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꽤 다이나믹Dynamic 했고,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운 해였다. 큰 이벤트들도 많았고 이로 인해 관점이 변한 점들도 꽤 있어, 어쭙잖지만 두서없는 회고의 글을 시도해본다.
올해 3월. 결혼을 했다. 연애 기간이 짧지는 않았기에, 연애에 비해 결혼이 큰 차이가 있겠냐며 자신만만해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혼 생활은 과거 내가 겪은 어떤 경험에 비교해 봐도 매우 다르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무수히 많지만, 그중 하나는 그와의 관계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바꾸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의 나는, 당면한 문제를 홀로 껴안은 채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이 용납 가능한 수준의 솔루션Solution이 도출되기 전까지 스스로의 내면에 침잠하곤 했다. 그러던 내가, 연애를 통해 제대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다. 과거의 내가 보기엔 충분히 설익지 않았다고 판단할 내면의 이야기들을, 소재 삼아 그와 대화를 나누게 된 것이다. 덕분에 혼자 숙고했더라도 떠올리지 못했을 현명한 해결책을 여럿 발굴하기도 했다. 나아가,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현명함 일부가 내게 묻는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결혼 생활은, 연애에 비해서 더욱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을 줄어들게 만든다.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적 범주에서 배우자와 분리되는 영역이 줄어든다. 몇 가지 예외-회사에서의 업무나 각자의 개인 일정-를 제외하면, 우리 부부는 늘 함께 먹고 함께 자고 함께 이야기를 한다. 이렇게 일상을 사랑하는 이와 공유하는 것. 매 순간 중요한 장면들을 포착해 간직하는 것. 내 삶에서 가장 변한 것은 이러한 즐거움을 깨달은 데에 있었다.
앞서 말한 이야기에서, 단어 '일상'에 대한 개념이 눈에 밟힌다. 내 안에서 일상이라는 언어의 의미가 바뀌지는 않았나 되뇌게 되는 것이다. 결혼 이전의 내게, 일상이란 '라벨링 되지 않은 시간들의 집합' 혹은 '중요한 시간들을 제외한 남은 여집합'과 같은 뜻이었다. 당시에 중요하게 여기던 네 가지 삶의 축-업, 연애, 자기계발, 가족행사-을 제외한 자투리 시간들을 일상이라 여기며, 이를 홀로 고민하고 반성하는 데 주로 사용해왔다.
그때의 문법을 지금도 그대로 적용한다면, 혼자만의 시간이 줄어든 결혼생활은 일상이 축소된 나날들이어야 한다. 하지만 요즘의 내 일상은, 전에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풍요롭다. 즉, 일상을 정의하는 나의 관점이 변한 것이다. 배우자와 함께 고민하고, 의논하고, 결정하며, 반성하는 그 모든 시간은 소중한 일상이 되었다. 중요하다고 라벨링된 시간이 일상과 등치 되는 이 감각은 내겐 꽤 생경한 변화였다.
일상의 뜻이 '중요하지 않은 시간들'에서 '중요한 시간 자체'로 변한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중요한 순간들을 일상화化한다는 건, 보다 현재에 몰입한다는 뜻일 것이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더 나은 나 자신'을 상상하며 정진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곤 했다. 그건 그 자체로 훌륭한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순간의 노력과 목표를 중시한 나머지 모자란 현재의 모습에 일종의 면죄부를 준다는 데 있다. 스스로를 아직은 '미성숙한 존재'라 여기고,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노력으로 커버하려 했다. 그랬기에, 미래의 자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 투자하는 '중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를 일상이라 여긴 건 아닐까.
