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언젠가의 우리에게.
개인적인 감상평 1
별점 : 5개!
일자 : 2022.10.23
장소 : 롯데시네마 센트럴락
감상 :
지구가 돌고 어쩌고는 식상한 얘기지만 지구가 그랬듯이, 나는 이 세계의 주연이 아니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굳이 따지자니 민망하지만 아직 단역 급에도 못 끼는 것 같다. 하고 싶은 게 많다는 핑계로 무엇 하나 우직하게 파 본 일이 없었다. 공은 잘 못 차도 골은 잘 넣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다가, 공룡을 연구하는 고생물학자가 되고 싶었다가, 판타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가, 시나리오까지 전부 만드는 게임개발자가 되고 싶었다가, 디자이너, 웹툰 작가, 교사, 일러스트레이터, 강사, 도깨비 사냥꾼(?)... 그리고 시인이 되고 싶었다. 이루어내지 못한 바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는 앞으로도 수없이 실패하고, 기회들과 사람들을, 너를 놓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가 내가 알고, 느끼고, 경험하는 만큼 넓어지고 다채로워진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다. 과학이고 수학이고 잘 몰라서 하는 말이지만, 우주는 우리가 관측하는 만큼 넓어진다며? 그래서 나는 막연히... 힘을 기르겠다고 다짐한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과 감정에 무신경해지지 않고 보다 감각적으로, 좀 더 신비롭게. 내게 다가오는 빛나는 순간들을 다정하게 받아들이는 힘.
10년 전에, 누군가 나에게 인간관계도 성실이야. 라고 말했다. 매일같이 친구들 사이를 부대끼며 놀 궁리만 하고 있던 나에겐 경을 읽어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싶어서 까먹었던 말. 영화를 보는데 불현듯 쿡 박혀서 자꾸만 곱씹고 있었다. 그래, 인간관계도 성실해야 하는 거였지, 그 말이 맞았네. 그렇지만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성실한 이름들 사이에 내 명함을 밀어넣는 건 너무 뻔뻔한 일이다.
수천 수만가지로 뻗어나간, 아직까지 알쏭달쏭한 다중 우주 속에서 나는 작가, 시인, 축구 선수, 고생물학자, 게임개발자, 디자이너... 어쩌면 유튜버가 됐을 수도. 너를 만났거나, 지나쳤거나, 안았거나, 떠나보냈을 테다. 이 우주에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나는 미리 상상해본다. 넓혀나가지 않은 세계로 손을 뻗어 버스 점프 해본다. 뜬금없이 벌떡 일어나 막춤을 추고 코끼리 코를 돌아본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만나게 됐을 때,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난 우주134에서 메시만큼 유명한 축구 선수였어. 우주348에서는 유튜버였는데 구독자는 40몇명밖에 안 됐어...구독하고 좋아요 좀 눌러줄래? 우주1199에서는 우리가 손가락이 전부 소시지였어...... 그래도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칠 수 있더라고. (우주1의 나는 멀쩡한 손가락으로도...)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마, 손사래치며 어깨를 때리면 그냥 멋쩍게 웃으면서.
이제는 조금 성실할 수 있을까. 수없이 실패하고 좌절하고 후회하겠지만. 성격 테스트를 하면 취약점으로 항상 끈기와 성실함이 꼽히는데 어떡하지? 내가 무던히 기르고자 하는 힘으로 차곡하게 내 우주를 넓힐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알록달록하고 두근두근한 네 세계를 다정히 맞이하고 싶다. 소소한 대화와 유머. 상상만해도 벅차게 재밌으면서도 아득하게 아련해지는 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