식당을 찾았고

한적한 공간에서

한적하게 육개장을 시켜먹었다.

맛은 없었지만

건강한 맛이었다. 배를 부담 없이 채우기에는 딱이었다.

밥을 먹고

텁텁한 이를 닦기 위해 다시 주차장에 가서

가방을 챙기고

편의점에 들러 아이스커피를 샀다

화장실에서 큰일도 치르고 가방에 준비해둔

양치세트를 꺼내 양치를 한다.

며칠 전에도 한번 올라왔었던

병원 5층의 한적한 장소를 찾아 걸터앉았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도 여기 앉아있다가

수술 날짜 앞당겨졌다는 아내의 카톡을 받았었다.

원래는 검사 후 같이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던

아내는 그 문자를 끝으로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얼떨떨하게 입원 수속을 하고 혼자 집에 돌아왔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지금 이 자리에서

나는 아내 수술시간을 기다린다.

이제 한 시간여 정도 남았다.

더 이상 미뤄지면 안 될 텐데......

이미 집안일까지 병행하느라

이번 주 일도 다 취소해놓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아내도 뱃속 아기도 건강한 상태이지만

수술 변수만이 걱정이기에

차라리 빨리 분만했으면 걱정거리가 사라질 듯하다.


이제 한 시간 정도만 지나면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큰딸에게도

작은딸에게도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게 가족의 탄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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