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감상평 4
나는 사회복무요원이었다. 4급 사유는 시력(난시)이었는데, 라섹 이후로 몽골인이 됐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건 맞으나, 군대 앞에 그리 당당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난 의외로 군대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오히려 군생활을 해보지 않았으니 조금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 조심하곤 한다.
전쟁 영화는 대체로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로 인식된다. 그러나 전쟁 영화를 마냥 재밌게 볼 수는 없다. 뛰어난 전쟁 영화들은 결국 반전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 좋게 본 전쟁 영화를 세 편 꼽자면 <1917>, <허트 로커>, <인생은 아름다워>다. 이 영화들은 전쟁의 참상을 뚜렷하게 비추며 반전의 메세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따라서 전쟁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면, 그게 오락이더라도 어느 정도는 반전의 메세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얼마나 좋거나 나쁜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긍정적인 평가를 할 때면 '왜 좋은지, 어떤 장면이 인상 깊었는지', 부정적일 때는 '왜 싫은지, 어떤 장면이 특히나 싫은지'를 따진다. 앞서 손꼽은 영화들은 이런 부분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핵소 고지>는... 좋은지 싫은지 잘 모르겠다.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영화의 본 내용에 앞서, <핵소 고지>의 주요 소재인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다루겠다. 먼저 말하자면, 나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고 싶지는 않다. 나아가서는 '양심적'이라는 말이 조금 거슬리기도 한다. 조금 거친 생각이겠지만 고생하는 현역 장병들이 '비양심적'인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현역으로 복무하는 것이 '손해 보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으면 한다. 나도 사회복무요원이긴 했지만 보충역 복무가 '무조건 좋다'라고 말할 수 없게 되기까지 현역의 대우가 좋아졌으면 한다. 물론 군 입대 자체가 손해인 건 어쩔 수 없겠지만.
그러나 병역 거부자에게 억지로 군사 교육을 시키고 총을 쥐어주는 것 또한 영 미덥지 못한 일이다. 형평성의 늪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마땅한 대체 복무가 활성화되었으면 좋겠다. 군 병과 내에서 집총을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따로 배정한다든지. 대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찬반을 나누어 얘기하면 끝도 없겠지만,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마저 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는 지양해야 할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핵소 고지>가 개인의 자유와 신념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한 미국이 배경이기에 가능한 전개다.
핵소 고지와 오키나와 전투
사실 무슨 뜻일 거라고 유추해 본 적도 없지만, '핵소 고지'가 지명에서 유래된 제목인 줄 모르고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Hacksaw Ridge, 활톱 능선, 마에다 벼랑으로 불리는 이곳은 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의 가장 큰 격전지 중 하나였다. 오키나와 전투가 미군이 태평양 전쟁에서 치른 마지막 상륙전이다. 해당 전투에서 미군 사상자가 최다로 발생했고, 이후 원자폭탄 투하를 고려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스포일러.
지루한 초반부
나는 영화가 모든 장면에서 뛰어나거나 인상적이길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한 장면은 최대한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빌드업 과정에 힘을 쏟아야 하는 전기적 특성을 지닌 영화들은 초반부가 비교적 지루하다. <핵소 고지>에서는 데스몬드 도스(이하 도스)가 어째서 '집총거부자'가 되었는지 관객들에게 필히 설명해야 한다. 영화는 도스가 형제와 장난치다가 그를 죽일 뻔한 사건을 조명한다. 그런데 나는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여보, 쟤들 좀 말려 봐요."
"힘들게 뭐 하러 둘 다 때려? 다 싸우고 이긴 놈만 패면 되지."
형제가 싸울 때 등장하는 부모의 대화는 도스의 가정환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시다. 그러나 벽돌로 동생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뒤에 잠깐 당황하는 듯하더니, 벽에 걸린 '십계명'을 통해 스스로 가르침을 얻는 장면은 고개가 절로 갸우뚱해진다. 이것은 내가 무신론자이기 때문인가, 시퀀스가 퉁명스럽기 때문인가.
