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우진 Dec 19. 2022

거인명선(巨人明善)

과제 때문에 써 본 졸고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수면 위로는 파도가 일렁였다. 그날 해안가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되었다. 시체 위에는 눈이 쌓여 있었고, 나는 급히 쌓인 눈을 치워 시체를 확인했다. 여인의 모습을 한 신장 18자의 거인. 여인은 상당히 부패되었지만, 나는 그녀를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았다.

 

         

  #1 

        

  “자 다들 올라타. 모든 것은 우리의 가족을 위해서다.”

  바다 위로 배가 떴다. 출항을 알리는 갈매기의 울음소리. 배에는 우리 섬사람들 일부가 탔고, 그곳에는 나의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혼자 있기 겁이 나서 부모님 뒤를 밟은 나는, 이웃 아저씨의 망태 속에 숨어 있었다. 부모님은 얌전히 나에게 이웃 아주무이와 있으라고 했지만, 혼자 잠들기는 무서웠다.

  “자, 하루 정도는 가야 하니 각자 챙겨 온 식량은 조절 잘해서 먹도록 하고. 우리는 내일 밤 육지에 도착할 것이며 자식 수에 맞춰서 소인들을 챙겨 올 수 있도록 한다. 그 이상은 챙겨 오지 않도록.”

  우리 부족의 족장 무태 족장님이 말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몰랐다. 소인들은 누구이고, 육지는 어디인가. 사람들의 표정이 어딘가 어두워 보인 것으로 유추한 컨대, 여행을 떠나는 느낌은 아니었다.

 출항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침울한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전에 뱃멀미에 속이 울렁거렸고, 나는 그만 숨어있던 망태 속에서 뛰쳐나와 토를 했다.

  “우웨엑!!”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나를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들 이렇게 놀라는 것일까. 나만 이렇게 속이 울렁이는 것일까. 내가 고작 5살밖에 되지 않은 소녀였기 때문인가. 그러나 부모님은 내가 또래보다 훨씬 더 성숙하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이 되었든, 어른들이 일을 하러 가는 것이든,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었다. 밤에 ‘혼자’ 있는 것이 내게는 더 큰 공포였다.

  “명선이 아니가!”

  어무이가 달려왔다.

  “여는 왜 따라왔노! 내 얌전히 옆 집에 있으라 했제…!”

  어무이는 당황하며 화를 냈다.

  나는 화를 내는 어무이가 무서웠고, 결국 울음이 터졌다. 부모님은 당황한 여색이 보였지만, 꾸중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더 크게 울었다. 부모님에게 혼나는 상황이 무언가 분했다.

  “분명히 옆 집 아주무이 한테 부탁했는디… 어휴….”

  부모님이 나를 달래기도 전에 옆에서 지켜보던 이웃 아제가 말했다.

  “명선 아바이요. 괘안타. 우리 조용히 다녀오면 되는 기라. 나도 느지막이 아가 생겨가 지금 이 배를  탔지마는, 지금 자네들이 이 배를 탄 것도 다 딸아 때문이지 않나? 명선이 니도 고만 울어라! 지지바야!”

  이웃 아저씨 말에 나는 눈물을 그쳤다. 내 편이 생긴 것만 같았고, 덕분에 억울함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네…. 그렇기는 한데….”

  아부지는 나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명선아, 내일 밤에 이 배는 육지에 도착할 기다. 그러면 아까 들어가 있던 저 망태에 들어가서 귀 막고 절대 나오면 안 된데이. 알았제?”

  육지가 무엇인가. 나는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아부지의 표정에서 느껴지는 간절함에 아부지의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밤. 해가 다 지고서야 배가 멈췄다. 육지라는 곳은 우리 섬과 다를 게 없었다. 조심스레 절벽 뒤에 배를 세우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명선아. 이제 망태에 들어가라. 절대 나오지 마래이. 알겠나?”

  아부지가 긴장한 눈으로 말했다.

  나는 아부지의 말대로 망태 속에 들어갔다. 귀는 막지 않았다. 눈을 뜬 채로 망태 틈 사이로 사람들을 지켜봤다. 그들은 은밀 신속하게 흩어졌다. 그런데 의문점이 들었다. 집들이 하나같이 자그마했다. 저게 집인가. 사람들이 살 것 같지는 않았다. 다들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 사이로 아부지와 어무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꺄아아아악!!!”

  어디선가 높은 비명소리가 들렸다.

  조용한 밤공기가 비명소리를 더 크게 퍼트렸다. 비명이 들리자 집같이 생긴 조그만 건물에서 사람 같은 게 튀어나왔다. 사람? 그들은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작았다. 소인. 소인이다. 사람들은 급하게 선착장을 향해 달려왔다. 부모님도 선착장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다들 손에 소인들을 쥐고 있었다. 소인들은 사람들의 손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몸부림에 소름이 끼쳤다. 아부지의 손에도 소인이 들려 있었고. 나는 처음으로 아부지가 무섭게 보였다. 간혹 아부지가 나를 혼낼 때에도 아부지는 무섭지 않았다. 지금 저 표정은 나를 혼낼 때의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사냥에 성공한 맹수의 모습이 보였다.

