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상업영화' 와 '예술영화' 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상업적인 흥행을 목적으로 만든 영화' 와 '예술적인 가치를 목적으로 하는 영화' 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오랫동안 이야기 되어졌고, 영화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내는 중요한 단어들이 되었다. 이를테면, 예술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지적이고 교양이 넘치며, 영화를 보는 안목이 대단히 깊고 심오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생긴다거나하는 그런 인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감독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정체성을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로도 발전된다. 한때는 상업영화인들을 돈에 빠진 속물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고 하니, 방향을 정하는 문제에서도 수많은 고민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아마 지금은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다양성의 시대가 아닌가?)
그러나 이 두 단어가 살아있는 이상은, 고민이나 논란은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써 이 단어에 관한 나의 생각을 적어볼까 한다.
먼저 나는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하고자 한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경계와 기준은 어디인가?"
영화 <설국열차> 가 개봉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여러 리뷰를 보던 중 <설국열차> 를 단순한 상업영화로 단정 짓는 글을 보았다. 그 글에서부터 나의 질문은 시작되었다. <설국열차> 는 단순한 상업영화인가?
본래 나는 실용음악을 전공했고, 음악을 사랑한다. 그래서 잠깐 포인트를 옮겨서 음악으로 이야길 해보려 한다. 음악인들 사이에서도 상업영화와 예술영화의 딜레마와 같은 종류의 딜레마가 있다. '대중성' 과 '예술성' 의 딜레마다.
한 예를 들어보자. 가수 이적은 오랜 시간동안 사랑을 받아온 가수이다. Singer-Song Writer 인 그는,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그가 대중적인 음악만 해 온 것은 아니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통해 예술적인 측면으로 음악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Artist 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정규 5집 <고독의 의미> 를 발표했을 때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었다. 일반 대중들이 듣기에 그의 음악은 거부감이 없었고, 대중적이었다. 그래서 대중들에게는 환영받는 음악이었다. 특히 이러한 반응은 이적의 음악적 시도들과 예술적인 감각을 한껏 담아낸 음악들을 모르는 어린 세대들이거나, 최근의 음악만 들은 대중적인 가수 이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반대로, 오랫동안 이적을 알아왔고 그의 음악에 실험정신과 반항정신이 담겨있다는 것을 체험해 본 팬들은 5집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5집은 대중성만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다행이다> 같은 서정적인 발라드가 아닌 힙합과 덥스탭 사운드가 섞인 <사랑의 뭐길래> 같은 음악의 다양성을 위한 시도도 있었고, 아이를 버리고 떠나는 부모의 모습과 남겨진 아이의 마음을, 시대적인 상황을 노래한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도 있었다.
이적의 5집은 과연 대중적인가? 아니, 대중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적의 사례뿐만 아니라, 예술성을 높인 난해한 음악들이 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다시 영화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화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대중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 안의 메세지나 표현이 예술영화의 모습을 띄는 경우도 있으며, 예술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대중적인 표현이나 기법으로 풀어나가는 영화도 있으며, 예술영화로 보이는 영화가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영화 자체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섣불리 이야기 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 상업영화와 예술영화 두 가지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경계가 모호해지는 게 요즘의 영화이다.
나는 영화를 볼 때 상업영화인가 예술영화인가를 가르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예술적인 측면이 강한가? 상업적 측면이 강한가를 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 "그 기준은 무엇인가?" 나는 어느 측면이 강한가를 볼 때의 나만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무엇인가?" 이다. 이 기준은 꽤나 유용하다. 예를 들어, 헐리웃산 액션영화를 5편정도 떠올려보자. 그리고 그 영화에서 메세지를 찾아보자. 아마 메세지를 찾기 힘든 영화가 많을 것이다.
나의 기준을 가지고 <설국열차> 를 봤을 때 내가 찾은 메세지는 "다음 세대를 위한 기성세대의 노력과 다음 세대가 가진 희망" 이었다. 고아성이 연기한 '유나' 가 그 다음 세대의 상징이고,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북극곰도 그랬다. '커티스' 와 '남궁민수' 의 희생이 기성세대의 노력과 희생이었다. 이러한 메세지를 풀어내기 위해 <설국열차> 는 대중적인 요소들을 끌어들인다. 다시 말하자면, 나의 기준에서 <설국열차> 는 '메세지' 라는 예술의 기능을 위해 대중적인 요소를 가미한 영화라는 것이다.
모든 예술은 어떠한 것을 표현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작가의 생각, 시대의 모습, 감정 등등.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은 그러한 것들을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의 방식이 세련되고 가치가 있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음악이나 영화도 '예술' 의 범주에 속한다. 작가-또는 화자-의 생각이나 감정 등을 아름답게 표현해 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화를 상업영화, 예술영화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아이러니 하고 웃긴 일이 아닐 수 없다. 두 가지 측면이 있을 뿐.
영화를 보고 나오는 관객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여보면 가장 많은 말은 재미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에 대한 평이다. 물론 그 '재미' 라는 단어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평가나 리뷰를 보다보면, '재미' 라는 단어가 단순히 1차원 적이고 사전적인 '재미' 를 말하는 경우가 많음을 보게 된다.
영화의 숨겨진 메세지를 찾아보는 재미, 그래서 그 영화의 처음과 끝을 알아가는 재미. 그 재미가 진짜 영화의 재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한 편의 '동영상' 을 본 것이 아니라 방금 본 것이 '예술' 의 하나라는 걸 생각하면 절대 단순히 '(오락적인)재미' 만으로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그림을 이따위로 그리지? 바보인가?' 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