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일째][8월20일] 나와 책

by 김종규

오후에 지하철 2호선을 탔다. 서점 영업으로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가야 했다. 핸드폰을 보다가 정신을 놓는 바람에 환승역인 충정로역을 지나쳐 버렸다. 다음이 시청역이니 1호선으로 갈아타 종각역에 내리기로 했다. 종각역에서 걸어가면 교보문고가 코 앞이었으니까. 그런데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간다고 갑자기 다른 생각이 드는 것이다. '기왕 종각역에 왔으니, 간만에 영풍문고나 들러 볼까? 그 옆에 종로서적도 있는데 거기도 좀 구경해보고.' 그래, 언제 또 와보겠어. 출판사에 다니고 있으니까 서점 구경은 맘 놓고 할 수 있어서 좋긴 하다.


종로서적은 예전에 봤을 때보다 상당히 깔끔해졌고 대형서점으로는 딱 적당한 규모였다. 바깥에는 팬시용품을 깔아둬서 일반 손님들을 붙잡았고 안에는 긴 통나무 좌식 테이블을 둬서 손님이 앉아서 쉴 수 있게 하면서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또한, 카페처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일일이 작은 조명을 배치하고 전원 케이블까지 쓰게 한 것이 신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요즘 안 그래도 카페의 카공족 이슈로 말이 많은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손님을 오래 붙잡게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간 영풍문고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전체적인 구성을 바꿔서 책이 풍성하게 보일 수 있도록 진열을 다시 했고, 지하 1층에는 씨유 편의점을 두고 무인양품의 공간도 넓어져서 일반 소비자들을 끌어모으는 전략이 좋았다. 게다가 지하 2층에는 롯데리아와 파스쿠찌가 새로 생겼는데 교보문고에 비해 유동 인구가 적다 보니 한적한 분위기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 좋아 보였다. 예전에는 손님이 너무 적고 분위기가 칙칙해서 장사가 되겠나 싶었는데, 지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대형서점처럼 보인다. 안 간 사이에 공간 활용에 대해 꽤나 고심한 흔적이 엿보였다.


정이 들어도 너무 든 교보문고 광화문점은 한결같았다. 아직도 여름날이 한창이라 더위를 피해 서점으로 도망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교보문고 역시 몇 차례의 리모델링이 끝나고 이제는 자리를 꽤 잡아서인지 전체적인 매장 분위기가 밝고 편의시설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 과연 대한민국 제일의 서점답다. 볼일을 마치고 매장 안쪽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에 갔더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커피를 못 마시고 나왔다.


그러다 잠시 옛 생각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고서 제일 처음으로 취직한 곳은 동네 서점이었다. 그때는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취직해서 북마스터가 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영풍문고는 절대 안된다. 복지와 봉급이 교보문고보다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조건 업계 최고인 교보문고에서 근무를 해야만 했다. 어이가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소박한 꿈이었다.


책에 둘러싸인 삶,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책을 팔고, 매일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는, 나에게 그런 삶이 펼쳐질 줄만 알았다. 그러나 책일은 혹독했다. 책은 작지만 모이면 커지고 무겁다. 들고 나르는데 체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다. 신간이 대량으로 들어오거나, 학기가 바뀌는 시즌이면 책이 말 그대로 미친 듯이 들어온다. 정신없이 책을 옮기다보면 몸에 안 아픈 곳이 없다. 또한, 손님으로 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책에 그렇게 관심이 없다. 책과 관련된 지적인 대화를 할 시간은 거의 없고, 일손이 항상 부족해서 남들 쉴 때 못 쉬었다. 무엇보다 책일은 돈이 안 된다.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이 다른 업계에 비해 진짜 너무하다고 할 정도로 적다(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책이 싫어졌고 교보문고고 뭐고, 다 싫어서 도망쳤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아는 게 책밖에 없으니, 도망을 쳐도 다시 책으로 귀결이 되었다. 알바를 해도 도서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고, 돌고 돌아 책을 유통하는 회사에 취직했고, 지금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을 하고 있고 교보문고에 가서 영업을 뛰고 있는 신세다. 게다가 이렇게 100일 글쓰기 수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돈도 안 되는 책 주변을 맴도는 것일까. 책을 생각하면 괴로운 일투성이인데 나를 먹고 살게 해주기도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와 책은 정말 미스테리하면서도 애증의 관계다. (글자수: 2055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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