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은 타고난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종구 박사의 스타트업 칼럼

by 이종구

표지출처: 나무위키


기업가정신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지는 것일까? 오래전부터 회자되었던 이 다소 진부한 질문에 대해 여전히 명확한 합의는 없다. 누군가는 타고난 기업가만이 일반적인 사업가들이 보지 못하는 통찰력을 갖고 있으며, 바로 그 점이 성공 확률을 높인다고 말한다.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오늘날의 사업 환경이 점점 더 시스템화되어 운영되는 만큼, 기업가정신 역시 교육과 경험을 통해 충분히 학습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명확한 정답은 없다. 다만 분명한 사실 하나는, 기업가정신이 창업의 성공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이다. 그것이 선천적 재능이든, 후천적 학습의 결과든 말이다.


이 논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있다. 꽤 오래전 방영된 스타트업 관련 TV 드라마에서 한 벤처캐피탈 투자자가 창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당신에게는 CEO DNA가 없어요. 대표를 전문경영인으로 영입하세요.’

이 대사의 대상은 유능한 개발자였다. 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직접 개발해 회사를 창업한 인물이다. 투자자는 그의 기술적 역량과 개발 능력은 높이 평가했지만, 동시에 비즈니스를 이끌어가는 역할은 다른 문제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는 대표에게, 자신은 기술에 집중하고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CEO로 영입하라는 조언을 건넨다.


그러면 CEO정신과 기업가정신은 어떤가? 같은 것일까? 아니면 유사한 개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은 동일하지 않다. CEO, CTO, CMO, CFO 등은 모두 비즈니스를 수행하기 위한 ‘역할(Role)’일 뿐이다. 그리고 이 모든 리더십의 역할에는 공통적으로 기업가정신이 요구된다. 기업가정신은 특정 직함에 귀속된 것이 아니다. CEO만이 아니라, 기업 안에서 의사결정과 책임을 지는 모든 리더십의 자리에는 기업가정신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기업가정신은 직책이 아니라 태도(Attitude)이자 통찰력(Insight)이다. 각자의 리더십 역할 속에서 비전과 전략,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태도, 그리고 전체 사업모델을 바라보며 자신의 역할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그에 맞는 전략과 전술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한다.

기업가정신은통찰력.jfif 출처: 생성형 AI

기업가정신은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이를 프로그래밍하며 솔루션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 CTO처럼, 기업의 비즈니스 목표에 따라 전략을 세우고 조직을 이끄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CEO처럼,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수행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리고 바로 그 태도가 창업 과정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난관 앞에서도 버티며 끝까지 회사를 끌고 가게 만드는 힘이 된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스티브 샤핀(Steve Shapin)은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업가’를 보고 투자한다고 말한다1. 그는 실리콘밸리를 분석하며, 이 현상을 단순한 벤처 투자 전략이 아니라 ‘지식과 신뢰가 사회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로 설명한다. 다시 말해, 투자자는 아이디어의 진위 여부보다 그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낼 사람의 신뢰성을 먼저 본다는 것이다.

그래서 투자자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이 창업가는 신뢰할 수 있는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솔직하게 정보를 공유할 것인가? 이 사람은 실패를 어떻게 다루는가? 실패를 숨길 것인가, 드러내고 학습할 것인가?


이 맥락에서 기업가정신은 투자자에게 일종의 담보(collateral)로 작동한다. 아이디어가 틀렸을 때조차도 투자를 이어갈 수 있게 만드는 사회적 담보다. 그래서 투자자는 흔히 이렇게 말한다. ‘아이디어는 망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람과는 다시 시도할 수 있다.’ 한 번 성공한 창업가보다, 한 번 실패했지만 신뢰를 잃지 않은 창업가가 더 강력하게 평가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스타트업은 ‘아이디어’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가정신’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타트업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린다. 기술이 얼마나 혁신적인지, 시장이 얼마나 큰지, 경쟁우위는 무엇인지 등등. 그러나 실리콘밸리를 오래 관찰해온 스티브 샤핀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그의 주장은 단순한 투자 논리를 넘어, 실리콘밸리라는 사회가 ‘아이디어의 시장’이 아니라 ‘신뢰의 생태계’라는 점을 보여준다.


늑대.jfif 출처: 생성형 AI


다행스러운 점은 기업가정신은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단기간에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시간과 교육을 통해 단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직접 경험하고 체화해야 한다. 캐나다 라이언슨대학교의 스티브 기디언 교수는 “기업가정신은 머리, 손, 심장에 있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직접 행동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감을 쌓아가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라는 뜻이다2. 교육은 방향만 제시할 뿐, 그 길을 실제로 걷는 것은 창업가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잘 형성된 스타트업 커뮤니티는 구성원 각자가 서로의 스승이자 학생이 되는 공동체적 성격을 띤다. 마치 ‘정글북’의 작가인 키플링이 ‘늑대의 힘은 무리에서 나오고, 무리의 힘은 한 마리의 늑대에서 나온다(The strength of the wolf is the pack, and the strength of the pack is the wolf)’라고 말한 것처럼, 기업가정신 역시 개인의 태도에서 시작되지만, 결국 그것이 살아 움직이는 생태계 속에서 더 단단해진다.


참조문헌

1. ‘Valley of the unicorns: consumer genomics, venture capital and digital disruption’,Stuart Hogarth, 2017, Taylor & Francis Online

2. ‘스타트업바이블’, 빌 올렛(Bill Aulet), 2013, 비즈니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