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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우진 Jul 14. 2022

속마음

속앓이

  글이 써지지 않는 날에는 일단 무엇이라도 읽어야 한다. 읽는다는 건 오랜 시간을 이겨 살아남은 책의 힘을 깨닫게 하고 글 쓰는 행위에 대한 막연한 자부심을 느끼게 한다. 읽다 보면 무엇이라도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썼던 모든 것을 불태워버리고 싶은 욕망도 들게 한다. 이토록 위대한 작품들이 널려있음을 깨닫고는 ‘굳이 나까지 글을 써야 할까’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다.


_유지혜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명명백백히 같은 마음이다. 글을 쓰는 모두가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쓴다는 행위가 자부심을 가져다주는 것도 맞다. 그러나 단순히 글을 쓰는 행위에 취한 것이 아니다. 생각을 글로써 탄생시키는 것. 생각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그것이 진정한 글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우리는 글을 통해서 직접 만나지 않은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그것은 대륙을 넘나들며, 시간 또한 방해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수치스럽다. 글은 말과 같이 뱉은 순간 돌아오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 보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세상에 존재하는 .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고 해도 이미 머릿속에 기억되는 . 완벽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완벽한 글을 보고 있자니 나는 어딘가 부족한 신념을 가진 사람인 것만 같은 초라함이 느껴진다. 마치 어른들 앞에 앉아있는 어린아이가  기분이다. 내가 알아들을  있는 말은 없다. 글도 없다. 시초로 돌아가 생각조차도  이해할  없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글의 필요성을 알아버린 사람이라면 더욱이나 심각하게 다가온다. 글이란 따라오지만 따라잡지 못하는 그림자 같다.


  의심을 미워해야 한다. 내가 못난 것만 같을 때 나는 정말 못나졌다. 생각이 변하면 글도 변한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생각이 바르다는 것이다. 의심과 그것은 너무도 멀어 있다. 서로를 바라보지만, 분명히 모래가 흘러들어 가는 쪽은 의심이 될 것이다. 남들과 생각이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글은 생각을 옮기는 매체가 되지만, 동시에 생각을 변질시킨다. 생각을 오롯이 전달한다면 나빠질 일도 없겠지만, 더 좋아질 방도도 없다. 글이 나의 생각을 변화시킨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태운다. 그러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글은 나를 태웠다. 그것이 가장 멋진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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