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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Jan 10. 2023

<토르 : 러브 앤 썬더>와 '마블 영화'의 문제점들

개인적인 감상평 3

별점 : 3개

일자 : 2023.01.08

장소 : 집

감상 :


나는 이제 마블 영화가 기대되지 않는다. <어벤져스 : 엔드게임> 까지 마블 영화를 한 편도 빠짐없이 봐왔고 방에는 어벤져스 브로마이드까지 걸려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영화관에서도 굳이 마블 영화를 고르기가 꺼려진다. 정말 '굳이' 보기가 좀 그렇다. 영화를 숙제처럼 보는 게 어찌 유쾌한 경험이랴.


완다 曰 :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다쳤어요.
닥터 曰 : 나 디즈니플러스 안 봐서 몰라.


<토르 : 러브 앤 썬더>는 그렇게 흘려보낸 영화였다. 디즈니플러스에 올라오고도 볼까 말까 고민했던 영화. 심지어 <토르 : 라그나로크>를 재밌게 봤음에도 불구하고 고민했다. 그래도 '타이카 와이티티'가 연달아 감독을 맡았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르 특유의 얼빠진 마초 캐릭터를 잘 살렸을 거라 생각했다.


기대감과 기대충족감은 왜 반비례할까


기대를 안 한다고는 하지만 정말 아예 기대를 안 하는 건 좀 어렵다. 이놈의 기대감을 컨트롤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기대감에 대한 글도 언젠가... 쓰겠다.) 


이번 글에서는 <토르 : 러브 앤 썬더>에 대한 감상평을 베이스로 하되, 전반적인 마블 영화의 문제점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단, 말도 많고 탈도 많은 PC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겠다.)


이제 웬만한 CG는 신기하지 않다.


미리 이야기하겠다. <아바타 : 물의 길>의 영향일까. 웬만한 CG는 다 거기서 거기로 보인다. "그래픽에 모든 걸 건다!"를 모토로 삼는 영화는 이제 진부하다는 뜻이다. 이 정도는 이미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충분히 봤다. 그러니까 '집에서 본 게 아까워질 정도'로 CG에 공들인 게 아니라면, CG로 승부할 수 없다.


또 전작이 컴플렉스다.


<토르 : 라그나로크>는 최근 본 마블 영화 중에 손꼽을 만큼 재밌게 본 영화였다. 손에 꼽을 만한 영화들이 없기 때문도 있지만. 오랫동안 소모되었던 토르의 캐릭터성을 훌륭하게 뒤집었었다. '괜찮은' 미국식 개그들이 러닝타임 내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미국식 코미디를 좋아하지 않는다. 저속하지 않은 유쾌한 말장난이라면 정말 재밌지만, 도를 지나치지 않은 경우가 잘 없다. 영화에서 제일 싫어하는 장면을 꼽자면 '집에 동네 사람들 전부 불러 모아 파티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겠다. 그걸 하우스 파티라고 하나? 하여간 그렇게 파티하고 놀면 사고가 안 나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랑 정말 안 맞는 문화다.


왜,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다 보면 점점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알게 되듯이. 나도 미국식 코미디를 싫어하다 보니 자꾸만 의식하고 보게 되는데, <토르 : 라그나로크>는 '선을 잘 지킨' 미국식 코미디였다.


내 기준에 미국식 코미디가 '선을 잘 지킨다'는 두 가지로 나뉜다.

1. 너무 저속해지지 않는다.

2. 너무 유치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너무 유치하다. 단순히 극 중 인물이 유치한 행동이나 대사를 한다는 의미에서의 유치하다는 게 아니다. 장면도 메세지도 전부 유치하다.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는 토르라는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망치의 신 토르'가 아닌 '천둥의 신 토르'로서의 진정한 각성. 아스가르드의 존폐를 둔 상황에서 나름 철학적인 고민까지 들어있었다.


그런데 <토르 : 러브 앤 썬더>에서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시나리오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그래서 토르가 하는 게 뭐냐?


그래서 이게 <토르 : 러브 앤 썬더>인가, <마이티 토르와 울퉁불퉁 맨몸의 토르>인가. 최근의 마블 영화에서 '주연이 주연답게 행동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물론 등장인물이 엄청나게 많고 영화 밖에서까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마블의 특성답게, 주인공이 정말 모든 걸 다 하는 일은 잘 없지만. <아이언맨>은 아이언맨 혼자 다 하면서도 잘했잖아.


