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색한 그릇
옹색한 그릇
집집마다 주방에 수많은 그릇이 놓였다. 크고 작은 그릇, 볼기가 납짝한 그릇, 중허리가 볼록한 그릇, 그 모양새가 다 다르다. 실로 주방 집기만큼 다종다기한 물건을 드물다.
게다가 그 쓰임도 생김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우리집 강아지 행자만해도 서너 가지 그릇을 독차지했다.
예전에는 맛깔난 음식을 나눠먹는 앞접시로 낯짝을 드러냈는데, 행자가 분양되고부터는 영락없는 개밥그릇이 됐다.
그럼에도 한주일에 한번은 자주 쓰는 식기랑 온열살균을 한다. 개밥그릇 치고는 제법 대접을 받는다.
그릇의 쓰임은 다양하다. 때론 그릇은 마음을 담기도 한다. 작은 그릇은 적게 담을 수밖에 없으나, 마음을 담을 때는 그 크기가 달라진다. 좋은 뜻을 권네면 아무리 헤프게 퍼날라도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보시의 그릇은 마력을 가졌다. 평생을 단촐하게 살면서도 십억을 쾌척하는 어느 김밥장사 할머니, 열명이 넘는 아이들을 입양하여 제 자식보다 더 살갑게 키우는 어느 목자 부부의 그릇을 결코 작지 않다.
또, 유기견 60마리를 돌보는 배우 이용녀. 그녀는 "유기견을 키우기 전에는 꾸미기도 잘했는데, 유기견을 키우면서 꾸미지도 않고, 머리는 산발이고, 발뒤꿈치가 다 갈라지고 하니까 동료들이 '여배우가 그러면 되겠냐'고 그만두라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내 자신을 돌보기보다 유기견 돌보기가 우선순위가 됐다"고 말해 남다른 강아지 사랑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 또한 작지만 큰 자기 그릇을 예쁘게 빚었다.
그런데 타인의 마음을 담는 나의 그릇은 얼마만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비좁다. 아직은 선뜻 베푸는데 주저한다. 그릇을 잡는 손가락이 쉽게 펴지지 않는다.
궁벽하게 살지 않았는데도 남을 위하는 마음그릇은 간장종지만 하다.
벌써 십년 이상을 변함없이 탈북자청소년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는 친구, 그는 언제나 베품에 너그럽고 신선하다.
그렇지만 자기자신을 위해서는 너무나 엄격하다. 심지어 자동차 등록대수 2253 만대를 상회한 지금 세상에 차 없이 발품으로 산다.
서울 노란자위에 살아도 그만큼 소탈하다. 나들이 행장도 수수하다. 걸핏하면 제 자랑하기에 바쁜데.
이처럼 자신을 다 부어주는 용자를 만나면 숙연해진다. 그러나 큰 그릇을 가졌더라도 턱없이 적게 부어주는 소인배를 볼 때면 우선 낯짝부터 데데해서 싫다.
겉만 뻔지르르하고, 자기를 내세우는 그릇만 부신다. 그러니 그의 그릇은 아무리 크도 늘 비었다. 많을 걸 받으면서도 나눠주는데 인색한 그릇이다.
혹 우리네 사랑도 그렇게 난삽한 그릇이 아닐까?건강한 삶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부대끼며 헤프야 하는데.
_박종국또바기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