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나는 게임에 미쳐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 미쳐있지 않은 건 아니다. 그냥... 그 때 훨씬 더 심했다. 그 날도 게임에 정신이 팔려 새벽까지 PC방에 앉아 있었다. 금요일이었고, 자취를 하고 있었으니 학교 근처에서 밤새 놀아도 문제될 일 없었다. 문제가 있다면 내 졸음이었지. 흔히들 말하는 '아침형 인간'인 나는 12시만 넘어가면 일종의 가수면 상태에 이른다. 횡설수설대거나, 비틀거리거나, 끔뻑거리다가 점점 기능을 멈춘다. 당시에도 그렇게 있다가 PC방을 빠져나왔다. 그 때가 율무를 처음 마주한 순간이었다.
새벽 공기는 가볍다는 느낌이 들만큼 서늘했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밝게 빛나는 편의점 간판 아래 기지개를 쭉 켜고 있었다. 내가 그 옆을 지나자 마치 오랜 시간동안 나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내 옆을 따라 걸었는데, 처음에는 그게 마냥 신기했다. 내가 멈춰 서서 빤히 지켜보자, 급기야는 내 발에 제 몸을 비비면서 굴러대는 것이었다. 배가 고파서 이렇게 애교를 부리는 건가 싶었다. 간택의 순간이란 이런 거겠지. 인터넷에 떠도는 그런 순간들이 내게 찾아온 거라고, 덥석 생각했다. 나는 홀린 듯이 편의점에 들어가 소시지를 사왔다.
고양이에게 사람이 먹는 소시지가 좋지 않다는 것은 익히 들어와서 잘 알고 있었지만, 길고양이에겐 당장의 공복을 해소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시지를 계산하고 나오는 동안 편의점 문 앞에 얌전히 앉아서 나를 쳐다보던 그는 게 눈 감추듯 소시지를 먹어치웠다. 나는 소시지를 준 것에 대한 합당한 보상을 받듯이 고양이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는데, 털이 부드럽고 사람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누군가 키우던 고양이인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하얀 털에 노란색과 검정색 줄무늬가 조화롭게 몸을 두르고 있는 게 매력적이었다. 고양이는 내게 물까지 얻어먹고는 내 다리사이에 팔자 좋게 드러누웠다. 당시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덜컥 그 녀석을 내 자취방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동물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동물을 키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의 일이다. 당시 나는 룸메이트였던 동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친구는 내 행동에 어이없어하면서도 곧바로 학교 근처에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찾아 사료를 받아왔다. 그동안 나는 고양이를 씻겼다. 겁을 먹은 건지 아니면 목욕을 좋아했던 건지, 가만히 물을 맞고 거품을 느끼고 있던 고양이가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정말 무례했지만 동기는 나만큼이나, 어쩌면 나보다 더 고양이에게 잘 대해주었다. 나는 불현듯 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반려동물 이름을 음식 이름으로 지어주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산다는 미신 같은 걸 믿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 ‘율무’라고 지었다. 율무는 금방 자취방에 적응하고 돌아다녔다. 내가 등교를 하든 말든 이불에 몸을 파묻고는 고개만 빼꼼 내보일 뿐이었다. 나와 동기는 율무를 잃어버린 주인을 찾거나, 율무가 더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SNS에 글을 기고했다. 나처럼 편의점 근처에서 율무를 발견했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율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몰랐지만 적어도 내 좁은 자취방이 답답하지는 않은 것 같아보였다. 내가 자기를 이곳에 가두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쾌적한 화장실도 마련해주었으니. 떠돌이 생활을 하던 율무의 입장에서는 안락하기 그지없는 생활이었을 것이다. 율무는 내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으면 옆으로 다가와서 손을 잡아당기고는 했다. 내가 그를 마지못해 쓰다듬으면 배를 뒤집고 뒹굴면서 애교스럽게 깨물고 할퀴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강아지와는 다르게 까끌까끌한 혓바닥에도 점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만, 내가 율무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새벽이었던 것처럼, 율무는 완전히 야행성 동물이었다.
낮에 걱정했던 만큼 큰일이 나지 않았던 이유도, 집을 비우고 학교를 다녀와도 이불 속에 파묻혀 잠만 자고 있었던 이유도 서서히 체감이 됐다. 나는 주행성 인간이고, 율무는 야행성 동물이기에 우리의 생활 패턴은 순식간에 삐걱거렸다. 나는 분명 율무를 좋아했지만, 이 녀석을 1주, 2주, 한달을 데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졌다. 율무가 자취방에서 머물게 된 지 열흘 쯤 지났을까, 마침내 고양이를 분양하고 싶다는 사람에게서 연락을 받을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걱정이 들었다. 율무는 내 왼손을 붙들어 잡고 핥고 뜯으며 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이 녀석을 계속 데리고 있고 싶기도 하고, 현실적으로 그럴 자신은 없고. 차라리 율무에게 의사를 물어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네 미래잖아. 네가 결정해. 나야 쟤야? 그러나 솔직하게 욕심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애초에 데려온 것부터가 너무 충동적이었으니, 이건 내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율무를 떠나보내는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고 있었다.
