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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Jul 30. 2016

졸업,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본관 점거' 이야기

서울대학교 본부 점거, 그리고 졸업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해. 넌 행복해야해. 행복해야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졸업, <졸업, 2010>, 브로콜리 너마저)

 때는 바야흐로 2011년 여름방학,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본부 건물을 점거 중이었다. 점거 농성은 장기화되었고 학생들과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하는 이른바 '본부스탁'이 기획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학생 동아리 위주로 진행되려던 행사가 점차 커졌고, 결국 많은 아티스트들(서울대 졸업생이 주축이 된)이 참석하기에 이르렀다. 그 안에는 이제 유명 밴드가 되어버린 '브로콜리 너마저'도 있었다. 


2011.06.18 서울대학교 본부스탁, 브로콜리너마저-졸업

  '졸업'을 부르던 이 장면 하나만으로, 그때에는, 브로콜리 너마저가 우리 시대의 김광석이나 안치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광석 시대의 학생들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다' 여기며 미래를 '애들픈 양식'삼아 노래를 불렀듯, 우리 시대의 학생들은 '미친 세상에서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하고' 싶었으니까.


SNUV- 총장실 프리덤, UV의 이태원 프리덤을 패러디하였다.


 몇몇 언론의 보도 내용과는 다르게, 학생들이 반대 집회를 열었던 이유의 초점은 '서울대학교 법인화' 그 자체가 아니었다. 대학교의 구성원 중 하나인 대학생들을 의견 협의 과정에서 배제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당시 서울대학교 총장이었던 오연천 총장은 "법인 설립 준비위원회는 경륜 있는 분들이 모인 상징적인 자리라 학생이 참여해도 역할에 의미가 없다고 봤다"라고 해명했고, 그에 분노한 학생들은 본부 점검 (그리고 '총장실 프리덤'과 '본부스탁')으로 이에 맞섰다. '본부스탁'의 추진을 막기 위해 학내 셔틀버스로 도로를 막던 이른바 '경륜산성'과 이를 피해 뮤지션들의 악기를 나누어 나르던 학생들의 모습은 꽤나 상징적이었다. '고고한 어른들'과 '대화에 고픈 학생들'의 모습은 그렇게 해학적으로 그려졌다.


2011년 서울대학교 본부점검 당시의 대자보 중 하나, 총장의 '경륜'발언의 패러디물이었다.

 유머와 웃음, 분노와 절절함, 그리고 의외의 훈훈함으로 가득했던 무더움 여름이었다. 그리고 참여했던 학생들 마음 한 켠에서는, 어쩌면 이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 예감했던, 그런 여름이기도 했다.




이화여자대학교 본관 점거, 그리고 다시 만난 세계


 5년이 지났고 여전히 여름은 무더웠다.


 지난 일주일은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과 졸업생들에게 특히나 힘든 한 주였다. 학교 측에서는 이른바 '미래 라이프 대학 설립'을 강행하였고, 학생들은 이에 대한 나름의 화답을 준비하고 있었다. 5년 전의 서울대학교와 비슷한 기시감이 들 정도였다. 학생들이 분노한 이유는, 그들이 배제된 상태로 이러한 의제들이 진행되었다는 데 있었으니까. 이전부터 쌓여있던 정당함에 대한 분노는, 큰 배신감과 실망감을 양분 삼아 폭발하였다. 


 사건의 단초는 비슷했으나, 학생들의 준비과정은 5년 전의 서울대학교와는 사뭇 달랐다. 워낙에 (여혐으로 가득한) 언론 및 인터넷 여론에 트집을 잡히기 일쑤였기에,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준비과정은 꽤나 조심스러웠다. 평화 시위를 위한 돈을 모금하고, 안전한 시위를 위해 경호업체를 고용하는 등. 고고한 어른들과의 대화를 준비하는 과정 발자국 발자국마다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레 진행되었다. 


 서울대학교 학생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차이가 있었으리라. '똑똑한 범생이들의 유쾌한 반항' 정도로 치부되었던 (이 역시 옳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서울대학교 본부 점거와는 다르게, 이화여자대학교 본부 점거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 벌써부터 '이기적', '된장녀' 등의 댓글들이 보이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슬프게도.


 그리고 오늘 (7월 30일) 낮 12시, 본관으로 찾아와 학생들과 대화하겠다던 '최경희 총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것은 총장이 아닌 경찰들이었다. 그것도 수많은. 서대문구 소속의 1,600명의 경찰들은 학교 전체를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이 통제하려던 대상, 즉 어제부터 교수들과 대치하고 있던 학생들의 숫자는 200명 남짓이었다. 

※ 이화여자대학교 학생들의 자세한 이야기는 페이스북 페이지 @saveourewha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6.07.30 이화여대 총장실, 다시 만난 세계 (4분 6초부터)

 교수들에 대한 '감금죄'라는 이유 아래, 학생들을 향한 경찰의 진압이 교내에서 진행되었다. 대화를 요구하던 학생들의 외침에 어른들의 대답이 그렇게 잔인했다. 2011년 그저 관악산을 버스로 둘러 막아서던 경륜산성은 그나마 운치 있는 표현이었을까. 5년 만에 어른들의 방식은 퍽이나 거칠게 변해 있었다. 무력으로 진압하는 경찰들 앞에서, 학생들은 평화적으로 스크럼을 짜고 노래를 불렀다.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였다. 


 대학교 재학생들 대부분은 20대 초반의 앳된 나이였다. 동영상에서 부르는 노래 중간에 터져 나오는 후렴구("후~")는 이런 순간에서조차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 학생들만이 가지는 귀여운 치기였다. 그리고 경찰이라고 쓰여있는 야광 조끼 앞에서 들리는 그 젊은 영혼의 치기는 슬프고 짠하다. 억울하기도 하다.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무더운 대학교 한 복판에서, 그들은 완고한 어른의 세계를 다시 만나고야 만 것이다. 내가 그 혼돈 속에서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노라 변명해 본다. 나는 겨우 졸업을 마친, 미친 세상에서 허우적 대고 있는 어린 어른이었다고 몰래 항변해본다. 그리고 집에 와 부끄러워한다.

 얼음 컵과 음료수를 그들 손에 쥐어준 것, 그리고 이런 못난 졸문을 쓰는 것 정도. 딱 그 정도. 


사족

 2011년 12월 28일, '서울대 법인화법'은 결국 시행되었다. 서울대학교는 국립대학법인으로 새로 출범한다. 2012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본부스탁에 대한 전설을 들으며 법인화된 서울대학교를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지금쯤, 4학년 여름방학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5년 전보다 훨씬 더 무더운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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