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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겁쟁이 공작새 Dec 07. 2021

코로나 양성, 세상의 차원이 낮아졌다

냄새없는 일상의 밋밋함

2주 전 주말, 모처럼 사람들을 만나고 전시회를 다녔다. 몇 달만에 만난 친구들이었고, 몇 달만에 본 전시회였다. 즐거움도 잠시, 월요일이 되자 감기 기운이 도는 듯 했다. 환절기 비염은 환절기도 끝났는데 다시 도졌는지 코가 막혀 음식 맛이 나질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음날 회사를 쉬고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수요일 아침. 양성이란 문자가 왔다. 코막힘은 뚫렸지만, 여전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세상을 이루던 차원이 한 단계 낮아졌다. 



 

내가 걸린 코로나 자체는 감기 수준이었고, 아버지도 나와 같은 수준으로 걸리셨다. 희한하게 나와 밀접하게 술 마시고 하던 다른 친구들은 전부 음성이었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오는 둥의 이야기가 있긴 했지만, 

나는 그렇게 문제 의식이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 현 감염대책에 대한 얘기는 생략한다.


냄새를 못 맡는다. 이건 참 애매한 증상이다. 

눈이 안 보이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장애가 되고, 귀가 안 들리면 시각 외 공간에서 날아오는 위기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듣지 못한다. 촉각을 못 느끼면 나처럼 잘 부딪히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금방 몸이 상할 테고 

미각을 잃는다면 '먹는다'는 행위는 '영양분을 섭취한다'로 격하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후각은?


사실 나조차도 냄새를 못 맡게 되었다는 걸 코로나 증상이 나타나고 사흘 뒤에나 알았을 정도로 후각이 내 세상의 차원을 차지하는 비율은 상당히 적었다. 원래 비염기 때문에 후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지라 큰 불편마저 못 느끼고 있다.


냄새가 없는 세상(재택격리 때문에 내 방구석 정도로 좁아지긴 했지만)은 생각보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 달리 말하면 좀 '밋밋한' 수준이었다. 

몸의 체취라던가 불쾌한 냄새도 안 나다보니 이불 두르고 하루종일 누워 있어도 일어나 씻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안다. 이건 내 위생관의 문제라는 걸).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할 때도 아무 냄새를 못 느끼니 그냥 별 생각없이 내 손으로 남은 찌꺼기들을 쓸어낼 수도 있다. 용변을 볼 때도 냄새가 안 나니 딴 생각에 더 잘 빠지게 된다. 

조금 더러운 얘기로 빠지긴 했지만, 요건은 이거다. 후각이 사라지자 내 세상에 '역겨움'이란 감정이 사라졌다. 물론 더러운 건 다 치우긴 하지만 그걸 치우면서 눈을 찌뿌리거나 하진 않게 된 것이다.

 

물론 당연히 좋기만한 것은 아니다. 

밥을 먹을 때도 짠맛, 단맛을 제외하곤 아무 향도 못 느끼다 보니 식사행위로 즐거움을 느끼는 일도 사라졌다. 추운 겨울, 늘 끓여마시던 유자차의 아릿한 향은 그저 단맛으로만 남아 뜨뜻한 설탕물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겨울 아침, 베란다를 열면 느껴지던 그 상쾌하던 공기. 코에서부터 뇌까지 머리 구석구석 훑으며 정신을 리부팅해주던 그 겨울의 숨결이 코끝의 한기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을 더럽게 볼 수 있던 차원도, 세상에 추억과 감상을 더해주던 차원도, 모두 후각에 있었다.   




인간의 기억에서 후각과 함께 한 기억이 가장 오래 남는다고 하던가. 확실히 아직도 난 봄날 낮의 푸근한 공기의 냄새를 맡으면 5살 때의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그래서 반대로 생각해본다. 이렇게 냄새 없는 일상도, 곧 빠르게 잊힐 거라고. 

언젠가 내 사라진 후각과 함께 코로나 없는 일상도 다시 돌아와 새로운 냄새들과 함께 새로운 추억과 기억들을 쌓아가겠지. 

단맛뿐인 유자차를 홀짝인다. 한 감각이 사라지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던데, 원체 무딘 나는 그런 게 없나보다. 그래도 내 몸의 코로나는 끝나가는 걸까. 혀끝 깊숙히 코와 맞닿은 어딘가에서, 아주 희미하게 냄새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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