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에 입대하느니
차라리 해적이 될거야

이종구 박사의 스타트업 칼럼

by 이종구

해군에 입대하느니 차라리 해적이 될거야(It’s more fun to be a Pirate than to join the Navy).”


1980년대 초,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 팀을 이끌며 반복해서 던졌던 이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애플이라는 조직, 더 나아가 혁신을 대하는 그의 철학을 응축한 선언이다1. 당시 애플은 이미 애플Ⅱ의 성공으로 빠르게 성장하며 ‘큰 조직’, 즉 해군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안정적인 수익 구조, 점점 늘어나는 규칙과 절차, 예측 가능한 성공의 반복. 그러나 잡스의 시선은 여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해적 팀’을 만들어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 매킨토시 개발에 뛰어든다. 이 팀은 애플 본사와 물리적으로 떨어진 건물에서 일했고, 건물 위에는 실제로 해적 깃발이 걸렸다. 규정과 관행보다 모험과 직관이 우선하는 문화였다. 초기 매킨토시 핵심 개발자였던 앤디 허츠펠드(Andy Hertzfeld)는 이 시기를 ‘해적들의 공동체’로 회고한다.


잡스가 말한 해적정신의 핵심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관료주의와 창의성의 문제다. 해군은 질서 있고 안정적이지만 느리다. 규칙은 많고, 의사결정은 복잡하다. 반면 해적은 작고 빠르다. 필요하다면 규칙을 깨고, 새로운 길을 즉각적으로 시도한다. 잡스에게 해적은 무질서한 반항아가 아니라, 창의성을 지키기 위해 기존 체계와 맞서는 창조자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스타트업 정신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둘째, 안전보다 리스크를 선택하라는 메시지다. 큰 조직은 이미 검증된 성공 방식을 반복한다. 실패를 최소화하는 것이 미덕이 된다. 하지만 해적은 실패의 가능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미지의 항로로 나아간다. 잡스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혁신은 결국 과거의 복제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세상을 바꾸는 제품과 경험은 언제나 불확실성 속에서 태어난다.

셋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해적정신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관리자가 될 것인가, 창조자가 될 것인가?” “기존 시스템에 편입될 것인가, 아니면 시스템을 바꿀 것인가?” 안정과 질서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작고 불안정하더라도 자유롭게 도전하며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다.

지금 당신이 있는 곳은 해군인가, 아니면 아직 해적일 수 있는 바다인가?


해적증명서.png 출처: 스타트업바이블

해적 증명서(Pirate Certificate)

MIT에는 ‘Pirate Certificate’라는 것이 있다. 물론 이것은 공식 학위도, 수료증도 아니다. 성적표에 찍히지도 않고, 취업 서류에 첨부할 수 있는 문서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증명서는 MIT 학생 커뮤니티와 일부 교수들 사이에서 묘하게 통용되는, 일종의 문화적 훈장처럼 받아들여진다2.


해적 증명서가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것은 단순하다. ‘너는 해적이다.’ 다시 말해, 시스템 안에서 얌전히 문제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끝까지 파고드는 사람이다. MIT에서 ‘해적’으로 불리는 사람들은 보통 교과서에 적힌 방식만으로 푸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왜 이런 문제가 만들어졌지?’, ‘이 시스템은 왜 이렇게 작동하지?’라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해놓은 ‘정답’보다, 실제로 작동하는 원리와 구조에 집요하게 집착한다. 때로는 규칙을 우회하고, 때로는 깨뜨리면서까지 말이다.


문화의 뿌리에는 MIT를 상징하는 ‘해커 윤리(Hacker Ethic)’가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정보는 자유로워야 하고, 권위보다 논리가 우선하며, 규칙 그 자체보다 ‘작동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믿음. 그리고 이를 관통하는 한 문장, ‘Hands-on Imperative’, 직접 만져보고, 분해해 보고, 고장 내보고, 다시 조립해 보지 않으면 진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태도다.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해군보다 해적이 될거야'의 선언이 조직과 혁신의 문제를 다뤘다면, MIT의 해적 증명서는 학습과 지식의 문제를 다룬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안정적인 항로를 따르는 사람보다, 미지의 바다로 나아가 시스템의 경계를 시험하는 사람에게 변화는 일어난다는 믿음이다.


관리와기업가정신.png 출처: 생성형 AI

관리(Management) vs.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조직을 움직이는데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해군형 조직, 다른 하나는 해적형 조직이다. 이 비유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오늘날 스타트업과 기존 기업의 운명을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3.


Management, 즉 관리 중심 조직은 전형적인 탑다운(top-down) 구조를 가진다. 이미 검증된 방법을 반복하고, 과거의 성공 공식을 기준 삼아 안정성을 추구한다. 이 조직에서 중요한 것은 규율, 통제, 효율성이다. 불확실성은 최소화해야 할 리스크이고, 예외는 제거해야 할 오류다. 이런 방식은 성숙한 시장과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강력하다. 해군이 정해진 항로를 대규모 함대로 안정적으로 운항하듯, 관리 조직은 일정한 성과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반면 Entrepreneurship, 즉 기업가 정신은 완전히 다른 논리에서 출발한다. 바텀업(bottom-up) 구조, 실험과 학습, 그리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여기서 실패는 피해야 할 사고가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데이터다. 기업가는 정답을 따르기보다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고, 필요하면 방향을 바꾼다. 해적이 정해진 지도 없이 바다를 탐험하듯, 기업가는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발견한다.


스티브 잡스는 이 차이를 조직이 세상을 바꾸는 방식과 개인이 어떤 역할을 선택할 것인가로 말한다. 특히 오늘날과 같이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 환경에는, 완벽한 분석보다 과감한 추론이 오히려 경쟁력이 된다. 해적형 접근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강한 이유고 혁신을 꾀하는 스타트업이 지향해야 할 전략이다.


성공한 기업가들은 대부분 해적형 접근을 통해 불확실성 속으로 먼저 뛰어들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스타트업이란, 작은 조직이어서가 아니라 해적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존재다. 그리고 혁신은 언제나, 해군의 안전한 항로 바깥에서 시작된다.




참고문헌

1. ‘Pirates!’, Andy Hertzfeld (맥킨토시 핵심 개발자), Folklore.org

2. https://physicaleducationandwellness.mit.edu/about/pirate-certificate/?utm_source=chatgpt.com

3. ‘Differences between entrepreneurs and managers in large organizations: Biases and heuristics in strategic decision-making’, Busenitz & Barney (1997), Journal of Business Ventu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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