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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Jul 05. 2024

[49일째][7월5일] 꾸벅꾸벅

요즘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보며 꾸벅꾸벅 졸다가 잠을 자버린다. 불 끄기, 양치질 같은 잠 자기 전 예비 행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사 귀찮아서 그냥 그러다가 잔다. 그렇게 잠을 자고 눈을 뜨면, 전날 켜둔 컴퓨터 모니터와 스탠드 조명, 그리고 이동식 에어컨이 나를 반겨준다. 불빛과 소음을 옆에 두고도 잘도 잠을 자는구만. 몇 개월 전에는 잠을 자려고 누웠더니 갑자기 가슴 답답함, 공포감 같은 것을 느꼈는데(최근에 알았는데 그게 공황장애 증상이라고 한다), 그때보단 나은 건가, 싶기도 하고, 잘 모르겠다. 


요즘 따라 부쩍 어릴 때, 특히 옛날에 식구들이 같이 살았던 때가 생각난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밤에 잠을 안 자고 새벽까지 깨어 있는 것을 좋아했다. 모두가 잠을 자는 시간이니까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아서, 나만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새벽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디제이가 사연을 읽어 주는 소리를 들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에 잔다고 매번 혼이 났고, 결과적으로 성적도 개판이었다) 가끔 출출해서 부엌에 가거나,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방문을 열고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러면 텔레비전을 틀고 꾸벅꾸벅 조는 아빠를 보게 된다. 텔레비전에서는 야인시대나 태조 왕건 같은 옛날 드라마가 쓸쓸히 흘러나오는 중이다. "늦게 들어왔으면 빨리 방에 들어가서 잠이나 자지. 전기세 나가게 왜 그러고 있냐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향해 늘 소리쳤다. "방에 가서 주무세요"라고 흔들어 깨워도 아빠는 알았어, 알았다고, 대충 대답하시고는 계속 그러고 있었다. 왜 저러고 있는 거야, 그때는 그게 참 답답했다. 


지금은 내가 그때 아빠 나이뻘이 되어 유튜브나 게임을 틀어 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아침이 되면 출근을 한다. 인생사 모를 일이군. 그땐 어려서 몰랐는데 이제는 좀 알겠다.


- 200자 원고지: 4.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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