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구 박사의 스타트업 칼럼
2008년 당시 미국의 주택 담보 대출은 프라임(prime), 알트-A(Alternative A), 서브프라임(subprime)의 3등급이었다. 이 가운데 서브프라임 등급은 부실 위험이 가장 커서 프라임 등급보다 대출 금리가 2~4% 정도 높았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의 지원 아래 2006년 중후반까지 서브프라임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의 경기 침체가 끝나고 고유가와 원자재 가격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에 대처하기 위해서 연방준비은행(FRB)이 금리를 서서히 올리기 시작했는데, 2004년에 1%였던 금리가 2006년에 5.64%까지 상승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시작되었다. 그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은 저소득층의 사람들은 모기지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지 못하고 길거리로 쫓겨났다. 이 결과 주택 시장의 침체가 심화되면서 모기지 대출 회사들의 손실이 커지고 급기야 2007년 상반기부터 파산하기 시작했다. 결국 실타래처럼 연결된 금융기관들이 도미노처럼 파산하고, 이는 전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사실상 2008년에 그 누구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이것이 전 세계 금융시장에 이토록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이 현상을 블랙스완(Black Swan)이라고 말한다.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드문 사건으로 그 리스크를 측정하거나, 발생을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건이다. 그리고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급효과를 가져온다1. 이러한 블랙스완은 경제뿐 아니라 정치나 사회에서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즈음이면 다시 하나씩 발생한다.
2019년 말 중국 우한에서 처음 보고된 코로나19(COVID-19)는 기존의 전염병처럼 국지적으로만 끝날 걸로 알았다. 하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전 세계로 확산되어, 결국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 팬데믹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글로벌 공급망 붕괴, 경기 침체, 교육·근무 방식의 비대면 전환 등 사회·경제 전반에 장기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또 하나의 블랙스완으로 기록되었다.
블랙스완의 유래는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 윌리엄 드 블라밍(Willem de Vlamingh)이 서부 오스트레일리아를 탐험하는 중에 기존에 전혀 존재하지 않던 '흑고니'를 발견한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일이 실제로 나타나는 경우를 사람들은 ‘블랙스완'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용어는 이후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에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으며,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가 2007년 ’블랙스완‘ 책을 발간하면서 대중화되었다2.
금융공학자이자 사상가인 탈레브는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착각 중 하나가 세상은 예측 가능하다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통계, 데이터, 전문가의 분석을 통해 미래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탈레브는 이러한 믿음이 실제 세계의 작동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한다. 그는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비선형적이며,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에 의해 크게 흔들린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통찰을 가장 강렬하게 설명한 개념이 바로 블랙스완이다. 블랙스완은 단순히 드문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전에 거의 예측되지 않았지만 발생하면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세계는 이런 사건들에 의해 방향이 크게 바뀌어 왔다. 예를 들어 911 테러는 국제 정치와 안보 질서를 근본적으로 바꾸었고,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세계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역시 전 세계 경제와 사회 구조를 송두리째 흔든 대표적인 블랙스완 사례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블랙스완 사건들이 단순히 ’드물다‘는 점이 아니라 기존의 예측 시스템을 거의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제 모델이나 정책, 의사결정 시스템은 과거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블랙스완은 바로 그 과거의 패턴을 깨뜨리는 사건이다. 탈레브는 ‘블랙스완을 예측하려는 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진다’고 말한다. 인간은 사건이 일어난 뒤에 그럴듯한 설명을 만들어내지만, 실제로는 대부분 사후적 합리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바꾼다. ‘블랙스완을 어떻게 예측할 것인가?’가 아니라 ‘블랙스완이 발생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안티프래질(Antifragile)’이라는 개념이다.
안티프래질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의 시스템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Fragile, 취약한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충격이나 변동성이 발생하면 쉽게 무너진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중앙집중적인 조직이나 과도하게 레버리지를 사용한 금융 구조가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Resilient, 강건한 시스템이다. 이들은 충격을 받더라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지만, 충격으로 인해 더 좋아지지는 않는다. 마지막이 바로 안티프래질 시스템이다. 그것은 단순히 충격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충격과 변동성, 불확실성을 통해 오히려 더 강해지는 구조다3. 대표적인 예가 생물학적 진화다. 생물은 돌연변이와 환경 변화라는 수많은 충격을 겪으면서 더 적응적인 형태로 발전한다. 인간의 근육도 마찬가지다. 운동이라는 미세한 손상과 스트레스를 반복적으로 받으면서 더 강해진다. 그리고 이러한 안티프래질의 원리는 사회나 경제, 정치 시스템 전반에도 적용할 수 있다. 즉 충격을 제거하려고 하기보다, 충격을 통해 강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안티프래질의 관점에서 오늘날의 많은 시스템은 정말로 Fragile하다. 지나치게 효율성을 추구하고, 변동성을 제거하려 하며, 작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은 실패를 억누르면 결국 더 큰 붕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작은 위험을 제거하려다 큰 위험을 키운다’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안티프래질 시스템은 작은 실패를 허용하고 분산 구조를 가지며 실험을 반복한다. 스타트업과 혁신 생태계는 이러한 안티프래질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4. 수많은 스타트업이 실패하지만, 그 과정에서 몇몇 기업이 엄청난 혁신을 만들어낸다. Amazon이나 Apple 같은 기업은 기존 산업 구조를 바꾸는 혁신을 만들어냈고, 이는 글로벌 전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안티프래질의 메시지는 단순하지만 매우 급진적이다. 세상은 예측 불가능하며, 우리는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하려는 시도에 집착하기보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살아남고, 더 나아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우리는 블랙스완을 피하려고 애쓰기보다 블랙스완이 와도 무너지지 않는 것, 더 나아가 그 충격을 기회로 바꾸는 안티프래질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는 시대에 탈레브의 통찰은 점점 더 현실적인 조언처럼 들린다. 미래를 정확히 맞추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예측이 틀려도 살아남는 구조, 그리고 더 나아가 예측이 틀릴수록 오히려 더 강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바로 블랙스완의 시대를 살아가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기 때문이다.
참조문헌
1. ‘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 Taleb, Nassim Nicholas(2007),
Random House
2. 나무위키
3. ‘Antifragile: Things That Gain from Disorder’, Taleb, Nassim Nicholas (2012),
Random House.
4. ‘Hollywood Economics: How Extreme Uncertainty Shapes the Film Industry’, De Vany, Arthur(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