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만사 - 9

9. 약봉지

by 빈그릇

9. 약봉지


손님들이 식사하고 난 후 식탁을 정리하다 보면 약봉지가 자주 눈에 띈다. 특히 건설 노동자들의 식탁에서 그런 경우가 많다. 어떨 때는 4명의 무리 전원이 식사 직후 약을 각자 먹고 자리를 뜨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식후 30분에 맞춰 약 먹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공포감이 한창일 때인 3~4월에는 약봉지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서는 또다시 늘었다.


사람의 겉모습을 보고 그가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없듯이 약봉지만 보고 어떤 약인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진통 효과가 있는 약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뼈마디 굵은 억센 손으로 약을 한입에 털어 넣고 공사현장으로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요즘 그리 크지 않은 건설 현장에 다니는 사람 중 40대 정도면 젊은 일꾼이고 이들의 상당수는 외국인이다. 한국인 노동자들은 60대 이후가 꽤 많다. 가만히 있어도 아플 나이에 힘든 일을 하니 오죽하겠는가?


술이라도 한잔 걸치면 넋두리한다. 젊은 시절에는 쪽 잠자며 야간작업까지 해서 30 공수도 훨씬 넘겨 일해 (한 달에 30일 넘는 일당을 받는다는 뜻) 자식들 대학교육까지 다 시켰다고. 그런데 그 자식들은 지금도 진통제 먹어가며 아직도 힘든 일 하는 아버지의 고통을 얼마나 알까. 그 자식들의 자식인 손주들은 가끔 할아버지가 주시는 용돈과 과자 한 봉지가 진통제와 바꾼 것이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


나도 목디스크로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물리치료사와 할아버지의 대화 소리가 들린다.

“작년에 너무 힘들어서 올해에는 농사 안 지으려 마음 굳게 먹었는데 그게 안돼. 지난겨울에 이미 퇴비 신청해 놓고 봄 되니 땅 놀리면 벌 받을 것 같아 또 심었어. 내년엔 진짜 안 할 거야...”

아마 이 할아버지는 내년에도 후년에도 계속하실 것 같다.


김훈은 어느 수필에서 말했다. 먹고사는 일만큼 남자의 숭고한 길은 없다고. 이것이 그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하는 이유다. 그런데 늙은 노동자가 진통제로는 버틸 수 없는 깊은 병이 들어 더 이상 숭고한 길을 갈 수 없을 때 어떻게 될까. 부디 따듯한 가족의 보살핌이 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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