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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Apr 30. 2024

<여름택시>

  정강이에서 오한이 느껴졌다. 정강이를 타고 올라온 오한이 뒷목에 서늘함을 줄 때 나는 울었다.


  3시간도 전에 나는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오늘은 힘든 날도, 그렇다고 평범하지도 않은 날이었다. 따지고 보면 좋은 날이라고 할만한 날. 한없이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설움을 달래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울지도 못한 채 아무도 없는 길거리 모퉁이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보니 설움이 발끝에서 올라왔다. 설움이 뒷목에 다다르니 뚝하고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한 여름밤이었다.


  된통 울고 나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시간을 보니 어느덧 막차 버스 시간이 한참을 지난 후였다. 반팔을 입어 있지도 않은 소매를 움켜쥐며 마지막 눈물을 쓸고 일어났다. 한 걸음 내디딘 발소리에 맞춰 등에 굳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속에 담겨둔 수많은 생각들을 뱉어내듯 하품이 쏟아져 나왔다. 하품 끝의 숨을 타고 들어온 여름의 축축한 공기가 속을 뒤집는 것만 같았다. 역해진 공기 탓에 최소한의 숨만 쉬며 택시를 잡았다.

  ···가주세요.

  ···어디?

  멍청하게도 나는 목적지를 말하지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그냥 이 역겨운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아 급하게 잡은 택시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혹시 어디 아픈가?

  나는 아프지 않다. 그냥. 조금 울적할 뿐이다. 오늘 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졌고, 내일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퇴근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이다. 나는 환자가 아니다.

  ···그냥. 조금 아파 보여서. 요 앞에 약국 있는데 약이라도 사서 가. 아니면 응급실을 갈까?

  안 아파요. A아파트로 가주세요.

  그래요. 금방 가요.

  택시가 출발하자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등대를 하나하나 지나가며 창가에 비치는 내 모습이 초라해 보였다. 택시 기사는 내가 우는지 모를 것이다. 아니 몰라야만 한다. 그냥, 비참한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다 왔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역한 공기가 또다시 올라왔다. 눈앞이 흐려지더니 속에서 무언가 올라왔다. 양손으로 전봇대를 부여잡고 토를 했다. 숨이 가빠져 들이마시는 공기 탓에 끝없이 뱉어냈다. 그 순간 누군가 등을 두들겼다. 묵직한 그 손이 아무 말 없이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젊은 사람이 무엇이 그렇게 힘들어서···.

  그러게요. 나는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솔직히 그냥 좀 힘드네요.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일하며 돈을 모으고 남들과 다를 거 없이 살아왔는데 말이에요. 누가 봐도 평범하잖아요 내 삶. 다들 힘들 텐데. 나는 왜 작은 설움 하나 달래지 못한 채 평범하게 살아가지 못할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나도 손님 같을 때 많이 힘들었거든.

  내 속마음을 읽힌 듯해 놀라 고개를 들었다. 등을 두들겨 준 사람은 택시기사였다. 하지만 그는 내 마음을 다 읽진 못했다. 나도 안다. 다들 힘든 거. 하지만 내가 정말 힘든 이유는 모두가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삶을 견디지 못하는 나 자신이 원망스러워서였다.

  ···사는 건 원래 다 힘들고 그런 건가요?

  그는 말이 없었다. 내가 두 눈으로 그의 눈을 바라보자 등에서 손을 살며시 떼어내며 말했다.

  힘들지. 나는 지금도 힘들어. 그런데 어떡하겠어. 그저 버티다 보니 어느 순간 감각은 무뎌지고 험한 세상 살아가는 것에 맞게 나도 단단해지고 말았는 걸. 그런데 또 이렇게 살아남아 보니 내 주변엔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제는 세상이 더 이상 험난 하지만도 않더라고.

  택시기사의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으며 그는 내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떠났다. 대화가 끝나자 거리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토를 한 탓에 힘이 풀렸다. 고개를 들자 붙잡고 있는 가로등이 지친 나를 달래듯 비추고 있었다. 빛이 만든 그림자를 밟고 여름의 공기가 풀내음과 함께 나에게 들어왔다.

  코끝이 간지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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