  절벽 위로 수많은 소인들이 보였다. 한 순간 하늘이 밝아졌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불을 쏘았다. 그리고 그 불이 사람들에게 박혔다.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아무이요!!! 아부지요!!!!”

  그 순간 불 하나가 배로 날아들어 바로 앞에 꽂혔다. 불은 망태에 옮겨 붙었다. 나는 불을 끄기 위해 망태에 든 채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파도가 심했다. 나는 헤엄을 쳐서 겨우 육지로 갔다. 그렇게 육지로 들어선 나는 눈앞의 광경을 믿지 못했다. 소인들이 쏘아 올린 불에 사람들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다시 배로 뛰었다. 파도가 거센 탓일까. 사장이 다 젖어 발을 딛기 힘들었다. 그래도 달렸다. 죽자고 달렸다. 불이 마구 날아오는 상황. 나는 부모님을 생각하지 못하고 배로 달렸다. 그 순간 나를 향해 불이 날아왔다. 나의 바로 꽂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또다시 불이 날아왔다.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땐 눈앞이 캄캄했다. 누군가 나를 감사고 있었다. 나는 눈앞이 눈물 때문에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부지였다. 안심이 되었다. 그 순간 머리 위로 따뜻한 물이 쏟아졌다. 물은 아버지의 가슴에서 나오고 있었다. 피였다. 밤이지만 타들어가는 불에 피가 붉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눈앞이 흐려졌다.

  “…배로 달리라. 명선아.”

 나를 안고 있던 아부지가 살며시 나를 놓았다. 나는 아부지의 눈을 바라보지 못했다. 아부지의 가슴에 흐르는 피를 보며 멈추지 않는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이윽고 아부지는 쓰러졌다. 아부지가 쓰려지고, 가려진 시야가 밝았다. 가려진 시야 바로 뒤 어무이가 보였다. 어무이도 등에 불이 박힌 재 쓰러져 있었다. 나는 부모님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활활 타고 있었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의 부모님이었다. 아부지에게 붙잡힌 소인이 일어나 도망갔다. 가까이서 보니 나와 키가 비슷했다. 달려가는 소인의 뒷모습에서 나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소인은 살기 위해 달렸지만, 나는 달리지 못했다. 살고 싶었지만,  아부지의 피에 젖은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몸을 덮은 아부지의 피가 무겁게 느껴졌다.

  “명선아! 니 명선이 아이가!! 여서 뭐하노 얼른 가자!!!”

  이웃 아자씨가 다급히 달려오며 나를 불렀다.

  아자씨의 손에도 소인들이 발버둥 치고 있었다. 아자씨는 나를 들어서 다급히 배를 향해 달려갔다. 나는 아자씨의 눈에서 익숙한 맹수의 눈을 보았다. 나를 든 오른손. 왼 손에는 소인이 잡혀 있었다. 나는 소인과 눈을 마주쳤다. 나는 소인의 얼굴에서 또다시 나를 보았다. 거울을 그들은 우리와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저 작을 뿐이었다. 부모님의 죽음은 믿을 수 없었다. 소인들이 부모님을 죽였다. 나는 살아있다. 저기 저 소인도 살아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지금 저 소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는 있는 힘 껏 아자씨의 오른손을 물었다. 아자씨의 손에 힘이 풀렸고, 나는 사장 위로 떨어졌다. 그 순간 소인도 아자씨의 왼 손을 물었다. 그 역시도 사장 위로 떨어졌다. 소인은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있는 힘껏 도망쳤다. 아자씨는 당황했다. 나는 살고 싶었다. 죽는 것이 무서웠다. 그러나 부모님이 없는 ‘혼자’인 밤이 더 무서웠다. 나는 부모님에게 달려갔다. 그러다 돌부리에 걸려 바닥에 곤두박질쳤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명선이 눈을 떴을 땐 하늘이 보였다. 코 끝으로 마신 바다 냄새에 속이 울렁거려 벌떡 일어나 토를 했다. 그 순간 누군가 명선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이웃 아자씨였다.

  “괘안나?”

  “….”

  아자씨는 나의 표정을 보더니 한참 뒤에 입을 뗐다.

  “왜 그랬노?”

  나는 아자씨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아자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왜 소인을 도망갈 수 있게 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나 내가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님의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이다. 쉬라. 배고프면 말하고.”

  아저씨가 한숨 쉬며 말했다.

