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상평 2
<아바타>가 개봉했을 때, 난 중학생이었다... 처음 보는 3D 영화에 입을 벌리고 봤었지.
디즈니가 폭스를 인수하고 <아바타>가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면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나는 그때까지도 <아바타 2>가 개봉될 거라는 사실조차 몰랐다. (부끄럽지만 시리즈인 줄도 몰랐다!) 개인적으로 시리즈 영화는 각각의 영화가 '독립적인'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준에서 <아바타>는 좋은 성공사례인 셈이지. 반대로 요즘 들어 휘청대는 마블에 대한 얘기도 언젠가는 다루겠다.
러닝타임이 192분이라니. 사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25분가량 된다고 하던데. 최대 집중과 최소 집중의 사이클이 몇 번을 도는 거야? 물론 영화를 볼 때 그런 걸 생각하며 보진 않는다. 보통은 화장실을 어떻게 참느냐에 집중하는 편이지.
영화관에서 팝콘은 잘 안 먹지만 (있으면 잘 먹음.) 콜라는 꼭 마신다. 라지로 마셔야 보는 내내 촉촉한 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자부해왔다. 그러나 192분은 좀 너무하지. <어벤져스 : 엔드게임> 볼 때도 중간에 화장실을 다녀왔던 걸 떠올렸다. 도저히 영화 중간에 사람들 틈을 비집고 화장실에 갔다가, 다시 비집고 자리로 돌아올 용기가 나지 않아서... 콜라는 미디움으로 마시기로 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디움 콜라를 마신 건 좋은 판단이었다.
<아바타 2>의 컴플렉스는 <아바타 1>이다.
전작을 능가하는 속편을 만드는 건 힘들다. 형만한 아우 없다고. 아바타도 그렇다. 분명 스케일과 시각효과는 192분이라는 러닝타임을 내내 압도한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봤다'는 게 조금은 식상한 표현이지만. '판도라'라는 창조된 하나의 세계가, 이번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계속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골조가 앙상했다. 불필요하다 싶은 장면이나, 클리셰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따지고 보면 <아바타>도 대단히 신선한 플롯으로 전개되진 않았지. 전작에서는 굳이 꼬집자면 꼬집을 수 있는 뱃살인 느낌이었지만, 오히려 단점이 커져버렸다.
무려 5부작으로 계획했다며?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고.
여기서부턴 스포일러.
"판타지 SF 영화인 줄 알았더니, 가족 드라마더라고."
엄마가 영화를 보고 와서 한 말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이크 설리 가족은 내내 주문을 외듯이 설리 스틱 투게더를 중얼댄다만...
설리 가족 : "우리 가족은 하나예요!"
관객 A (이성적임) : "그래, 알겠는데. 난 좀 몰입이 안 되네."
관객 B (호전적임) : "어쩌라고. 가족이면 하나지, 둘이냐?"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가족 서사의 기초적인 빌드업을 하긴 했다. 그런데 이 가족이 그렇게 끈끈한지는 잘 모르겠단 말이지. 제이크 설리는 애국자인가. 애를 셋이나 낳았다니. 전작 이후 15년이 지났으니까 (이거 왜 현실하고 비슷하게 흘렀어요?) 그럴 수 있긴 하겠다만. 입양한 키리까지 포함해서 6명의 대가족이 정말 말 그대로 하나라는 걸 강조하기엔 배정된 시퀀스가 좀 애매하지 않았나 싶다. 어깨 무거운 장남, 열등감에 엇나가는 차남, 몸이 불편하거나 어린 딸들... 이게 뭐야, 아는 맛인데?
아는 맛이 무서운 법이라지만, 너무 아는 대로 편한 대로 흘러가니까, 대작이라는 기대에 못 미친다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심지어 가족 서사를 드러내는 장면은 가족끼리의 티키타카도 아니고 나레이션이잖아. 샘 워딩턴 목소리 좋은 것만은 알겠다. 편의대로 '자, 초반 설정 대충 이렇고요. 말 다 했으니까 빨리 바다로 갑시다.' 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이, 이쪽은 초당 제작비가 2억 3천만 원이라고? 후후.
