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쓸쓸함은 남은자의 몫.
8. 쓸쓸함은 남은자의 몫.
안 보이면 문득 생각 나는 손님들이 있다. 그래도 대개는 유난히 가까웠다거나 특별한 사연이 있었던 것도 아니기에 근황을 애써 수소문하지도 않는다. 식당 손님과 주인의 관계란 게 서로 가벼운 인사는 하지만 진지하게 속 깊은 이야기 나누기도 좀 어색하다.
어쩌다 그들의 소식이 들린다. 주로 이직이나 이사가 많지만 게 중에는 돌아가신 분 들의 소식도 있다. 다리가 불편해 늘 자전거를 지팡이 삼아 끌고 오시던 과수원 할아버지. 이른 아침 찬바람 가르며 걸어오던 성인용품점 사장님. 낮에는 농사일 밤에는 어느 공장 경비를 한다는 초로의 마을분.. 다들 돌아가시기 전의 모습은 기억나도 이름조차 모른다. 이들의 부음은 돌아가신 지 한참 후에나 알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잘 드시던 탕에 고기라도 더 넣어드릴 걸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전부다.
손님들의 부음은 나의 친구 부모와 같은 주변인의 그것에 비해 결코 가볍지 않다. 돌아가신 분과 함께 식사하던 친구가 때로 혼자 쓸쓸히 식사하는 모습을 볼 때 면 오히려 그 죽음이 더 또렷이 다가올 경우도 있다. 쓸쓸함은 남은 자의 몫이다. 이럴 땐 괜히 죽음에 대한 답 찾기 어려운 질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종교와 철학에서 삶과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는 무한하다. 종교는 인간을 영혼과 육체를 이원화하고, 내세 내지는 영생을 이야기하며 올바른 삶을 추구토록 한다. 어떤 철학자는 죽음을 삶의 목적지라 하고, 죽음은 “인식의 사실이 아니라 의지의 사실”이다 라 하였다.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삶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함을 알고 정신적 자유를 찾게 해주는 삶의 철학 지향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꾼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관련된 연설을 빼놓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는 외부의 기대, 자부심, 당혹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고 정말로 중요한 것 만 남게 된다… 죽음은 삶을 바꾸는 매개체이다… 당신의 시간은 한정되어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며 시간 낭비하지 마라.. 용기 내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라…
이외에도 죽음과 관련된 책, 영화는 무수히 많다. 요는 죽음을 잘 받아들일 때 삶이 보다 의미 있어진다는 것이다. 죽음 때문에 허무하다면 삶이 허무하다는 말이며, 영원히 산들 그 삶이 허무하지 않겠는가? 영화에서도 드라큘라는 사람들에게 ‘죽지 않는 고통’을 아는 가라 묻는다.
공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물음에 ‘삶도 모르는데 죽음을 어찌 아는가’라 하였다. 막연한 내세 영생에 대한 기대보다 오늘의 삶을 가치 있게 충실하란 말일 것이다.
함께 식사하던 부부 중 부인만 와서 식사를 포장해 가셨다. 남편이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하고 이틀 전에 중환자 실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고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큰 고비는 넘긴 듯하다. 다행이다. 다시 건강해진 모습의 두 분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