  “아자씨. 저요 배고파요. 근데, 그전에…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궁금해요.”

  “명선아. 어제 일은 잊어라. 잊을 수 없겠지만 잊어라. 섬에 도착하면 그때 모든 진실을 말해주끄마.”

  이튿날 아침이 되어서야 우리는 섬을 도착할 수 있었다. 부모님의 시체는 육지라는 곳에 두고 온 모양이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몸에 묻은 아부지의 피로 부모님을 그렸다. 부모님의 모습을 잊기 전에 서둘러 그려야 했다. 이틀을 꼬박 그려 벽 한 켠에 부모님의 모습을 담았다. 서툴지만 그림에는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밤이면 늘 혼자인 공포에 눈을 뜬 채로 밤을 보냈다. 사흘이 흘렀지만 아자씨는 집에 오지 않았다. 진실을 말해주겠다는 아자씨의 말을 잊어갈 때 즈음, 아자씨가 집에 왔다.

  아자씨의 손에는 음식이 담겨 있었다. 나는 며칠 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음식을 챙겨서 집에 들어오는 아자씨의 모습에서는 잠깐이지만 아부지의 모습이 보였다. 아자씨는 음식을 내 앞에 놓으며 자리에 앉았다. 고기였다.

  “남기지 말고 무라. 그래야 효과가 있으니깐.”

  날고기. 삶지도 않은 날고기를 생으로 먹으라는 말인가. 그러나 나는 배가 고팠고.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입 안에서 피가 터져 입 밖으로 뚝뚝 흘렀다.

  “먹으면서 들으라.”

  아자씨는 입을 열었다. 그날 배에서 말했던 진실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아저씨의 말은 이랬다. 나를 포함은 섬사람들은 모두 거인이다. 거인이라는 호칭은 육지의 사람들이 만든 명칭이라고 한다. 육지의 사람들은 그날 본 소인들을 말하는 듯했다. 우리 거인들은 육지의 소인들의 심장을 먹어야만 성인이 되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5년마다 항해를 해서 육지로 나가는 것이다. 성인. 나이로 여덟 살이 되는 해. 나에겐 앞으로 13년 후의 일. 나는 얘기를 듣자마자 입 안에 있던 고기를 뱉었다.

  “우웩.”

  “왜 그라노? 내 얘기 못 들었나. 이걸 먹어야만이 성이 되어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안카나.”

  아자씨의 말은 이해했다. 그러나 내가 먹고 있는 이 심장을 보자, 그날 밤 아자씨의 왼손에 들려있던 소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속이 울렁거렸다. 먹었던 심장마저 다 토해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우리가 살기 위해서 소인들의 심장을 먹는 것이 옳은 일인가 고민했다. 그날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집에 온 후로 나는 단 하루도 제대로 잠에 들지 못했다. 아부지의 뜨거운 피가 머리 위로 흐르는 기분이었고,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타 죽어가던 아무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부모님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생생했다.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나는 그날 소인들의 얼굴에서 나의 모습을 모았기 때문이다. 소인들은 죽음의 문턱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

  “니 진짜 와그라노.”

  아자씨는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날 육지사람 도망간 거. 설마 니 그거 일부러 그칸기가?

  아자씨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먹는 심장이 그 소인 심장입니까?”

  “아이다. 그거는 내가 어렵게 구한 기라. 내 그래 육지인간 놓쳐가 큰돈 주고 샀다이가. 우리 집 아 하나 먹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내가 왜 하나 더 사가꼬 여 왔겠노. 내가 너를 구했는데, 심장을 안 맥이면 죽이는 거나 매한가지라 하나 더 구해가 왔다이가. 그러니깐, 묵어라 묵어.

  아자씨는 무조건 남김없이 다 먹으라고 하고 문을 열고 나갔다.

  아자씨에게는 고마웠다. 나를 살려줬으니깐. 그러나 나는 죽은 소인들의 심장을 먹으라고 하는 아자씨의 모습이 겁났다. 아자씨가 성인이 되고도 살아있다는 것, 부모님이 성인이 되어 나를 낳았고, 내가 태어났다는 것. 모두 소인의 심장을 먹었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소인들의 생명을 먹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맹수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비록 소인들에 의해 부모님을 잃었다. 그러나 나는 그날 맹수를 보았고, 포식자에게 쫓기는 피식자를 보았다. 부모님의 얼굴만큼이나 소인들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벽에 그린 부모님을 보았다. 소인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아부지의 온기. 명선은 차마 심장을 먹지 못했다. 이내 나는 아자씨가 준 심장을 버렸다.