미래의 목표를 조금 내려놓고, 지금의 내가 매 순간 일으키는 행동과 그 결과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미래를 위한 연습과정으로서의 지금이 아닌, 책임져야 하는 매 순간의 형태로서의 지금 말이다. 내년이면 서른셋, 늦었지만 이제라도 미루고 유예했던 어른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시간에 대한 관점이 변화한 것처럼, 나를 가꾸는 방식도 변한다. 행복한 삶을 매 순간 충분히 영위하기 위해, 내가 지닌 최고의 도구들을 늘 손질해야 한다. 바로 몸과 마음이다. 몸은 방치할수록 마모되고 마음은 벼리지 않으면 무뎌진다고 한다.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지나쳤던 지금의 나 자신을 추스리기로 했다. 긴장의 끈이 팽팽해지는 감각이 있을 때면 수면과 식사, 관절과 눈, 그리고 마음의 상태를 체크하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군생활 중 수술한 후 자주 다치는 발목 외에도 목이나 허리, 손목 등 관절에 생기는 크고 작은 통증들을 경시하지 않기로 했다. 몇 년째 미루던 사랑니 3개를 모두 발치했고 틀어진 윗니를 6개월 동안 다시 교정했다. 발목 근육 재건을 위해 재활 운동을 시작했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새벽 수영과 근력 운동을 매주 규칙적으로 하고 있다. 더 좋은 몸을 만들겠다는 도전적인 목표가 아닌, 지금의 몸을 유지 보수하려는 메카닉Mechanic의 욕심에 가깝다.
신혼집에 들어선 이후, 요리나 청소와 같은 생활력은 일취월장 중이다. 이전의 실력이 워낙 미미하였기에 가능한 성과 아닌 성과였다. 그간 쉽게 간과하던 집안일 중 하나인 '물건들의 배치/정리/정돈'과 '다음 장보기 목록 꾸리기'의 중요성을 재차 깨달아가는 중이다. 늘 적절한 상태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한 가사이기 때문이다.
업에 대한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간 기획 업무를 하며 스스로를 프로젝트의 항해사로 여기곤 했다. 다양한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필요하다면 선장을 대행해 중단기적 목표를 설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간을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대응하는 데 보낸다. 기획자가 문제를 디테일하게 진단할 때에야 뒤따라 실행 조직들이 낭비 없이 실무에 집중할 수 있다는 나름의 믿음도 있었다.
그렇게 만 5년 반의 시간이 흘렀다. 디테일은 팔수록 끝이 없었고 임기응변을 요하는 작은 전투는 무수히 많았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스스로 꽤 지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올해 새로 외국인 임원이 상사로 부임하면서, 기존 업무 프로세스를 재점검하는 태스크포스에 참여하면서 보다 명확히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얻었다. 요즘의 나는, 기획자가 등대에서 일하는 항로표지 관리원(속칭 등대지기)처럼 일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 중이다.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잘' 일하기 위해선 직면한 모든 문제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현안의 경중에 따라 나의 시간을 현명하게 할애하는 방법을 보다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꽤 많은 자잘한 현안들은 각 부문 간 정보 투명성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효율적으로 해결되기도 한다. 명징한 관제만으로 해결이 필요한 과제의 숫자를 줄일 수 있다. 올해 업무 하면서 집중해서 함양하려 노력한 태도이기도 했다.
한 동기가 선물이라며 "대충, 철저"라는 글귀가 적힌 포스트잇을 모니터에 붙여놓고 간 적이 있다. 대충 전체 맥락을 빠르게 파악하고, 이어서 철저하게 디테일을 바라보라는 뜻이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좋은 글귀라 연말인 지금까지도 항상 보관하고 있다. 업을 마주하는 우선순위, 스코프Scope, 그리고 층위별로 내가 지녀야 할 태도를 잘 축약된 글귀를 보며 업무 하는 나 자신을 종종 추스른다.
그리고 내년, 2020년엔 새로운 가족을 맞이할 예정이다. 태명은 호호.
부모-자식 관계에서 늘 한쪽의 입장만 되어봤는데, 새로운 입장에 설 준비를 하고 있자니 걱정이 앞선다. 기대되면서 무섭고 오싹하면서 따스하니, 마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만으로 이미 여러 감정이 중첩된다. 자녀를 대하는 태도가 여느 인간관계와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건전한 관계를 위해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상대에게 과도하게 투영하지 않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매 순간 진심을 다하고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다. 여타 인간관계와 달라서는 안된다고도 믿는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 세상 그 누구와의 관계에도, 인연을 맺기도 이전에 상대를 아득히 사랑할 준비를 한 적은 없었다. 마주하지 않은 상대를 이토록 사랑한다는 것은 인생에 몇 없을 신비한 경험이다. 사랑하는 이와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할 생각에 더없이 행복한 2019년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