영화 주인공은 '해결사'다. 극에 등장하는 수많은 갈등을 '누가 해결하느냐'가 '누가 주인공이냐'와 같은 말인 것이다. 더군다나 극 제목이 주인공 이름이라면.


월드컵 조별예선 포르투갈전을 영화로 만든다고 가정하자. 황희찬이 주인공일 수도 있고, 손흥민이 주인공일 수도 있다. 어쩌면 호날두가 주인공일 수도 있겠지. 


만약 황희찬이 주인공이라면 손흥민이 패스할 때, 슬로우 모션이 걸리면서 그동안 그가 훈련했던 순간들. 그 골을 넣기까지 노력한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있겠지. 그 훈련들이 이른바 '복선'이 되어 가장 중요한 갈등을 해결하는 장면에 짜릿함을 더하는 거다. 손흥민의 패스와 호날두의 신들린 선방은 문제 해결의 도구인 셈이지.


그런데 느닷없이 손흥민을 클로즈업하면서, 그가 부상당하는 순간의 괴로움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일들을 비추면 어떻게 될까. 황희찬이 골을 넣던 호날두가 골을 넣던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손흥민이 되고 황희찬은 도구가 되어버린다.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다.)


어라, 이거 영화 제목 <황희찬>이었는데, 왜 손흥민이 주인공처럼 느껴지지?


그러니까 <토르>에서는 토르.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는 닥터 스트레인지. <블랙 위도우>에서는 블랙 위도우가 문제해결의 주체여야 한다. 로키가 나오든 타노스가 나오든 알 바 아니고,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해결해야 된다고.


근래 마블 영화를 볼 때면 '로다주가 몇 억을 받는다는데 이 정도는 나와야지.' '나탈리 포트만은 얼마를 받았을까.'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데 이런 걸 내가 왜 생각해야 되는가. <토르> 상영관에 앉은 사람은 토르를 보러 왔지 타노스를 보러 온 게 아니다. 


현재 마블의 문제는 자꾸만 <토르 : 아이유, BTS, 블랙핑크, 오징어게임>을 만들려고 한다는 거다. 제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는 말이다.


최근 개봉했던 <닥터 스트레인지 : 대혼돈의 멀티버스>에서는 최종 결전에서 '완다'를 막는 게 결국은 '아메리카 차베즈'였다. 그러니까 아메리카 차베즈를 도구로 쓴 게 아니라, 아메리카 차베즈의 각성을 돕는 도구가 됐다. 아니, 아메리카 차베즈 배우는 돈도 많이 안 들었을 거 아냐?


토르가 이번 영화에서 한 거라고는 "다시 얼빠진 지능과 울끈불끈 나체쇼"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적어도 히어로 영화라면 임팩트 있는 등장씬이 한 번쯤은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토르 : 라그나로크>에서는 레드 제플린 노래와 함께 능력을 각성해서 날뛰는. 그러니까 정말 간지가 나는 장면이 있었다. 남자가 히어로 영화를 왜 볼까? 멋있으니까. 간지 나니까. 쩔어주니까!!! 근데 왜 여기서는 그걸 곰인형 든 애기가 하고 있냐고.


뻔하긴 해도 막상 보면 멋있는 장면들 있잖아.



웅장한 빌런의 옹졸한 퇴장


모두가 기억하는 마블 영화상 최고의 빌런은 타노스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블랙 팬서>의 킬몽거가 기억에 남는다. 빌런의 서사를 잘 설명하는 것 또한 히어로 영화의 중요한 요소다. 빌런의 가치관이 선명할수록 대립은 뚜렷해지고 극이 설득력을 가진다. 그 유명한 <다크나이트> 시리즈가 왜 성공했을까. 빌런 조커의 가치관이 너무나도 선명하고 소름 돋도록 설득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잘 만든 히어로 영화는 관객이 '히어로를 응원하지만 빌런에게 자꾸만 동조되는' 경향을 가진다. <블랙 팬서>를 볼 때, 나는 차라리 킬몽거가 블랙팬서를 하는 것도 낫겠다 싶었다. 타노스가 매력적인 빌런이 된 까닭 또한 일맥상통한다.