          

  #2     

     

  그로부터 13년이 흘렀다. 인간의 심장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성인이 된 것이다. 지난 13년 간 나는 늘 혼자 있었다. 성인이 됐지만, 나는 아직도 밤이면 혼자인 것이 무서웠다. 밤에는 줄곧 악몽을 꿨다. 낮에는 공허한 집을 나왔다. 공허함은 나를 더 홀로 있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낮이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해안가로 갔다. 멈추지 않고 말하는 바다가 내 유일한 말동무였다. 나는 오늘도 어김없이 공허함을 깨기 위해 해안가로 향했다.

  멀리서 무언가 보였다. 익숙한 크기. 13년 전 보았던 작은 크기의 사람. 소인이다. 소인이 해안가에 쓰러져 있었다. 나는 소인에게 급하게 달려갔다. 눈을 감은 채로 쓰러진 소인은 내 또래 여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자신만 아는 굴로 들어가 그녀를 숨겼다.

  시간이 지나 소인이 눈을 떴다.

  “꺄ㅇ…!”

  나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쉿, 조용해. 내는 니 안 해친다.”

  그녀는 큰 눈을 더 크게 뜬 채 고개를 끄덕였다. 눈동자가 너무 커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이해한 걸로 알고 손 뗄게.”

  “꺄아아악!!!!! 내 살리도!!!!”

  그녀는 손을 떼자마자 소리 지르며 도망갔다. 나는 도망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또다시 그날이 떠올랐다. 도망가는 그녀를 제치고 다급히 굴 입구를 막아섰다. 나를 보는 그녀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겁에 질린 표정. 익숙한 얼굴이다. 그녀는 나를 보고 겁을 먹은 거다. 내가 거인이라. 그들에게는 한없이 크고 두려운 거인이라. 그녀가 이토록 겁을 먹은 거다. 이윽고 그녀는 또다시 기절했다.

  다시 눈을 뜬 그녀는 아직도 자신을 해치지 않은 나를 보며 안심한 듯, 도망가지 않고 입을 열었다.

  “저한테 와이 캅니까?”

  그녀가 물었다.

  “너희들이 우리를 그렇게 부르더라 거인이라고. 네가 보는 것처럼 내 거인 맞다. 여는 거인 섬이고. 거인들은 인간을 해할 거야. 나는 아니지만….”

  “그쪽은 왜 저를 안 해칩니까?”

  “말하자면 길다.”

  사실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내가 왜 소인들을 지키려 드는지. 그들은 비록 작지만 부모님을 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성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하찮고, 겁이 많은 또래 여자아이 같았다. 그저 해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고 설명했다.

  “제가 무례를 범했소. 이름이 뭐요?

  그녀가 물었다.

  “명선. 그쪽은?”

  “저는 연호라예. 김연호.”

  나는 연호와 긴 얘기를 나누었다. 그동안 거인들을 멸시한 탓에 나의 주변에는 말동무라고는 바다 하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대화를 하고 있자니 연호에게 미묘한 감정이 쏠렸다. 무엇보다도 연호와는 말이 잘 통했다. 해가 질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밀린 이야기를 마구 쏟듯, 나는 연호에게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하며 쉴 틈 없이 입을 떠들었다.

  “우리가 동갑이 줄은 몰랐네.”

  연호가 말했다.

  “그러게. 말 편하게 하자. 배가 고플 텐데, 내가 먹을 것 좀 가져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봐리.”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굴을 나섰다, 그 순간 연호가 나를 붙잡았다.

  “여기서 언제까지고 숨어 있어야 하나. 거인들이 해할 거라고 했지만, 명선이 니 보이깐 무서운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이 안 드는데. 같이 가자.”

  “… 그라믄, 좀만 기다리라.”

  나는 집에 가서 망태를 가지고 굴로 돌아왔다. 망태에 연호를 넣고, 함께 집으로 갔다. 이웃들에게 연호가 발각된다면 연호가 위험했지만, 나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간혹 찾아오던 아자씨도 지난해에 돌아가셨고. 집에 찾아오는 발길은 완전히 끊겼다.

  집에 도착해 망태에서 연호를 꺼냈다. 연호는 나오자마자 감탄했다. 연호가 지내기는 집이 깨나 넓었다. 나는 연호에게 줄 감자를 삶았다. 크게 느껴지지 않은 집이었지만, 연호가 있어서 일까 오늘따라 집이 넓어 보였다.

  “이거 네가 그린 기가?”

  연호가 벽에 그린 부모님을 보며 이야기했다.

  “어. 우리 부모님. 근데 어릴 때 돌아가셨다.”

  “… 맞나. 미안하데이.”

  “아이다. 감자 좋아하나? 묵자.”

  “헐. 이거 감자 맞나. 돌덩이 아니제?”

