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종일 날씨가 꾸물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시내 볼일이 있어 나갔다가 을지로에서 30년 넘게 출판사를 하고 있는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미리 전화를 한 것도 아니고 불쑥 들어갔는데 반색을 합니다. “마침 잘 왔다 그렇지 않아도 술 생각이 나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하며 바로 책상을 정리하고 채비를 합니다.
꼬불꼬불 좁은 인쇄소 골목을 지나 허름하고 소박한 선술집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을 지지는 냄새가 식욕을 돋웁니다.
막 지져낸 모둠전 한 접시와 수제비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멸치로 국물을 낸 수제비와 시큼하게 잘 익은 열무김치가 기가 막히게 조화를 이루며 맛있습니다.
차가운 막걸리가 통쾌하게 식도를 타고 넘어갑니다.
그리고 따끈한 동태전이 궁합을 잘 맞춰줍니다.
맞습니다.
바로 이 맛입니다. 그리고 이 분위기입니다.
어느새 다섯 병째 막걸리가 탁자에 놓였습니다.
빗줄기가 굵어졌습니다.
간단하게 한잔하자고 시작했는데... 에라 모르겠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마실 때까지 마셔보자.
추억을 마셨습니다.
이제 피차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릅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수십 년간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반복했을 테니까요.
배가 빵빵해졌습니다.
담배연기 속에 친구 얼굴이 새삼스레 늙어 보입니다.
서글퍼 보입니다.
취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