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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May 31. 2024

[14일째][5월31일] 동호회 활동

오늘 아침은 왜인지 모르게 일찍 눈이 떠졌습니다. 어제 일찍 잠들어서 그런 것 같은데, 중간에 새벽 3시에 깼다가 다시 잠이 들었는데도 빨리 일어난 것을 보면, 할 일이 많아서 몸이 자동으로 반응을 한 것인가 싶습니다. 오늘은 저녁에 모임이 있습니다. 모임이 저녁 7시 반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회사 퇴근하고 거기 가면 글을 쓸 시간이 없게 됩니다. 일어난 김에 오늘 갈 모임에 대해 좀 적어 봐야겠습니다.


이 모임은, 편의상 L이라고 라고 지칭하겠습니다. L은 인터넷 음악 동호회로 공연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활동하는 곳입니다. 네이버 카페 게시판에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음악을 추천하고, 그 뮤지션이 공연을 열게 되면 정보가 올라오고, 같이 공연을 보러 갈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곳입니다.


예전 PC통신 시절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이런 음악 동호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보통 밴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던 시절이었죠. 그러나 방송 출연한 어떤 밴드가 일으켰던 사건으로 인해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밴드 음악은 급속하게 내림세로 치닫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밴드 음악의 자리를 방송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중심으로 한 힙합 음악이 차지하게 됩니다. 밴드 음악팬들은 나이를 먹어 갔습니다. 삶에 치어 자연스레 자기들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습니다. 슬슬 사회적으로 개인주의가 수면 위로 올라왔고, 또 SNS가 생기면서, 기존 형식의 음악 동호회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그런 와중에 L이 나타났습니다. L은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음에도 눈에 띄게 공격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이후 처음 열렸던 2022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L의 로고가 그려진 깃발이 마구 흔들렸고, 깃발 아래로 추종자들이 몰려 들었습니다. L의 이름이 박힌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SNS상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곧이어 L의 이름이 걸린 공연을 열었고, 기존 네이버 카페와 인스타그램뿐만 아니라, 500명 이상이 모인 카카오톡 오픈톡방을 따로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제 눈에도 회원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는 게 보였습니다. 정체된 흐름 속에 파문을 일으키는 L의 활동 방식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운영할까?' 햇수로 7년 된 음악 동호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동호회는 편의상 S라고 표기하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몸 담고 있는 동호회를 개인 사정으로 인해 나오게 되면서 따로 S를 만들었습니다. S를 시작한 계기는 전 동호회의 친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사람들을 이끌거나 일을 만드는 성격도 아니어서, 동호회를 키울 욕심까지는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하게 저희끼리의 모임만 유지하는 정도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도 어느 정도 자기 활동을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기존 회원들의 참여도가 저조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정도가 심해졌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게시판에는 저 홀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가끔 신규 회원 유입이 되고 있긴 합니다만, 그들이 정착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습니다. 저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해 보고 회원들에게도 고민을 털어 놓았음에도, 이 세태가 당장 변화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누가 보면 동호회 활동을 저 혼자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제 글만 빼곡합니다. 얼마 전 가입한 어떤 회원은 우리 동호회 가입 사유에 '개인 블로그에 가까울 정도로 제가 혼자 글 쓰는 게 흥미로워서 가입했다'라고 적었습니다.


그런 찰나에 L에서 정기 서포터즈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덜컥 신청했고 예상대로 합격했습니다. 신청서에 동호회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다고 나름 어필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온라인 서포터즈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온라인 서포터즈의 할 일은 매주 정기적으로 네이버 카페에 게시글을 두 개 이상 쓸 것, 다른 게시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달아줄 것, 크게 보면 그 정도입니다. 저한테 이런 일은 손 안 대고 코 풀 정도로 쉬운 일입니다. 저는 매일 시간날 때마다 카페에 접속해서 틈나는 대로 좋아요와 댓글을 달았습니다.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 서포터즈 덕분에 카페 활동과 회원 유입수가 활발했던 것이었구나.' 서포터즈의 활동 기간은 5월 초부터 8월 마지막 주까지로 정해졌습니다. 거의 100일 글쓰기와 시기가 겹칩니다. 안 바쁠 때는 제발 일 좀 생기라고 할 정도로 너무 심심한데, 바쁠 때는 일복이 터진다더니. 아이러니한 인생입니다. 요즘에는 약속도 일부러 만들지 않고 L 활동과 100일 글쓰기를 열심히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적은 오랜만입니다.


2주 전에는 L 동호회 서포터즈 모임이 있어서 다녀왔었습니다. L 동호회를 운영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고, 어떤 이유로 서포터즈를 선정했는지, 그들이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등을 듣는 자리여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물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자리는 늘 어색한 법입니다만, 가만히 경청하다가 제가 아는 것을 그 사람들이 물어볼 때 적당히 대답하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던 것 같습니다. 이쪽 바닥에서는 어느 정도 짬밥이 있지만, L에서는 일개 초보 서포터즈일 뿐입니다. 초반부터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말 것, 적당히 따라서 반응해 줄 것,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맞춰줄 것. 이것이 제가 L에서 자리 잡고 싶은 포지션입니다. 문득, 로맹 가리가 떠올랐습니다. 프랑스 작가로서 로맹 가리는 권위 있는 공쿠르상을 받을 정도로 부와 명예를 가진 스타 소설가였습니다. 그러다 작가로서 더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활동했고, 역사상 두 번째 공쿠르상을 받은 작가가 되었습니다. 왜 로맹 가리가 떠올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째서인지 지금의 저와 비슷한 상황처럼 느껴졌습니다.


출근 전에 잠깐 쓰려고 했는데 글이 길어졌네요. 얼른 결론을 내야겠습니다. 저는 S를 나이 들고서라도 계속해 보고 싶습니다. 비슷한 것을 좋아하고 비슷한 취향인 사람들과 함께,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농담 삼아, 노후대책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말하지만, 본심 또한 그렇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L에 들어가서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L에서 활동하는 게 재미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무언가를 함께 만든다는 것이 즐겁습니다. 서포터즈가 끝나더라도 계속 연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나이 먹고서 뭘 또 동호회 같은 걸 하나,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그래야 제가 앞으로 이 활동을 할지 안 할지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만의 방법을 찾기 위한 인생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글을 끝내야겠습니다. 다음에 시간이 되면 동호회 활동을 또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0자 원고지: 17.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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