  연호는 큰 감자를 보고 넋을 잃고 있다가 한 입 베어 물었다. 육지의 감자는 소인만큼이나 작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 연호가 해주는 육지의 이야기에 빠져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반대로 나는 연호에게 우리 섬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다르게 연호와 가까워졌다. 연호는 신라에서 왔으며, 자신을 억압하고 통제하려는 아버지를 피해서 무작정 배틀 탔고, 섬에 도착해서 힘을 다해 기절했다고 했다. 연호의 아버지는 육지의 ‘신라’라는 나라의 장군이라고 한다. 연호가 본인처럼 강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며 호랑이 그 자체인 연호(然虎)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연호는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늘 한탄했다. 그리고는 나의 이름이 아름답다고 칭찬해주었다.

  “아버지가 많이 엄하신가 보네?”

  명선이 물었다.

  “말도 마라. 아버지는 장군이다. 여기가 울릉도라고 그랬제? 아버지는 오래전 이곳을 정벌한 이사부의 위대한 자손이라고 어릴 적에 들었던 거 같다. 요즘은 주변 국가들과 전쟁이 잦아서 집에는 잘 안 들어오시는데. 그 기회를 틈타 집을 나온 기다. 진짜 많이 힘들었거든. 이름이 연호가 뭐꼬. 연호가. 명선이 너네 부모님은 니 이름만큼이나 멋진 분이실 기라. 그림만 봐도 느껴진다.”

  연호의 말에 나는 표정이 굳었다. 연호는 당황한 눈치였다.

  “그나저나 햇빛을 못 본 지도 꽤 됐네….”

  연호가 말을 돌렸다.

  “우리 부모님은 너희 소인들을 죽이러 갔다. 그러다가 소인들 때문에 돌아가셨고, 나는 부모님을 참 좋아하지만 밉다. 그런데 소인을 죽이러 간 이유가 나 때문이라서 내가 더 밉다.

  “….”

  내 말을 들은 연호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나도 우리 거인들이 괴물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안다. 근데 우리도 살기 위해서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사실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이들을 멸시해도 나는 결국 이들과 같은 존재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그저 누구 하나 죽는 것이 두렵다. 가족이 죽고 나면 결국은 혼자가 된다이가.”

  나는 무언가 모르게 속이 시원했다. 꽉 막혔던 체증이 가신 듯 개운했다. 이제야 몸에 묻은 아버지의 피가 씻겨 나가는 듯했다.

  “네 맘 모두 이해가 된다. 결국 우리도 거인들이랑은 다를 게 없었다. 언젠가 아부지가 그랬다. 소중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엔 누군가는 희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이 말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나는 전쟁이라는 것이 죽도록 싫었다. 내가 아부지 말을 안 듣고 도망 나온 것도 다 이 때문이다.”

  연호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연호는 나를 이해해줬다. 아니. 거인들의 마음을 이해해줬다. 그리고 인간들도 거인과 다를 바 없다고 말해주었다. 자신들이 가축을 길러서 잡아먹는 것과 환경을 파괴하며 건물을 세운다는 것. 전쟁을 하는 것. 인간들도 결국 ‘살기 위해’ 그 많은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호는 적어도 삶의 의미에서 선과 악을 나누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기준은 서로의 입장마다 다를 것이고 끝없는 갈등만 초래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나는 연호에게 자신과 같은 동질감을 느꼈다. 그날 소인들의 얼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결국은 우리 모두가, 서로 살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생명체였다. 나는 올 해에 연호를 만난 사실을 다행으로 여기는 동시에 아쉽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마음에 맞는 친구를 얻었지만, 심장을 먹지 않은 나는, 이제 곧 죽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네. 우리 부모님이 죽은 이유도 결국 자유를 위해서니깐. 결국 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자유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 참 다행이다.”

  그날 밤. 나는 연호에게 올 해가 지나면 내가 죽는다는 사실을 말했다.

          


  <신라>  

   

  “연호야! 김연호!!”

  그 시각 신라의 장군 김서루가 소리 질렀다. 김서루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딸 연호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책상 위에 편지를 보았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처럼 강하지 못합니다. 때문에 더 이상은 이런 생활을 하기 싫습니다. 어머니가 그렇게 떠나버리고 그간 혼자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겠습니다. 부디 저의 마음을 이해해주시길.
연호 올림.     

  편지를 읽은 김서루는 무언가를 짐작하고 해안가로 갔다. 김서루의 짐작이 맞았다. 해안가에 있던 김서루의 나룻배가 없어져 있었다. 김서루는 급하게 자신들의 부하를 일부 소집했다.

  “딸이 혼자서 나룻배에 몸을 실었다. 멀리는 가지 못했을 테니 많이는 필요 없다. 딸을 찾아서 와라. 그리고 딸에게 내 꼭 전할 말이 있다고 하여라. 지금 당장 출발하거라!”

  “예! 장군.”

