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박사의 다양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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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多樣性)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모양, 빛깔, 형태, 양식 따위가 여러 가지로 많은 특성’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양성이라는 단어 자체가 매우 포괄적인 의미로써 자연과 과학, 문화, 예술, 인문, 사회의 모든 면을 아우르면서 그 속에 담겨진 여러 가지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로 볼 수 있다.
다양성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다름’과 ‘차이’가 있다. 사전에서 ‘다름’은 순 우리말로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아니하다’와 ‘보통의 것보다 두드러진 데가 있다’로 해석한다. 한편 ‘차이(差異)’는 ‘서로 같지 아니하고 다름 또는 그런 정도나 상태’로 해석한다. 이와 같이 두 단어의 의미는 매우 유사하지만 ‘차이’가 ‘다름’보다는 다른 정도나 상태를 나타내는 상대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다양성에는 ‘다름’의 의미와 더불어, 각각의 고유한 특성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더 크고 의미 있는 특성을 만든다는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다양성의 영어는 ‘Diversity’로, Webster’s New World 사전은 ‘quality, state, fact, or instance of being diverse’ 와 ‘difference’ 그리고 또 다른 의미로 ‘variety’로 설명한다. 전자는 국어사전에서 설명한 뜻과 매우 유사하게 해석이 되지만, 후자는 보다 진보적인 뉘앙스로 ‘변화가 많음’ 또는 ‘갖가지’ ‘가지각색’의 의미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앞의 사전적 의미에 동적인 변화를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필자가 다양성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먼저 파악하려는 의도는 다양성을 정의하기에 앞서 다양성을 단순히 ‘다름’ 정도로 협소하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양성은 서로 다르지만 고유한 특성을 드러내며 또한 변화의 의미도 있음을 밝혀둔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성격이나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보통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먼저 불편해하면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집단 문화와 군대 문화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성인 남자들이 자주 보이는 현상이다. 반면에 다른 사람과 대화하고 교류하면서 더욱 매력을 느끼고 그 사람의 가치를 인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이성을 만났을 때 상대방이 자기와 전혀 다른 특성이나 취미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더 매력을 느끼는 경우다. 그래서 흔히들 결혼상대는 보통 자기와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나야 조화로운 가정을 이룬다고도 말한다. 같은 성격의 사람끼리 만나면 처음에는 불타오르는 사랑을 하다가도 얼마 못가 심한 갈등을 겪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전지가 같은 극끼리는 서로 밀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다른 세계를 보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거부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가치나 매력으로도 느낀다. 먼저 다름을 인지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제를 통하여 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고유한 가치들을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된다. 이 정도로도 서로의 관계는 친구처럼 친밀해진다. 다음 단계로 이미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서로 배우고 협력하면서 두 사람의 세계를 함께 발전시킨다. 더 나아가 두 사람의 관계가 다른 사람들의 세계에 영향을 주어 더 나은 포용의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다양성은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이제 이해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다양성을 ‘먼저 다름을 인지하고(Cognize), 이해하고(Understand), 인정하고(Acknowledge), 수용하고(Accept), 장려하는(Encourage) 끊임없는 여정(旅程)’이라고 정의한다.
다양성의 여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소통을 위한 진실한 대화이다. 진실한 대화가 없이는 다른 사람의 고유한 가치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여정 내내 그 사람의 내면과 대화하면서 다양성은 진화한다. 그래서 독일의 유명한 사상가인 마르틴 부버도 대화란 ‘서로 다른 이성의 나눔이며 논쟁’이라고 하면서 대화 유토피아를 주장했다. 이것을 논평하는 박홍규 교수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다른 생각을 분명히 드러내며, 각자의 생각을 진지하게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결론에 이르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바로 대화’라고 말했다(“마르틴 부버”, 박홍규).
스캇 펙 박사는 ‘사랑은 자기 자신이나 타인의 영적 성장을 도울 목적으로 자신을 확대시켜 나가려는 의지’라고 말했다(“아직도 가야할 길”, 스캇 펙). 즉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그 사람의 영적 성장을 도와 그 사람의 가치가 빛을 발하게 만드는 것이 곧 사랑이라는 의미이다. 이쯤 되면 좀 비약일지 모르지만 다양성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