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58개띠는 특이한 집단으로 회자된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중심이고 억세고 거친 존재로 인식되어 있다.
전쟁이 끝나고 5년쯤 지났을 때니 집집마다 먹고살기 어려운 와중에 그래도 전쟁에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고 마음이 안정되어 그래서 아이들을 많이 낳았을 것 같다. 그때 특별한 레저활동이 있을 리 만무했을 것이고 민망한 얘기지만 그래서 애 만드는 게 일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유년시절.. 골목마다 애들이 참 많이 나와 놀았다. 내가 나온 국민학교도 교실이 모자라 한 학년이 20반까지 있었고 한 반에 인원도 80명이 넘었다. 3부제라 하여 교실 하나를 아침반 점심반 오후반 이런 식으로 세반이 나눠서 썼다.
그러니 학교에 내 책상이라는 게 없었다. 어디 책상뿐인가? 집에서도 옷이며 신발이며 심지어는 양말까지도 형에게 물려 받아 내 것이라 는 개념 자체가 없었던 세대였다.
이렇게 애들이 무지 막지 하게 많으니 어릴 때부터 우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진학 문제는 전쟁 후 경제가 어려운 때이어서 빈곤을 탈출하고 신분을 바꾸는 유일한 돌파구여서 경쟁이 극에 달했다.
좋은 고등학교 가려고, 그래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으니까 나름 공부를 열심히 하던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신문에 고교평준화라는 대문짝 만한 기사가 떴다.
성적에 관계없이 소위 뺑뺑이라는 걸 돌려서 공부 못해도 전국의 수재들만 간다는 경기고등학교도 갈 수 있고 전교 1등 하는 놈이 개교이래 서울대학교에 단 한 명도 못 보낸 3류 고등학교에 배정받기도 했다.
그때 우리 사이에는 그럴듯한 소문이 돌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우리와 동갑인데 그 녀석이 공부를 못해서 학교를 평준화시킨 거라는...
이유가 뭐였던 간에 나도 뺑뺑이를 돌렸고 나는 내 수준에 딱 맞는 변두리 3류 고등학교에 배정이 되어 고교시절을 보내게 되었는데 입학하자마자 우수반과 돌반으로 나눠버려 평준화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58 개띠들은 고교 평준화 1세대로서의 혼란과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다.
어찌되었던 대학 가고 군대 가고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키우고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우리들은 어느새 대부분 회사에서 퇴출되고 어중간한 영감으로 늙어가고 있다.
나는 이곳 매거진에 우리의 과거를 추억을 일상을 걱정을 얘기하고 싶고 내 주절거림들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
난 응답하라 58 개띠라는 우리 세대의 생각과 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