  김서루는 부하들에게 지시한 후 집으로 돌아와 다시 연호의 편지를 읽으며 생각에 잠긴다. 자신의 아내는 평생을 힘든 이웃들을 도왔다. 그러다 어느 한 노숙인에게 해를 당하고 죽어버렸다. 김서루는 그날 이후로 정신을 잃은 듯 약한 사람들을 경멸했다. 연호만큼은 자신이 지키겠다고. 약한 사람들을 밟아 올라가는 자만이 강자라고. 연호를 강하게 키웠다. 그러나 연호의 편지를 보며 늘 약한 사람들을 도운 아내가 생각났다. 아무리 강하게 키우려 애써도 연호는 자신의 아내를 닮았던 것이다.          



  <울릉도>    

 

  나는 햇빛을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연호를 위해 잠시만이라도 밖을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다. 망태에 연호를 넣고 밖으로 나갔다. 우리는 해안가로 향했다. 노을이 바다에 비쳐 출렁이는 수면 위로 윤슬 덮였다. 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연호에게도 보여주기 위해 망태에서 연호를 꺼내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노을은 내 태어나 처음이다.”

  연호가 감탄하며 말했다.

  나 또한 그랬다. 항상 보는 노을이었지만,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본 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기분이었다. 두 눈에 담긴 노을과 친구가 생긴 것을 축하라도 해주듯 손뼉 치는 파돗소리. 홀가분한 마음에 넋 놓고 노을을 바라보았다. 절벽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느끼지도 못한 채….          




  “뭐라??? 그게 참말이가?”

  “사실이옵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명선이 가가 육지인간이랑 둘이 같이 있다는 거제?”

  “그렇사옵니다.”

  해안가에 있던 명선과 연호를 무태의 부하가 보았다. 무태. 그는 울릉도 거인족 중 가장 큰 거인이다. 인간을 가장 많이 살육하고, 심장을 많이 먹은 거인.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이 큰 무태는 5년마다 이루어지는 항해에서도 남몰래 많은 소인을 잡아왔다. 본래 한 가구당 한 명의 소인만을 잡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무태는 그렇지 않았다. 심지어는 욕심의 강함이 정도가 넘어 동족인 거인족의 심장까지 먹는다는 소문이 돌았을 정도다.

  무태는 5년 전 해안가에서 명선을 보았다. 부모를 잃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명선을 보고도 무태는 배를 출항시키려고 했다. 거인족을 살리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다. 그저 자신이 살기 위해서. 배에 모든 거인들이 탑승하지 않았음에도 출항을 지시했다.

  “당장 둘을 잡아와라.”

  무태가 지시했다.     

   노을이 지고 나와 연호는 처음 만난 날 들어갔던 굴에 앉아 있었다. 어느새 겨울이 찾아온 것이지 밤바람이 매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겨울. 이 겨울이 지나면 나는 죽을 것이다. 아자씨가 진실을 말해준 날, 나는 아자씨의 말을 맹신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심장을 버릴 수 있었다. 죽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만약 죽더라도 막연하게 혼자서 살아가기보단 차라리 빨리 부모님의 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 그러나 연호를 만난 지금, 나는 13년 중 처음으로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보내고 외로운 몇 해를 보내고 드디어 처음으로 연호라는 친구를 만났다. 연호는 이미 나의 삶에 너무 큰 존재가 되어있었다. 매일 마다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서로를 달래어 주는 친구가 되었으며, 함께 받을 먹는 가족이 되었다. 연호는 나와 같은 또래 여자이면서, 심지어는 나보다 크기도 작은 육자의 소인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정의로웠다. 이름만큼이나 용맹한 그녀와 함께 있자니 차갑게 얼었던 지난해가 눈 녹듯 녹아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죽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안식처를 찾은 지금. 나는 자유를 찾은 것 같았다.

  연호는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겨울바람에 바다가 거세게 울었다. 나는 날이 추워 연호를 깨워 집을 가자고 했다. 그 순간 큰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우리 섬에 인간이 들어왔다. 흔하지 않은 일이야. 보통 육지의 인간들은 우리가 여기 산다는 것을 모르지만, 우리 또한 이 섬을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100년도 채 되지 않았을 터. 그만큼 섬이 육지와 거리가 꽤 있다는 말이고. 번번이 5년마다 위험을 무릅쓰고 육지를 갈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판단한 결과 나는 우리가 육지 인간들을 직접 키우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섬에서 육지인간 목격했다. 과연 그곳에 인간이 그 한 명뿐일까? 장담 못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소인들을 잡아 가두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것이다. 바로 오늘 밤 이곳에서 소인을 찾는 것부터다. 다들 이 인근을 샅샅이 뒤져서 육지인간을 찾아라!”

  쩌렁쩌렁한 목소리다. 나는 저들이 말하는 육지인간이 연호를 말하는 것이라고 직감했다. 연호는 겁을 먹었다. 우리는 굴 깊숙이 들어갔다. 살기 위해서. 살리기 위해서. 뒤돌아보지 않고 굴 안으로 들어섰다.

