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김종관 Jan 07. 2019

하코다테에서 안녕

하코다테에서 찍은 단편영화

 7년 전 도쿄와 삿포로를 잇는 호쿠토세이 기차를 타고 하코다테를 지나친 적이 있다. 지금은 운행을 멈춘 낡은 열차의 침대칸 창문 너머로 어두운 하코다테의 밤 풍경을 본 기억이 난다. 그 외에는 아무런 기억이 남지 않은 하코다테로 영화를 찍기 위해 떠났다. 언젠가 겨울의 북해도에서 영화를 찍겠다는 기대를 풀 수 있는 우연한 기회가 생겨 하코다테가 북해도의 어디쯤 위치한지도 모르고 그 길로 향했다. 론리플레닛 매거진과의 동행취재라는 형식으로 작은 영화를 찍기로 한 것이다.

배우도 없고 스탭은 나를 포함해 셋. 동반한 론리 플래닛 에디터 한 명 그리고 간소한 카메라 장비들 뿐이었다. 어찌 생겼는지 모르는 하코다테지만 눈 내리는 겨울 풍경이기만을 바랐다. 삿포로에서 렌터카를 타고 밤의 고속도로를 지나 네 시간 남짓 거리에 있는 하코다테를 향해 달렸다. 차갑기만 할 뿐인 마른땅을 보며 눈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우리가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 어두운 하늘에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내리던 눈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영화를 찍었다. 사실 영화를 찍었다기보다는 어떤 이야기가 담길지 모르는 긴장감만을 지닌 채 눈 오는 거리를 카메라로 담을 뿐이었다. 뭔가가 발견되길 바라며 우리는 있을지 모르는 우연을 기다렸다. 끝없이 내리는 눈과 하얀 옷을 입은 도시와 그래도 반복되는 도시의 규칙을 담았다. 카메라에 담긴 도시는 슬로우 모션의 마법에 빠진 듯 느릿하게 흘러갔다. 모두가 느린 시간을 지니고 사는 듯했다. 

 우리는 하코다테에서 이별에 관한 이야기를 찍었다. 하코다테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그곳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하나의 목적이었지만, 나는 이별을 하기 위해 이 도시를 배회하는 연인들의 이야기를 구상했다. 카메라는 사람 없는 빈 공간만을 비추지만 목소리들만이 마치 그 공간에 존재했던 사람들처럼 배회한다. 지금도 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때로는 먼 추억을 더듬는 것처럼 연인들의 목소리가 하코다테를 부유하기를 바랐다. 빈 공간을 담았지만 가끔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을 상상하며 프레임을 만들어갔다. 
 


 그곳에 머물던 며칠이 지나고 어느덧 꿈같은 기억이 되었다. 며칠 동안 눈 내리는 거리에만 있었던 탓에 서울의 내 집에 누워 눈을 감을 때면 눈앞에 설광이 비쳤다. 마음 안에 하얀 생각이 일어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어느 날 배우를 찾았고 배우들의 멋지고 쓸쓸한 목소리들이 내가 상상한 것보다 아름답게 하코다테의 공간들을 채워줬다. 그렇게  작은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다. 우리가 만든 영화는 작아서 눈에 띄지 못할 영화일 수도 있다. 보는 사람 적은 영화는 너무나도 많이 만들어와서 단련된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쉽게 잊히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감정이다. 결국 그런 감정에 서운할 수 있겠지만 이 영화를 찍으며 경험했던 하나의 기억은 오래 간직될 듯싶다. 

 단량 기차와 화물차가 지나는 외지고 조용한 건널목 앞,  별생각 없이 놓아둔 노란 우산 하나가 조용한 바람에 왈츠를 추듯 천천히 움직이는 장면을 바라보았을 때다. 우산의 움직임이 카메라에 담겼을 때 잠시 연인들의 떠도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만들어낸 이야기 속 그들이 생명을 가지고 속삭이고 거리를 거닐던 순간이었다. 잃어버린 모자가 바람을 타고 내 머리 위로 내려앉은 듯 기다리던 우연이 우연이 아닌 것처럼 찾아왔다. 

 동료들과 함께 내리는 눈을 맞으며 스르르 빙판을 타던 우산을 숨죽여 보던 기억은 우리가 만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담겨있다. 


* 본편은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Au3NtoJ1zM



작가의 이전글 관객과의 대화에 대한 후일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