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에서
바티칸의 수많은 그림들과 조각상보다 눈에 들어온 한 사람이 있었다. 동그란 금테 안경에 검은색 드레스 같은 원피스와 검은색 스타킹, 그리고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빨간 플랫슈즈, 그 위에 쌀쌀해진 날씨를 가리려는 듯 분홍색 파카를 입은 그녀.
검은색 원피스에 빨간 플랫슈즈로 한껏 멋을 낸 듯 하지만 분홍색의 파카로 수수함을 내보이는 그녀. 말 한마디 없이 수많은 인파 사이를 유유히 걷던 그녀.
그녀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 건 한창 바티칸을 투어 하던 중간의 일이었다. 수많은 인파 사이에서 무리를 따라다녀야 안전한 것이었음을 그녀도 알았겠지만 그녀는 중간중간 우두커니 서서 카메라에 바티칸을 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걸음을 늦추고 무리와 그녀를 번갈아보며 그녀가 따라오길 바라며, 그녀가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가 가다 서다를 반복한 게 몇 번째였는지 까먹었을 때 그제야 내가 하고 있는 행동에 대한 자각이 생겼다.
여행 도중에 이미 한 번 후회를 경험한 적이 있다. 더블린에서 “후회 없이 살자.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 다짐했건만 나는 베네치아에서 이미 한 번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이번엔 후회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을 때 우리는 성 베드로 성당에 있었다.
좁은 길 안으로 수많은 인파가 들어설 때 나는 의도적으로 그녀의 옆에 서서 걸음을 맞추며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짧은 대답과 경계의 몸짓,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는 눈빛을 읽었을 때 나를 찾아온 건 아쉬움.
마지막으로 베드로의 의자를 보고 돌아서면서 나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 그녀를 찾고 있었다. 밥 한 끼 아니면 커피 한 잔 하지 않겠냐고 물어보려고. 베드로 성당의 입구 앞에서 나는 내 운명을 시험해보고자 하는 욕구가 들었다. 운명이면 다시 만나겠지.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내 운명에서 영영 사라졌다.
여전히 그 빨간 플랫슈즈가 눈에 아른거린다. 검은색이 그녀의 우울함을 나타낸다면, 분홍색 파카가 내가 보지 못한 그녀의 발랄함이었다면, 그 빨간 플랫슈즈는 뭐였을까? 그녀를 알아보고 싶었던 나는 여전히 그 빨간 플랫슈즈를 떠올리며 그녀를 궁금해하고 있다. 그녀의 옷차림과 둥근 안경테 그 묘한 눈빛을 떠올리며.
All Photograph by Jongmin Kim (J. M. Kim)
(Canon 1000D + EF-S 18-55mm & iPhone 7 pl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