인물은 인물대로 늘어났는데, 하나하나 살아있지 않고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심지어는 주연급 포스를 가지고 있어야 할 인물들 (네테이얌, 맷캐이나 부족장 등) 조차 영화의 전개를 이끌 뿐인 구조적인 장치로 소모되어 버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로아크의 성장물일 뿐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변수는 스파이더였다. 쿼리치 대령의 아들이지만 사실은 가족이 아닌. 오묘한 관계에서 오는 대립적이면서도 유대적인 아이러니가 흥미로웠다. 이 부분에서 더 할 말 많았을 것 같은데, 아쉽다. 나비족이지만 인간의 가치관을 가진 제이크 설리, 인간이지만 나비족의 가치관으로 자란 스파이더. 그리고 '나비족처럼 행동하겠다'는 껍데기만 나비족인 쿼리치 대령의 3파전. 너무나도 재밌게 전개할 만한 요소들이지 않아? 그나저나 스티븐 랭... 눈멀었을 때도 진짜 무섭게 연기 잘하셨는데, (맨 인 더 다크) 여전히 베스트 빌런이십니다...
납치를 못하면 악당을 못해요
가족 서사의 부실한 면 이외에도, 전개 방식이 좀... 유치하다. 앞서 서술했던 부분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가족유대를 다룬 다른 영화들에 비해 좀 부족하다. 애들은 일을 벌이고, 부모는 수습하느라 바쁘고. 어느 부분에서 내가 설리 가족에게 유대를 느껴야 되는 거지? '애들이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야기 전개상 무조건 잡힐 수밖에 없겠지.'라는 생각으로 멍하게 바라볼 뿐이다.
"나, 갑자기 똥이 마려워."
"무슨 똥?"
"투크가 납치될 똥 말 똥"
이후 쿼리치가 답답할 지경에까지 이른다. 왜, 예전에 무한도전에서 새끼 빙어를 놓아주면서 '놓아줄 테니까 부모님 모시고 와~' 하는 장면처럼. 놓아줄 테니까 설리 데려와. 그렇다면 쿼리치 대령은 낚시꾼인가. 새끼 빙어를 서너 번 잡고도 끝내 어른 빙어를 노리려는 한탕 주의자인가.
3편을 다분히 의식하고 있는 이야기의 골조였다. 앞서 말했듯, 나는 시리즈물이 각각 독립적으로 살아있는 영화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후속작에 대한 떡밥은 덤일 뿐이어야 한다고. 나올랑 말랑 한 인물간의 관계들. 이럴 거면 바다 부족장 딸은 굳이 왜 나온 거야? 기껏 살려놓은 쿼리치의 싱거운 퇴장이라든가, 내내 나레이션 하기 바쁜 제이크 설리. 갑자기 3편에서 "사막이 새로운 나의 집" 하면서 사막으로 가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였다고.
그래도 재밌어.
'볼까 말까?' 한다면 '봐야 한다'다. 세간의 평이 안 좋다 해도.
<192분짜리 판도라 행성 올로케 4D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하고 봐도 재밌다. 오우, 이 집 다큐멘터리는 액션씬까지 정말 참신하게 잘 뽑는다구요! OTT가 판을 치고, 표값은 계속 올라가지만... 이런 영화는 영화관에서 봐야만 한다. 집에서 느낄 수 있는 웅장함의 한도를 넘어섰다.
어쩌면 영상미가 전부인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외에도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많다. 원주민과 자연의 관계에서 오는 애틋함. 원주민이 가진 편견들에 대한 고찰. '이크란'에서 '툴쿤'으로 이어지는 생물과의 유대에 대한 경이로움.
좋은 것들을 이야기하는 게 상대적으로 어려운 법이라 비교적 짧긴 하지만... 이런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나서 정말 좋다고 느낄 정도였으니까. 앞으로 CG는 얼마나 더 발전할 것이고, 어떤 생물들이 더 등장할 것이며, 판도라는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숨기고 있는 걸까? (만수무강 하시라고요 감독님.)
가치있는 영화적 체험. 2년 간격으로 개봉될 예정인 (근데 이제 개봉 연기를 곁들인) <아바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