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참 좋게 늙어야겠습니다."
아름다운 주름살
"지하철 타모 자리 비키준다아이가."
"그래, 허여케 샌 머리칼 덕뿐이데이."
"그나저나 우리 나이 벌시로 할배 대뿟따"
꼭두새벽에 고교동창친구와 카톡문자로 나눴던 얘기다. 다들 낼모레면 육순 밑자리 깔 나이라며 손님처럼 권네받는 인사치레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며 너스레 떨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다들 머리에 하얀 눈 내렸고, 해묵은 호박낯짝처럼 쪼글쪼글한 주름살도 많아졌다.
늦깎이로 결혼한 나와 달리, 갓 스물 초입에 가정을 이룬 친구들은 일찌기 손자손녀를 봐 할배가 됐다. 아직은 실감나지 않지만 손녀를 둘씩이나 무릎에 앉힌 사진을 보면 그냥 부럽다. 세상을 흔케히 잘 살았다는 훈장 아닌가. 아들딸이야 장성하면 출가하는 게 당연지사지만, 손주는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다. 나잇살 들면 생사고락을 함께 한 아내만큼이나 손주가 더 살갑다. 그런 걸 보면 나도 영락없는 할배다.
그런데도 친구들 중에는 실제 나이보다 십년은 젊어보이는 동안이 보인다. 짐짓 부러워하는 눈치다. 젊다는 공치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반가운 얘기로 들리지 않는다. 그 말을 뜯어보면 지난한 세상사를 허두로 살았다는 뜻이다. 아름다운 주름살은 거저 생기지 않는다. 노년의 주름살은 치열한 삶의 연륜이 쌓여야만 오롯이 새겨진다. 한데도 나잇살 들어도 얼굴에 주름살 하나 없다면 자랑질보다 낯부끄러워해야 한다.
"칭구야, 이제보니 니도 마니 늘것따!"
"글나. 니는 아즉 얼구리 팽팽하다이. 조켔따!"
더러 낯설게 만나는 친구와 나누는 눈인사다. 지하철을 타면 선뜻 자리를 양보 받거나, 시내버스를 탔을 때 빈 자리를 찾는 나이라 해도 스스로 주눅들 까닭이 없다. 세상살이는 젊은이들만 누리는 특권이 아니라, 손잡이 잡고 꼿꼿이 설 힘이 없어도 행복조가비를 충분히 엮어낸다. 그게 아름다운 노년의 삶이다.
"행님, 어찌 그래 산을 잘 탐니꺼예? 밷살도 보통아닌데예?"
"와?부럽나? 이기 다 시상 잘 사랐다는 즌거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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