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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May 10. 2020

국문과 애가(哀歌)

어느 반쪽 국문인의 소회

어릴 적부터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이미 중학생일 적부터 나는 커서 글을 쓰겠다 마음 먹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완전히 글에 매진하기에는 그럴 정도로 부유한 집안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전혀 관심없는 상경 쪽은 가기 싫었다. 그래서 나는 문창과가 아닌 국어국문과를 택했다.


큰 오산이었다. 국어국문학과. '학'이란 단어가 들어간 만큼, 문학으로서의 문학이 아닌, 학문으로서의 문학을 가르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첫 전공 수업 또한 고등학교 시절의 주입식 교육과 그리 다를 바 없는 암기가 주된 수업이었기에 실망은 더 해 갔다. 무엇보다, 술자리에서 동기 중 몇몇이 천진하게 웃으며 말한


 '나는 전과하려고 여기 왔어'


 이 말을 듣고나선 아무래도 과에 정을 붙일 수가 없었다. 자칭 문학청년이라는 되도 않는 내 자존심의 문제도 있긴 했지만, 어찌 됐건 아싸가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자발적 아싸가 아닌 비자발적 아싸였다.


원래 생각하던 '수업 중 창작문예 합평'의 꿈이 실패한만큼, 나는 다른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글을 쓰는 길과, 취직의 길. 첫 째는 문예창작 동아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만족했고, 두번째는 문화 콘텐츠관력 학과와의 연계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으로 나름 '뭔가 해놨다'는 안도를 얻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 생활은 불만족스러웠다. 어디까지나 학교는 공대 위주의 학교였고, 그걸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인문대학의 인재풀과 시스템은 썩 좋은 게 아니었다. 나는 자격지심에 찌들어 살았다.

그렇게 나는 실망과 허무의 1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그리고 복학 했을 때 목도한 것은, 내가 그나마 미래를 위해 준비해놨다고 생각했던 문예동아리와 학과 연계과정이 사라져버린 현장이었다. 꾸준히 글을 썼지만, 어디에 보여줄 곳도 없이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한 교수님만이 알아주실 뿐이었다. 나를 글의 길에 머무르게 해준 교수님의 '인정'이 과연 축복인지, 혹은 굴레인지,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여하튼, 복학 후 나는 새로 개설 됐다는 연계과정에 귀가 끌려 또 속듯이 신청을 했다. 이것도 귀신같이 1년 뒤 과정이 증발해버렸다. 약 서른 명이 들어왔던 동기들의 절반은 전과를 했거나 학교를 떠났다. 전공수업을 들으며 얻은 건 글을 '그럴 싸하게 멋진 말'로 꾸며 쓰는 것, 사실 상 그게 다였다.


그래도 나도 복학 버프란 걸 얻었던 건지,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에서 많이 혜택을 받은 편이었다. 해외도 학교 덕을 받아 두 번이나 다녀왔고 일생에 잊지못할 추억을 만들긴 했다. 국문과의 수업을 들으며 기형도와 백석, 이상의 시에 푹 빠지기도 했고, 수업을 들으며 읽었던 다양한 논문들은 분명 세상과 콘텐츠를 보는 시각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본 과에만 머무르지도 않고 복수전공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글 쓰는 것 외의 활동을 하며 나름 재밌게 보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분명한 불안이 끊임없이 맴돌았다. 학과생활 4년이 지나도록 제대로된 작품하나 써내지 못했다는 불안, 혹은 자괴감. 그토록 믿던 내 글쓰기 실력이 사실은 보잘 것없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 혹은 때늦은 깨달음


아는 선배는 kbs에 취직했고, 다른 선배는 이름 모를 회사의 공장관리직으로 취직했다. 동기들은 매거진 사에 취직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과에 맞는 직업, 다 옛말이란 건 진작에 알고 있었다. 맘에 맞든 맞지 않든 먹고 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할 각오는 돼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영 변치를 않는다. 설령 국문과라는 스펙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데도 말이다.


결국 나에게 국문과는 완전히 버리지도, 애정하지도 못하는 대상이었다. 국문과를 완전히 부정하자니 여전히 가슴 깊이 남아있는 텍스트에 대한 애정을 걷어낼 수가 없없다. 그렇다고 글쓰는 일에 매진하자니 내 능력과 미래에 불투명이 무서웠다.


그래, 나는 국문과라는 근본을 위성처럼 맴돌았을 뿐이다. 차라리 땅으로 떨어져 땅의 일부가 됐었다면, 차라리 중력에서 풀려 저 텅 빈 우주로 풀려났었다면, 이제와 생각해봐도 별 수 없는 일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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