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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주리 Nov 22. 2022

긴 생각 2

<나는 왜 게임에서도 노동을 하는 걸까?>

요즘 한창 재밌게 하는 게임이 있다. '넥슨'의 서브 브랜드인 '민트로켓'에서 야심차게 개발했다는 해양 어드벤처 및 경영 시뮬레이션 게임. <데이브 더 다이버>가 바로 그것이다. 게임 이름에서 직관적으로 얘기하듯이, 데이브라는 다이버에 대한 이야기다. 아직 정식 발매된 게임은 아니다. 10월 말, 전체 분량의 절반 정도를 앞서 해볼 수 있도록 공개했는데, 재밌다는 반응이길래 나도 시간을 내어 해보게 됐다.


게임의 주된 내용은 이렇다. 주인공 데이브는 어느 섬에서 한가로이 휴양을 즐기던 배 나온 아저씨다. 그에게 코브라의 연락이 오게 되는데, 마음껏 초밥을 먹게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데이브는 곧바로 '블루홀'로 날아가게 되는데, '블루홀'은 설정상 계속해서 생태가 바뀌는 마법 같은 바다다. 원피스에서 상디가 찾던 올블루가 여기잖아. 여차저차하여 데이브는 이곳에서 '반쵸스시'라는 횟집의 일원이 되어, 낮에는 다이빙을 해 물고기를 잡고 밤에는 스시집에서 서빙을 하게 된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바다. 도트 그래픽이 귀엽다.


하루(라운드)는 3개의 시간(턴)으로 구분이 된다. 오전, 오후, 밤. 데이브는 오전 오후 그러니까 낮 시간 내내 다이빙을 해서 작살이나 그물로 물고기를 잡아야 된다. 심지어 가끔 호전적인 물고기들(이를 테면 상어)이 달려와서 깨물기도 한다... 그럴 때는 총도 쏴가면서(진짜 극한 직업) 사냥을 해야 된다. 다이빙을 하는 동안 공기통의 산소가 체력이 되는데, 산소를 모두 소진하고도 물 밖으로 나오지 못하면 그대로 뽀그르륽. 게임 오버된다. 게임이 아예 끝나는 건 아니고 고생하며 잡은 물고기를 단 한 마리밖에 남기지 못한 채 턴 하나를 날려버리게 된다.


한 번 물질을 하면 적재할 수 있는 물고기의 양이 정해져 있는데, 보통은 물에 들어온 김에 이것저것 하나라도 더 잡자는 마인드가 생긴다. 결국 항상 과적을 하게 되는데, 이럴 땐 캐릭터의 이동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그럼 그냥 나가면 될 것이지, 왜 계속 느려터진 채로 헤엄을 치고 있냐고? 나도 모르겠다. "가방은 10kg까지만 들 수 있어!" 라고 하더라도 잘 우겨넣으면 15kg은 들어가지 않을까? 그럼 20kg은? 30kg은? 하면서 점점 시험해보고... 마침내 아예 물건을 들지 못하는 수준이 되어야 힘겹게 물밖으로 나간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운전을 하다보면 종종 과적 트럭을 만나기도 하는데, 나쁜 행동인 것은 분명하지만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단적으로 이해는 됐다. 돈이 참 무섭다 그치.


보스전도 있다. 한낱 사람이 어떻게 대왕 오징어랑 싸우냐고.~


심지어 틈틈이 등장하는 보스와도 싸워야 한다. 그러니까 데이브는 보통 다이버가 아니라, 베어그릴스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게다가 이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는 오지랖도 넓어서 블루홀 인근 주민들의 부탁(거절 못함)을 들어주거나 고민해결사(아무튼 어떻게든 해결해야 함) 역할도 도맡아 한다. 그리고 사실 그것들을 전부 해야 하는 건 다름아닌 게임을 하는 나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이런 사소한 잔심부름 같은 것까지 하는 걸까. 프로그래밍 되어있을 뿐인 주민들의 대화를 읽다 웃음을 터뜨리거나, 그냥 도트그래픽 조각일 뿐인 물고기 한 마리 쫓는다고 입술을 깨물기도 하면서...


바쁜 거 안 보이시냐고요. 좀 기다려 주시라고요.


그래서 데이브는 언제 쉬냐고. 아침에 다이빙, 오후에 다이빙 했으면 밤에는 쉴 수 있잖아? 아니, 그럴 수 없다. 밤에는 손님 받아야지. <데이브 더 다이버>는 밤이야말로 진짜 노동의 현장이 펼쳐진다. 다이빙이야, 적당히 물고기 몇 마리 잡았으면 바닷속 구경도 하고 탐험도 하면서 땡땡이(?)치기도 하지만... 손님 앞에선 그럴 수 없다. 언뜻 봐도 초밥깨나 썰 것 같이 생긴 주인장 '반쵸'를 도와 '반쵸스시'의 매니저로서 서빙을 해야 한다.


"데이브 씨는 매니저니까 간단하게 재료 좀 구해주시고, 서빙도 하시고, 가게 홍보도 틈틈이 해주시고, 돈 조금 받고 일 많이 하는 능력 좋은 알바도 뽑아 관리해주시고, 가게 여기저기 망가진 곳 수리도 해주시고, 인테리어도 해주시고, 컴플레인 해결 같은 쉬운 일만 해주시면 돼요. 저는 요리를 할게요."

"뭘 봐, 불만 있으면 네가 요리하던가."