  저들의 말은 이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5년마다 육지로 가서 소인을 잡아오지 말고 섬에서 직접 소인을 키우고, 소인의 심장을 구하자는 이야기다. 무태와 수하들은 해안가를 뒤졌다. 그리고 굴 앞에서 망태를 발견했다. 그들은 즉시 굴로 향했다.

  쿵쿵쿵.

  일제히 움직이는 발소리가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3 

    

  같은 시각 김서루의 신라 군사들이 울릉도에 도착했다.

  “이렇게 큰 섬이 있을 줄이야. 이곳이라면 장군님의 따님이 있을지도 모른다. 찾아보자.”

  신라 군사의 우두머리 유리가 말했다.

  “어…? 대, 대장님. 저, 저거 보이십니까!!??”

  군사 중 한 명이 무언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무태의 수하들이 줄 서 있었다. 그들의 키는 최소 25자는 되어 보였다. 그들도 신라 군사들을 본 듯했다. 그들은 신라 군사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신라군들은 그들을 두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큰 거인들. 그들의 눈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다들 얼른 배로 도망 가!!”

  유리가 팔을 휘저으며 말했다.

  신라군은 배로 달렸다. 그러나 거인들의 속도를 이겨내지 못했다. 그들은 한순간에 포위당했다.

  “천운이여. 이렇게 제 발로 소인족이 우리 섬을 방문해주다니. 저들을 다 잡거라. 죽이지 말고 싹 다 생포해!”

  무태는 행복함에 어쩔 줄 몰라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굴속으로 쫓아오던 사람들의 소리가 멈췄다. 나는 연호에게 그만 들어가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이대로 가다간 연호가 죽을 수도 있다든 것은 확실했다. 연호가 죽는 것만큼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내가 밖에 나가서 상황 보고 올게.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이.”

  나는 밖으로 발을 옮겼다. 연호를 살려야만 한다. 혹 내가 죽더라도, 연호만큼은 살려 보내야 한다. 연호는 꿈을 이루어야 한다. 이제는 내가 연호에게 자유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굴의 벽에 살이 쓸려 피가 흘렀다. 그러나 이 정도 고통은 아무렇지 않다. 나는 오늘 친구를.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 또다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을 순 없었다. 굴 밖으로 나온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소인족들이 섬사람들에게 잡혀있었다.

  “이제야 기 나왔나. 명선아.”

  바로 옆에서 큰 목소리가 들렸다. 무태 족장이었다.

  “족… 족장님….”

  무태의 얼굴은 맹수의 얼굴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 보았던, 포식자의 눈.

  ‘뻑-’

  눈앞이 흐려졌다. 무태가 나를 강하게 내리쳤다. 의식이 흐려지고 있었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연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나는 기절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나는 두 손이 묶은 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고개를 들었다. 신라군들은 여전히 포위당했고, 무태 족장이 보였다. 그리고 그의 손에 쥐어진 소인이 보였다. 연호가 힘없이 무태 족장의 손아귀 안에 있었다.

  “연호야!!!!”

  나는 애써 연호를 불렀다. 그러나 연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족장님. 왜입니까! 왜 죽인 겁니까!!”

  내 말을 들은 무태는 나를 째려보았다. 그리고는 내 말을 무시하고 소인족과 이야기를 했다. 둘은 이야기 중인 것 같았다.

  “너희들이 우리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고 싸우는 이유는 이 인간 때문이군. 나는 너희들에게 좋은 조건으로 기회를 주려고 하는데 어떻게 들어보겠는가?”

  무태가 웃으며 말했다.

  저곳에 있는 소인족들은 연호가 말했던 육지의 군사다. 연호의 나라에서 연호를 구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기억은 흐리지만, 그들의 옷은 13년 전 그날 불을 쏘던 소인족들이 입고 있던 옷이었다. 나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13년 전 우리가 침범한 육지의 나라가 연호의 나라였던 것이다. 속이 울렁거렸다. 무태 족장의 손에 있는 연호가 두 명이 되어 보였다. 눈물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다.

  “조건?”

  흐려진 시야 앞으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인간들을 원한다. 이 여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는 말이여. 보아하니 이 여자를 구해야만 하는 입장인 것 같으니. 나와 거래를 하는 건 어뗘? 너희들이 교배가 가능한 인간들 10명만 보내준다면 내 이 인간을 너희들에게 넘겨주겠다.”

  무태 족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게 무슨 억지냐! 제발 그를 놓아주어라! 그러면 내 다시는 이 섬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아아악!!”

  연호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이 들었다. 연호가 위험하다. 나는 연호를 구해야만 한다.

  무태는 연호의 몸을 힘주어 조였다.

