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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페홀로 Apr 19. 2021

떠나는 합정동 '화수커피'

코로나 시대에 고난 받는 자영업자

합정동에는 유독 카페들이 많다.

아니 원래는 서교동이 원조였다.

10년 전에는 서교동 카페골목은 매우 아름다웠다.

오래된 단독주택과 빌라, 작은 출판사와 사무실들 사이로 조금씩 들어서 있던 카페들, 그리고 로스팅이 진작부터 유명했었던 카페들이 많았는데

어둑해질 무렵이면 이 카페들로 인해서 서교동 골목이 얼마나 운치 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저 서교동은 지저분한 난개발로 인해 완전히 망가진 상태다. 부동산 업자들의 부추김 때문인 지는 몰라도 오래된 건물들을 사들여 부수고 4,5층이 넘는 건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1년 내내 공사 소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서교동이 망가지면서 망원동과 합정동 골목골목에 카페들이 다시 들어서게 되는데

내가 살고 있는 합정동 7번 출구 구역만 해도 족히 20개 이상의 카페가 있고, 아마도 더 있을 거라 추산된다

커피를 워낙 좋아하는 나는 가급적 한 번이라도

내가 사는 동네의 카페들을 방문해 커피맛이라도 보려고 한다.


그 많은 합정동의 카페 중

분위기나 쾌적함과 같은 변수를 제외하고

오직 커피 맛으로만 따졌을 때

손으로 꼽을 수 있는 곳이

커넥츠 커피인데,

여기를 제외하고 근처의 더 작은 '화수커피'또한

워너비에 빠질 수 없었던 곳이다.

물론 근처 큰 사이즈의 '빈브라더스'나 '앤트러사이트'가 유명하겠지만

거기는 그만큼 가격대가 있는 편이다.

여하튼

워낙 작은 카페에 사장님 한분 이서 운영하시는데

커피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정말 강한 분이었다.

물론 그 애착은 커피맛으로 충분히 증명 가능했다.

그래서 홀에서 마셔본 적은 없으나

 바로 옆 내 사무실에 가기 전에 종종 들러서

테이크아웃을 해서 마시고는 했었다.

커넥츠커피와 화수커피,

이 두 곳이 나에게는 합정동에서 가장 맛있는

로스터리 커피인 셈이었다.

개인적으로 사장님과도 같은 사업자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었는데

코로나 사태 이후 급격히 힘들어하셨었다.

최근 경기가 조금 풀리나 했는데

근처 어느 정도 큰 카페들은 다시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화수커피는 작은 홀만큼 손님 회전율이 그리 높아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일종의 딜레마였다.

비싼 임대료 때문에 크게 가게를 얻기 힘들었을 테고 그러면 손님이 많이 들어올 수가 없다. 그리고 합정동 카페를 찾아와 대화를 하고 가고 싶어 하는 손님들은 작은 카페는 아무래도 꺼리게 된다.

결국 인테리어가 예쁘고, 넓고 쾌적한 곳이

커피맛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에서 화수커피를 검색했을때 화면

최근 나 역시 사업은 사업대로 어렵고

셋째 출산까지 겹치면서 너무 정신없어서

화수커피를 들르지 못한지도 한두 달 된 것 같았다.

돈을 잘 벌어야 카페에서 커피도 쉽게 살 수 있다.

돈을 못 버는데 편의점 커피에 더 많이 손이 갈 수밖에 없으니 나 같은 단골조차 자주 못 가게 되니

이 또한 악순환인 셈이다.


그러다 주말 합정동 골목 인파가 유독 많아지면서

화수커피 상황도 좋아졌겠거니 하고 지나가다 보니

문이 닫혀있었다.

주말 내내 장사를 안 하시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되었었는데

설마가 결국이었다.

오늘 화창한 19일 월요일에 사무실에 볼일이 있어 지나가다가 사장님 생각이, 아니 사장님이 내려주시는 커피맛이 그리워 꼭 열었으면 사 먹자는 마음으로 갔는데 마침 불이 켜져 있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사장님! 커피 좀 줘요!라고 소리치며 들어가 보니 웬걸....

커피 기기를 다 정리하고 있었다.

가뜩이나 작은 카페에 짐들이 어지러 히 널려 있고

사장님은 늦은 식사 대신 분식을 포장해서

드시고 있었나 보다.

결국 합정동 카페를 접기로 하셨단다.

다만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어서

새롭게 투자를 받아서

서대문구와 광흥창에 카페를 새롭게 오픈할 거라고

하셨는데 계약처리도 아직 완료되지 않아서

걱정이 많으셨다.

그래도 흔쾌히 커피를 나를 위해 무료로 만들어주셨다. 이미 카드기나 결제 시스템도 없어서 그냥 선물로 주셨다.

커피맛은 여전히 맛있었지만

사장님의 안타까운 상황은 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당장 다음 주에 가게를 비워줘야 하는데

새로 들어가야 하는 가게 자리들은 전 세입자분들이 건물주와 분쟁 중인 듯했다.

게다가 코로나 지원금은 이번에도 못 받으셨다고 하는데 줄어든 수입 증빙이 제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갖가지 악조건의 상황들이 얼마나 사장님에게 스트레스로 다가오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나 역시 목동에서 교습소를 열었다 망한 적이 있는데 그때의 심정과도 같았다. 가게가 안되어 계약을 취소하려고 하면 어김없이 위약금이 날아오는 상황,,, 나는 복사기, 인터넷, 정수기 등이 다 위약금 덩어리였다. 망해서 나가는 사장의 뒤통수를 세게 때리는 현실이 지금도 똑같았다. cctv 설치한 것을 취소하려니 위약금만 몇십이라고 하고.....

물론 다시 시작하는 상황이기도 하기에 지금의 복잡한 상황이 조금씩 정리되면 다시 보란 듯이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카페가 커피맛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는 만큼 사장님이 이번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다음 사업장에서 어떻게 변화를 주는가가 관건이 아닐까 싶었다. 나 역시도 코로나 시대를 관통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꽤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커피를 팔든, 지식을 팔든 결국 서비스업종이기에 끊임없이 그 변화를 읽고 대응해야 하는데 정말 현실이 녹록지 않다.

나 역시 일에 집중하기는커녕 주로 태어난 아기를 보고, 밥을 하고 집안일을 거드는데 거의 시간을 보낸다. 그 와중에 가족을 건사해야 하는데 올해 중 하반기에 대체 나는 어느 정도로 일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오늘 결국 합정동 화수커피의 마지막 잔을 내가 마신다. 예전에는 커피 컵에 도장으로 화수라는 단어가 한자로 찍혀있었는데 지금 컵에는 그 이름이 없으니 왠지 정말 마지막인가 싶다.

다만 다시 여는 커피 브랜드의 이름이 이 빈 곳을 차지할 것이라 믿기에 사장님에게 카톡이라도 하겠다면 연락처를 받고 가게를 나왔다.

오늘 선물로 받은 커피만큼

사장님께도 작은 선물을 보내드려야겠다

코로나 사태로 또 얼마나 많은 자영업자 사장님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최소한 끌해서 집 사고 주식 사서 돈 버는 분들보다

땀 흘려서 자기 사업으로 돈 벌고자 하는 분들을

더 응원하고 싶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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