도로시와의 연애 시퀀스도 괴이했다. 로맨틱하다는 느낌보다는 어이없는 장면의 연속이었다. 같이 영화를 보고 있던 H에게 '이게 된다고?'라고 자꾸 물었다. '저 얼굴인데 안 되겠냐'라고 말하더라. 앤드류 가필드가 잘생긴 건 맞지만...
[대쉬 > 영화관데이트 > 키갈 > 뺨싸다구] 이건 이해가 된다. 그러나 이후에
[동생 입대 > 등산데이트 > 뽀뽀뽀 > 입대 신청 > 프러포즈]는 이해가 안 된다.
적어도 관객이 흐름을 따라갈 수는 있어야 되는 게 아닌가. 응급처치를 잘해서 '사람 하나 살렸다'라고 듣는 사소한 사건이 인생을 뒤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건 동의한다. 마침 병원 간호사로 일하던 도로시에게 첫눈에 반하는 것도 이해하겠다. 이후 자연스레 데이트로 이어지는 장면도, 혼자 도취해서 키스를 갈기다 뺨 맞는 장면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다음 장면에 난데없이 입대하는 동생과 전쟁 PTSD로 고통받는 아버지를 묘사한다. 관객 입장에선 뜬금없긴 하지만 '아, 지금 전쟁 중이구나.' 하며 깨닫는다. 도스는 친한 친구를 전장에서 잃은 아버지의 울음을 안타깝게 쳐다본다.
보통의 흐름이라면 여기서 도스가 '본토에 남아 도로시와 연애하며 알콩달콩 보낼 것인가'와 '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 고민할 것이다. 그런 장면이 나와야 할 것이다. 나무 그늘에 앉아 고민하던가, 절벽에 걸터앉아 고민하던가, 달빛이 드리운 침대 위에서 고민하던가, 그건 자유고.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도스는 도로시와 신나게 등산을 한다. 헐레벌떡 올라가서 능글거린다. 둘이 사랑하는 건 알겠는데, 이게... 뭐지?
그리고 다음 장면에서 도스가 '입대를 신청했다'라고 도로시에게 통보한다. 그랬더니 도로시가 '그래서 청혼할 거예요, 말 거예요?'라고 한다. 그랬더니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 채워졌다. 이 얼마나 무성의한 전개 방식인가. 초반 30분가량의 빌드업이 내겐 정말 지루하게 느껴졌다.
도스도 답답하고 관객도 답답하고 중대장은 실망했다
앞서 도스의 가치관을 뚜렷하게 인식시키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도스라는 인물의 특성. 그러니까 '독실한 종교인', '비폭력주의자', '애국주의자'의 면모를 강하게 부각했다면 도스를 이해하기가 보다 쉬웠을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중대장 앞에서 '저는 토요일이 안식일이어서 쉬어야 돼요.'라고 말하는 도스가 '머릿속이 꽃밭인, 전쟁이 뭔지 모르는, 해맑고 모자란 관심병사'로 보인다. 내쫓으려는 게 당연한 수순이다.
또한 '여자친구를 희롱해도 가만히 있는' '밤새 집단 구타를 해도 참고 넘기는' 장면을 넣는 것은 얼마나 불쾌한가. 실제로 도스의 존재는 '분대의 전투력을 떨어뜨릴 것으로 추측되는' 불안요소다. 그러나 분대원들이 도스를 적대하고 따돌리는 장면이 반복되면 도스의 행동이 '정당화되는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
내게는 도스의 '곧은 태도'가 신념에서 비롯된 굳은 의지로 느껴지지 않고, 똥고집으로 느껴졌다. 중대장과 분대원의 불안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그나마의 장면도 없었다. '위에서 까란다'고 부대에 투입되는 게 전부였다. 그게 도스가 전쟁에서 활약할 거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 그러니까 반전의 요소를 주긴 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그냥 영화를 끄고 싶었다.