타노스 : 과잉 인구가 우주를 해치니까 공정하게 랜덤으로 딱 반만 없애자.
히어로 : 그렇게 해서는 안 돼!
타노스 : 그럼 마땅한 방법이 있어?
히어로 : 그건 아니지만... (머뭇)(쭈뼛)(민망)


<토르 : 러브 앤 썬더>에서 등장하는 '고르'는, 크리스찬 베일의 열연 덕분에 더 눈에 띈 것도 물론 있지만. 분명한 가치관을 가진 빌런으로 등장한다. 신의 존재와 역할에 대한 물음을 던지면서. 영화 초반부터 B급 냄새는 풀풀 나지만 나름 철학을 가진 장면들을 가지고.


고르와 토르의 전투장면 또한 상당히 괜찮게 보였다. 색을 가지지 않은 '무채색 캐릭터' 고르와 뭔가 더 엄청 화려해진 것 같은 토르가 맞붙으면서 대조적이고 대립적인 느낌을 잘 살렸다.


빌런의 가치관은 선명한데, 히어로의 가치관이 불투명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될까가 아니라 어떻게 됐다. 이 영화가 딱 그렇다. 완전 고꾸라졌다. 고르가 아이들을 납치해 갔다. 토르가 구하러 가야 되는데, 이때 토르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1. 타노스와의 결투 때처럼 최고의 무기를 구한다.

토르 옆에는 이미 스톰브레이커가 있다. 심지어 영화 내내 묠니르를 질투하고 (아니 글쎄, 무기가 여친처럼 질투를 하는데... 이게 비유가 아니라 진짜 무기가 진짜로 질투를 한다니까?) 스톰브레이커의 성능이야 말할 것도 없다. 


2. 나쁜 고르를 함께 혼내줄 든든한 동료를 구한다.

그래서 제우스를 만나러 갔더니, 어머 세상에 우연히 우주 최고의 무기 썬더볼트가 제우스랑 같이 있네? 그러니까 타락해 있는(그래도 자기 관할은 잘 돌보는 것처럼 보이는) 제우스 명치를 뚫어버리고 썬더볼트를 홀랑.


3. 고르를 무찌를 수 있는 멋진 전략을 준비한다.

그런 거 없는데? 일단 가보자.


그리고 정말 '그냥' 가서 '그냥' 진다. 가면서 눈 맞아서 뽀뽀뽀나 했지. 그래서 우주 최고의 무기라는 썬더볼트는 어디다 써먹었을까. 전작에서 무기에 연연하지 않는 각성된 모습을 보여줘 놓고, 왜 다시 '도끼의 신' 토르가 되었을까.


다음 중 위기에 직면한 히어로를 보는 관객의 말로 적절한 것을 고르시오.

A : 와, 빌런이 너무나도 강한걸? 쉽지 않은 상대가 되겠어.

B : 까불다가 개털릴줄 알았다. 으휴, 멍청이. 꼴도 보기 싫어.


나는 B였다... 아니 솔직히 막말로 고르가 신 다 죽이면 우주가 어떻게 되려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래놓고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 밀린 방학숙제를 급하게 쏟아내듯이 메세지를 던진다.


토르는 제인과의 사랑을 고르와 딸의 사랑에 대치시키면서 고르를 개심시키는 데 성공했다. 영화 내내 토르가 방황했던 이유에 대한 변명이고, 마이티 토르의 화려한 등장이자 퇴장이다. 어쩌면 신의 존재증명이라는 철학적 메세지에 대한, 어떤 의견을 던지는 장면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고르의 개심은 단순히 고르 본인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고, 그걸 떠나서 사랑은 모든 갈등을 아무튼 해결해버리는 근본 치트키다. 치트키 써놓고 잘했냐고 물어보면 좀 그렇긴 하지. 애초에 영화부터 '저 치트키 쓰겠습니다.'라고 공개한 꼴이니까.


웅장하게 등장해서(그다지 웅장하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옹졸하게 퇴장하는 빌런들을 어째야 하는가. 너무 아깝다. 마이티 토르도 아깝고, 고르도 아깝고.


다 태워먹은 요리에 파슬리 좀 뿌린다고 그럴싸해지지 않는다.


다음 영화가 나온다면 토르가 주인공이라기보단 고르의 남겨진 딸(러브?)이 주인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크레딧에서는 토르가 돌아온다고는 했지만, 별로 기다려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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