율무를 떠나보내게 된 날, 새로 그를 맡아주기로 한 사람은 약속시간에 딱 맞춰 차를 끌고 나타났다. 나는 그녀가 차를 가지고 왔다는 사실에 크게 안도했다. 차는 무슨 당장 다음 달 식비부터 고민해야 했던 나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율무를 키워줄 수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율무가 새로운 공간에서 조금이나마 빠르게 적응하기를 바라며 그동안 써오던 모래, 사료, 샴푸와 장난감까지 모두 주었다. 율무는 나를 한번 돌아보지도 않고 여자의 품에 안겨서 차를 타고 떠났다. 시원섭섭한 기분은 들었지만 잘됐다는 생각이었다. 그날 밤은 아주 조용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쉽사리 잠에 들 수 없었다.
한 달 쯤 지났을까? 나는 율무를 거의 잊고 있었다. 여전히 학교를 다니면서 새벽에도 게임을 하곤 했다. 마찬가지로 PC방에서 게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 앞에서 익숙한 생김새의 고양이 한 마리와 마주쳤다. 율무와 정말 똑 닮은 고양이였다. 느긋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몸을 비벼대며 앙탈을 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율무였다. 설마 하는 마음에 입양을 보냈던 곳에 연락을 시도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분명 율무가 틀림없었는데 나는 그를 쓰다듬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자취방에 돌아가 이불을 펴고 눕는 순간까지도 귓가에 고양이 우는 소리가 계속 맴도는 것 같았다.
비단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어떤 동물이든, 내가 사는 집으로 녀석을 데리고 와서 기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굉장히 간단한 일이다. 이 친구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순간, 어떻게든 녀석을 키울 수 있는 능력이 어딘가에서 생겨난다고 본다. 무언가 키우겠다고 준비할 때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준비는 해도 해도 모자라기 마련이고, 준비하는 것과 막상 데려와 키우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아이는 무슨 여자친구도 없는 내가 '아빠가 되는 일'에 대해 어쩌고 얘기하는 건 많이 섣부른 얘기지만... 아빠가 될 준비를 충분히 한 채로 아빠가 되는 남자는 몇 없다. 내가 존경하는 아버지들은 대부분 공통적으로 같은 현상에 대해 기술한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자신이 상상하지도 못했던 마법같은 힘이 어디선가 솟아난다고. 막연하지만 나는 반려동물을 기른다는 것도 그런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그 마법같은 힘의 원천은 책임감이겠지. 내가 율무를 데려오고 그런 힘이 불쑥 생겨나지 않은 건, 애초부터 녀석을 책임지겠다는 생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율무를 만난 첫 순간부터 책임이란 건 없었다. 그냥 처음으로 나한테 다가온 길고양이에 대한 놀라움과 반가움 때문에 충동적인 심리를 못 참았던 것뿐이지, 나는 시종일관 책임을 떠넘길 사람을 찾고 있던 거였다. 이 귀여운 녀석이 길에서 얼어죽지 않게 해달라고.
길고양이들이 길에서 태어났건 집에서 버려졌건, 처음부터 야생에서 생겨난 것은 아니리라. 각각이 놓친 책임들이 길가에 방치된 채, 모두가 책임져야 할 일들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을 뿐이다. 잘은 모르지만 TNR(길고양이 중성화)을 세금으로 하는 국가는 우리나라 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마저 시행하면서 다양한 문제가 있었고. TNR은 현실적으로 비효율적이고... 불가능에 가까운방법이다. 길고양이들을 도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분명한 건 어쭙잖은 책임감이 가장 무섭다는 사실이다. 옛날의 내가 어쭙잖게 율무를 데려와서 어물쩡 떠넘겨버렸듯이. 그 마음이 선했고 어쨌고와는 별개의 문제로... 율무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든 건 다름아닌 나의 어중간한 책임감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율무는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길에서 고양이들을 마주칠 때면 자연스레 율무가 떠오른다. 그럼 나는 은근한 부채감과 함께 발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그때 내가 가졌던 미지근한 책임이 저런 모습으로 차갑게 식어가고 있구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