왜 이렇게 잔인해
나는 하드고어한 장면들을 잘 본다. 비위가 강하다거나 담력이 세다거나 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무튼 잘 본다. <핵소 고지>는 그야말로 '후덜덜'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전쟁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는 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전쟁의 참상을 보다 실감 나게 와닿도록 알리기 위한 사실적 묘사가 필요하다는 데서 동의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등장하는 장면으로 예를 들자면
'갈기갈기 조각난 시체들을 가로질러 조심스레 적지로 진입하는' 장면에는 동의하지만
'죽은 아군의 상반신을 방패처럼 치켜들고 기동사격하며 일본군을 학살하는' 장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처구니없는 장면이지 않은가. '화염방사병은 초반부에 좀 활약하다가 결국 폭사한다'는 클리셰도 철저히 지켜졌다. 나는 이게 실제로 궁금할 지경에 이르렀다. 총알 몇 방 맞으면 폭발하는 게 진짜라면, 대체 왜 투입하는 걸까? 실제 화염방사병은 저렇게 되지 않겠지?
영화 말미에 등장하는 할복 장면 또한 뜬금없게 느껴졌다. 일본군의 시점은 배제한 채 전개하다가 급작스럽게 등장하니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반면 수류탄을 서로의 몸에 갖다 댄 채, 비명을 지르며 마주 보는 두 군인의 모습은 상당히 인상 깊었다. 인간성을 상실한 채 서로의 살상만을 목적으로 한 두 집단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런 인상적인 장면들이 영화의 '이미지'를 결정짓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핵소 고지>에서 가장 인상 깊은 전투씬이라고 꼽을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내게는 '상반신 방패 사격'이 조금 더 인상 깊었지만.
도스의 활약
도스의 활약은, 실로 영웅적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보다. 아군이 철수한 뒤에도 고지에 남아 부상병들을 구출하는 장면은 '광기의 영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소름 돋는 장면이었다. "한 사람만 더"를 반복하는 도스에게서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 보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무튼 히어로 영화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으니까.
실제로 미군에서 의무병의 좋은 본보기로 도스의 사례를 사용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아군의 생사를 일일이 확인하러 다니는 건 실로 모험적이면서도 모범적인 태도다.
그러나 집총은 거부하면서, '사격 유도'는 하는 장면들이 조금 의아하게 느껴졌다. '스미티'를 공격하는 일본군을 육탄전으로 제압하여 아군이 사격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일본군 저격수의 위치를 파악하도록 하고 상사의 역저격을 돕는 것은 구하는 것에서 비롯된 행위이긴 하지만... 살상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게 아닌가?
전쟁이라는 환경에서 비폭력주의라는 개념이 살아남을 수는 있는가. 전쟁과 비폭력은 상호 모순적인 말이다. 도스의 활약이 영화적이고 역사적인 공헌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전적으로 아군 전투원들의 총칼에서 비롯된 피와 땀을 희생한 대가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도스가 한 '땅 속에 묻힌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라는 말을 더 강조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잘 만든 전쟁 영화
서로 '죽이는' 게 주요 주제인 전쟁 영화들 사이에서, <핵소 고지>의 차별성은 '구하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소재는 순식간에 관객을 설득시키는 경향이 있다. 말도 안 되는 영화구나 싶었다가도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되었다'는 말에 '그런가'하게 되는 일종의 마술을 부린다. 감독이 도스의 일화에 매료된 채 제작한 영화라는 게 느껴지는 잘 만든 전쟁 영화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다.
<핵소 고지>는 철저히 미국적 이데올로기에 기인해 제작된 영화다. 평화적이고 정의롭고,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성이 명확하다. 갸우뚱한 장면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혹자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사실은 나도 조금 마음에 안 들었다.) 열띤 토론을 할 거리가 많은 재미있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