  “그렇다면 아쉽게 됐지. 우리는 육지에서 어차피 인간을 잡아갔다. 너희들이 인간을 보내준다면 앞으로는 그럴 일도 없다는 것이지. 육지로는 침범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좋은 조건이냐. 너희들이 손해 보는 조건이 아닐 텐데?”

  무태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알겠다. 알았으니, 우선 그녀를 좋아주어라.”

  신라군 우두머리가 말했다.

  “이제야 말이 통하는 군. 시간은 길게 주지 않겠다. 4일 안에 인간 10명을 구해서 오너라. 그때 이 인간을 넘기겠다. 알아들은 것 같으니. 4일 뒤에 보자고.”

  무태가 연호를 꽉 쥔 주먹에 힘을 빼며 말했다.

  무태는 연호를 든 채로 수하들과 함께 절벽 위로 올라갔다.

  나는 모든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태 족장. 아니. 무태의 손아귀에 쥐어진 연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연호를 잃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연호는 울지 않았다. 연호는 강하게 발버둥 치고 있었다. 13년 전 아자씨의 손을 물었던 소인족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신라군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지가 달려들게요. 그때 연호를 챙겨주소. 부탁 혀요.”

  나는 무태를 향해 달렸다. 13년 전 해안가에서 살기 위해 달렸듯, 아자씨의 손가락을 깨물고 달아나는 소인처럼. 아부지의 손에서 도망가던 소인처럼. 살기 위한 발버둥을. 혼자였던 내 인생에 연호가 찾아오고, 잠깐이지만 죽음을 무서워졌다. 그러나 내가 무서웠던 것은 나의 죽음이 아니다. 연호의 죽음이다. 나의 자유가 무너지는 것이다. 나는 무태에게 달려가 있는 힘껏 몸을 박았다. 연호는 무태의 손가락을 깨물었다. 연호가 무태의 손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무태를 잡고 절벽으로 힘차게 떨어졌다. 나와 무태는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쿵-’

  나와 무태는 작은 돌섬에 충돌했다. 뼈의 온 마디마디가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혈관이 다 터져 온 몸이 팽창하는 듯했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대로 바닷속으로 침몰하였다.          

       

  무태의 수하들은 당황했다. 명선을 뒤따른 신라군은 연호를 급하게 챙겨 달아났다.

  “안돼-!!!!!!”

  연호는 떨어지는 명선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연호는 순간 심장이 멈춘 듯 온몸이 차가워졌다. 그러다 한순간 심장이 뛰어서 온 몸이 끓어올랐다. 어느 때보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바위가 쪼개지듯 크게 울려 퍼진 충돌 소리가 격동하는 심장 소리를 집어삼켰다.     

  바다에 두 거인이 떠올랐다. 무태는 돌섬에 직격으로 추락해 즉사하였고, 명선 또한 죽어가고 있었다. 유리에게 업혀있던 연호는 몸부림쳤다. 엄청난 몸부림에 유리는 연호를 놓쳤다, 연호는 곧장 명선에게 달려갔다.     

     

  #4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보였다. 연호와 봤던 노을만큼이나 아름다웠다.

  “명선아. 안돼. 안돼. 죽지 마.”

  연호다. 연호의 목소리다. 그러나 연호가 보이지 않았다. 나의 눈앞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었다. 밤하늘이 내 눈을 삼킨 듯 눈앞이 깜깜했다.

  “…괜찮아… 나…는 오히려 편… 해.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이었는 걸. 드디어 부모님을 보러 갈 수 있어…. 연호야. 너를 만나서 너무…. 좋았어. 고마…워.”

  나는 연호에게 말했다. 눈앞에 연호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연호라면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도. 나도 고마…. 고마워 명선아….

  역시 연호는 옆에 있었다. 연호 같이 강한 아이라면, 혼자서도 잘 보낼 수 있을 거다. 연호와 함께 한 올 한 해는, 길었던 지난 13년을 잊게 해 주었다. 그거면 된 거다. 이제는 더 이상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연호도 그럴 것이다.

  “…너도 꼭…. 꿈을 이루었으면 좋겠어….”

  나는 연호에게 마지막 말을 뱉고 숨을 거두었다.   

       





          




  연호는 그렇게 신라군과 함께 신라로 돌아가는 길에도 계속해서 울었다. 신라에 도착한 연호는 집으로 돌아갔다. 김서루는 말없이 돌아온 연호를 안아주었다. 김서루는 연호에게 사과하였다. 연호도 아바지를 힘주어 끌어안았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찾아왔다. 화가가 되어 그림을 그리던 연호가 눈이 내리는 것을 보고 밖을 나갔다. 겨울바다의 바람이 매서웠다. 바다를 보는 연호의 눈에 무언 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엔 온몸에 눈이 쌓여서 하얗게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한 명의 여인이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속마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