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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종구 Nov 28. 2018

세수를 안해서 그런거야

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어느 외국인을 보면서 엄마에게 ‘왜 저 아저씨는 저렇게 까매?’라고 물었을 때 엄마의 답변이란다. 이것은 얼마 전 모 케이블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참여한14세의 황 모 군이 경험한 이야기다. 한국인 아버지와 가나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모 군은 검은 피부와 짙은 곱슬머리를 지녔지만 한국에서 태어났고 모국어가 한국어인 한국인이다. 불행히도 2008년에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후에 아버지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제 고아가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아가 된 상황보다도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다. 그것은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사회적 차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놀림의 중심이 되었고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다른 피부색이나 생김새 때문에 쉽게 한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낙담하고 있었다. 지하철의 그 아이는 어떠한가? 앞으로 자라면서 자기와 다른 피부색의 사람을 보면 엄마의 말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왜곡된 시각으로 인해 성인이 되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기와는 조금 달라 보이는 - 황 모군 같은 - 한국인에 대해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수 있다.  


그림 이연우


여기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최근 청소년의 폭력문제가 도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된다는 소식을 자주 접한다. 특히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된 처음 한 달 동안이 제일 심하다고 한다. 왜 그럴까? ‘학급 짱’이 결정되는 시기라서 그렇단다. 학급 내 동질화된 문화와 의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계급은 필수적이고 ‘짱’이 결정되어야 비로소 학급의 평화가 찾아오게 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름을 추구한다는 것은 소위 ‘왕따’가 되는 지름길이다.  


앞의 두 사례를 보고 대다수의 전문가들이 심리학적, 정신의학적인 원인을 얘기하고 솔루션을 제시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를 다양성의 문제로 본다. 즉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부터가 가장 큰 원인이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집단문화의 단결성을 미덕으로 생각해왔다. 많은 외침과 분쟁들을 경험하고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집단의 단결과 민첩성이 무엇보다도 중시되었고 이로 인해 군사문화의 엄격한 계급주의가 파생되었다. 그 결과 집단주의가 사회 대부분의 조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집단주의에 물든 기성세대로부터 가정교육을 받고 자라는 아이들 역시 부지불식간에 경직된 집단 공동체의식을 그대로 이어가게 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미덕은 점점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실제로 학교든 회사든, 심지어 가정에서도 그 구성원의 행동, 의식, 생김새 등이 약간이라도 남들과 다르면 왕따로 몰리기 십상이다. 세계적으로 다양성 존중이 화두가 되는 시대에 역행하는 이 안타까운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다양성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우리가 다양성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주목해야 할 진리를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인간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된다. 즉 사람은 누구나 다 다르다. 외모만 해도 이 세상 사람의 생김새는 모두 다르다. 심지어 쌍둥이도 다른 점이 있도록 신은 만들었다. 하물며 내적인 면은 전혀 같을 수가 없다. 어느 목사님이 신의 창조법칙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른 개성과 성품을 주셨습니다. 똑같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하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살려 조화를 이루고 서로 도우며 살라는 뜻입니다.’ 다양성은 특별하거나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인생의 본질로 돌아가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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