물론 반쵸가 이런 말을 할 리는 없지만 아무튼 데이브가 할 일은 정말 많다. 다시 말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아주 많다. 그런데 일을 하는 게 마냥 싫지가 않다. 오히려 내가 더 바빠졌으면 좋겠고, 나아가서는 여유가 생기면 심심하기까지 하다. 하루종일 일만 시키는데 왜 이렇게 재밌을까.


물론 이건 그냥 단순히 게임 하나 소개하자고 쓰는 글이 아니다. 나는 왜 게임에서까지 일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고, 현생의 일과 가상의 게임은 무슨 차이가 있기에 이렇게 내 흥미를 쥐고 흔드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게임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가 게임을 하는 재미를 인생을 사는 재미로 바꾸면 좋겠다 싶었다.


귀농하여 농장을 가꾸면서 말 그대로 일만 하는 게임 <스타듀밸리>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다.


그 원동력은 성장이겠지. 나는 성장이라는 태그를 꽤나 좋아한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미성숙하던 캐릭터가 점차 성장해나가는 모습이 보이면, 주연과 조연을 떠나서 좋아한다. 비단 인격적인 부분에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내가 힘을 쏟은 만큼 발전하는 무언가를 보는 재미.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 현재의 상태를 면밀히 분석한 스탯창을 수시로 볼 수 있으면 어떨까? 체력 수준이라든가 지식 수준, 인성, 매력, 재산, 가창력,공격력, 마법사로서의 재능(???)... 그런 걸 확인하면서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난 정말 시간 낭비 안 하고 엄청 열심히 살 텐데.


게임은 그게 가능하다. 스탯창이 존재하여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 한 턴, 한 턴이 지나갈 때마다 분명한 성장이 있고, 발전의 초석이 마련된다. 내가 성장시키고자 하는 부분에 시간을 투자하면 뚜렷한 성과가 드러나고, 몇몇 경우에 따라서는 원래 존재하지도 않던 재능을 심어주기도 한다. 웃기자고 드는 예시지만 마동석을 비보이로, 아이유를 푸드 파이터로 만드는 것도 가능한 게 게임이다. 처음 다이빙을 했을 때 잡을 수 없던 물고기가 있었는데, 작살을 업그레이드 했더니 잡히네? 작살을 업그레이드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초밥집에 손님이 많아져서 매출이 좋아져야 하겠네? 손님이 많아지려면 더 맛있는 초밥을 연구하고 홍보도 해야겠네? 밀려드는 일을 해내면 해낼수록 점점 크게 보장되는 성장. 단순하지만 재미를 유발하는 포인트고 내가 게임을 좋아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모든 게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변수가 항상 등장하고 계획을 고꾸라트린다. 다만 노력하면 분명히 격파 가능한 문제점이 제공된다. 너무 쉬우면 재미 없으니까.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한계점을 돌파하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노력해도 안 되는 게임도 있다... 이건 게임 장르의 문제니까 패스


그러나 게임의 딜레마 또한 성장이다. 일정 수준의 성장을 넘어서면 성장이 의미 없게 되는 구간이 생겨나는데, 컨텐츠를 모두 소진하게 되는 시점이 바로 그것이다. 게임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물고기를 잡고, 연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초밥을 만들고, 장비의 업그레이드가 전부 끝나면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 <데이브 더 다이버>의 이야기를 모두 즐겼으니 이제 엔딩 크레딧을 보는 거다. 적절한 순간에 게임을 끝내는 것 또한 게임의 미덕이다.


스탯, 스탯 하지만 모든 스탯을 가득 채운 시점에 성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이상 성장은 뚜렷해지지 않고, 성장을 위한 노동은 그냥 노동이 되어버린다. 게임의 '볼륨'은 이렇게 정해진다. 여러 게임을 접해봤지만 질리지 않고 성장하는 게임은 없다. (내가 게임에 금방 싫증을 내는 편인 것도 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게임이 일처럼 느껴지면 끝이다.


반대로 일을 게임처럼 하는 것은 지향할 만한 삶의 태도다. 하나 하나 주어지는 과제를 끝내고 성장하는 나를 되돌아보는 것. 당연히 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니고 마음에 안 드는 분기점을 만났다고 리플레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상황을 게임처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이상하겠지만... 적어도 골목길 어귀에서 계단을 마주쳤을 때 "아, 또 계단이야? 힘들어 죽겠다!" 보다는 "하체 발달에 많은 경험치를 주는 퀘스트가 나타났군." 이라고 하는 게 좀 더 엉뚱하고 재밌지 않을까. (약간 미친 사람 같기는 하다......)


게임과 운동을 결합해 큰 인기를 끈  <링 피트 어드벤처>


적어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때면 게임처럼 받아들이자.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경험치 달다' 하면서 침을 질질 흘리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스트레스를 흘려내는 데는 이만한 게 없을 것 같다. 한 편으로는 내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과 그림은 무한하게 성장할 수 있는 컨텐츠니까. 하나의 작품을 끝내면 조금 성장한 스탯으로 다음 작품을 만들면 될 뿐이다. 중요한 건 하고자 하는 마음이겠지.


일 끝내고 집에 가서 게임할 생각을 하면 이십대 후반인데도 가슴이 두근두근 한다. 재밌는 게임을 맞이하는 내 태도가 삶을 대하는 방식과 융합되면 나는 정말 무적이 될 지도 몰라. 현실은 녹록지 않겠지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 이유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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