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1월 1주차 눈여겨본 글

by 한소리엘

01. 오십이 되며 다짐... 까진 아니고 생각해본 것들

(`18.01.02, 문유석, 문유석 판사의 일상 유감, 중앙일보)

"먼저, 무해(無害)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다. (중략) 나이 먹을수록 권한이 커지는 건 냉정한 능력평가의 결과라기보다 그저 인간사회의 관습이다. 순번제로 때가 되어 잠시 맡은 힘에 불과하지만 여하튼 힘은 힘이다. 손윗사람, 상급자는 악의 없이도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악의가 없었다는 말은 변명이 못 된다. 어떻게 악의도 없이 사람한테 그러는 걸까? 무해한 사람이 되려면 끊임없이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새해 다짐에 관련된 많은 글 중 단조로우며 힘 있는 문유석 판사님의 글을 이번 주의 글로 선정해 본다. 우선은 무해한 사람, 두 번째로는 '나도 (알고 보면) 힘들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 사람. 많은 고민과 노력을 해야 닿을 수 있는 목표이기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무해함은 정말로 쉽지 않으니까.



02. 울지마, 죽지마, 삭제해 줄게

(`18.01.03, 박수진, 한겨레21)

"이 지점에서 수많은 문제가 파생된다.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자신의 유출 영상이 '음란물'로 분류된 피해 여성은 국선변호인 선임, 피해 상담 등을 지원받을 수 없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해가 없는 수사관으로부터 '그러게 왜 동영상을 찍었냐' '왜 섹스를 했냐'라는 질책과 '음란한 여자'라는 시선을 받기 일쑤다. 더 큰 문제는, 현행 법규상 '동영상 유출·유포'를 제외한 사이버성폭력의 처벌은 사실상 이뤄지기 힘들다는 점이다. '온라인 게임 내에서 벌어지는 언어 성희롱, 카카오톡 등 대화창의 집단 성희롱, 성관계 동영상이 있다며 협박해 원치 않는 성관계를 요구하는 등 다양한 사이버성폭력이 있다. 이런 사이버성폭력은 제대로 정의되지도 않고 있다.''

국산 야동, 리벤지 포르노, 몰카 영상을 그저 불법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공감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피해자와의 사이에 무수한 인터넷 창들이 가로막혀 있다는 변명을 할 수도 있다. 클릭하고 시청하는 이들도 가해자로 분류될 때, 그리고 그러한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사회에서 '혐오'스러운 일이 될 때 진정으로 남녀가 서로 평등하다고 말할 수 있다.



03. 교권 가장한 권위주의와 페미니즘의 충돌 ... 괴로워도 뒤로 가진 않겠다

(`18.01.05, 최현희,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 경향신문)

"그동안 내가 지향해온 좋은 교사의 모습에서 온건한 가부장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하는, 아내와 자녀에게 다정한 남편이자 아빠지만 가족을 ‘보호’한다는 우월적 위치의 가부장의식에서는 자유롭지 못한. 폭력적이고 불성실한 가부장보다야 훨씬 낫겠지만 온건한 가부장 역시 아내와 딸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도에 복무하고 있다는 면에서는 서로 다를 게 없으니, 교사의 권위의식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내가 아이들에게 온화한 권력자인지 폭력적인 권력자인지의 차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글자 하나를 놓칠세라 문장 하나를 잘못 이해할라, 조심스레 곱씹어 읽어 내려간 글이다. 최현희 교사님의 치열한 고민이 절절할 정도로 묻어난다. '페미니스트'로 일상을 살아가는 것마저 힘든 일일 텐데, 더 나아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를 업으로 하는 것은 얼마나 고독한 길일까. 더불어 소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사람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글이기도 하다. 학생에게 다가가기 위한 탈권위와 규율 중재의 역할 사이에서 교사 개인에게 주어지는 고민은, 페미니즘을 통해서 더욱 심층적으로 심사숙고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철학적/현실적 물음에 페미니즘은 이득이 될 수 있다는 예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04. 우리는 모두 국민인가

(`17.12.31. 이범준/김한솔, 헌법 11.0 다시 쓰는 시민계약, 경향신문)

"박명규 서울대 교수는 '한국 사회는 국민 과잉이다. 헌법 일부 조항을 비롯해 국적이 필요한 곳이 있다. 그래도 국적은 다양한 분류기준 가운데 하나이지 최상위는 아니다. 졸업자격을 다루는데 왜 국적이 등장하느냐'고 했다. 그는 뿌리 깊은 국적주의가 헌법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개인으로서 보편적 권리를 말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틀 안에서 생각한다. 그런데 헌법에 국민이란 표현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우리는 모든 인간을 국민이라는 단일 범주에 묶고 있다. 이제 국민, 시민, 주민 등의 다양한 권리를 인정해 병치도 시키고, 분리도 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작년에 개봉했던 영화 <범죄도시>에는 '조선족' 출신의 '장첸'이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그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조선족 말투 패러디는 그저 웃어 넘기기에는 불편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한민족이 아닌 한국인'과 '한국인이 아닌 재한 외국인'은 우리('한국 민족에 속하는 한국인'=나와 같은) 주변에 이미 가까이 존재한다. 서구 민주주의에서 출발한 '시민권' 개념과 '우리 민족'이 기형적으로 탄생한 우리들끼리만의 '국민 의식'의 모습을 경향신문이 신년특집으로 조명해 준 글을 읽으며 내 불편함의 근원을 생각한다.



05. "사람은 상하지 않았나?"

(`18.01.02. 김동춘, 김동춘 칼럼, 한겨레신문)

"김수환 추기경은 박정희 대통령이 교회가 왜 노동문제에 개입하느냐고 따져 묻자 '물질은 공장에서 값있는 상품이 되어 나오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은 그곳에서 한갓 폐품이 되어 나옵니다'라고 교황 비오 11세의 '사십주년'을 인용해서 답했다. 그러나 개발독재와 그 긴 그림자 속에서 발전의 길을 걸어온 한국에는 이러한 경구를 비웃는 일이 수십년 반복되고 있다."

작년 대선 때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는 구호를 사용했다. (발화자에 대한 호오를 배제하더라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 구호에 예상외로 뜨거운 반응을 보낸 이유가 있지 않을까. 법인차량으로 경미한 접촉사고를 내고 당황하며 전화한 팀 후배에게 화부터 버럭 냈다던 어떤 선배가 생각났다. 글에 적확하게 맞는 좋은 예시는 아니었다.



06. 채용시험 통과가 정규직의 자격조건?

(`18.01/36호, 박상은, 오늘보다)

"이경숙은 《시험국민의 탄생》에서 서열이 보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갈수록 폭력적 성격을 띠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타인의 것을 부수거나 빼앗아버리는 이 폭력성은 ‘타인의 것’의 가장 핵심, 즉 대상 타인만이 유일하게 소유하는 타인의 인간적 권리마저 서열이 높은 자가 마음대로 지배해도 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중략) 정규직 전환 논의과정에서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쏟아낸 말들은 모욕적인 것들이었다. '무임승차' '낙하산들'이라는 비하, '공기업 입사를 날로 먹겠단 얘기냐', '힘들게 들어온 회사가 더러운 짬통이 된다'는 말까지 나왔다. 모든 말들은 '너희는 우리와 같은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자격 없는 이들을 써왔단 말인가? 왜 자격 없는 이들로 인천공항공사의 85.7퍼센트를 채우고, 자격 없는 기간제 교사에게 담임을 맡겨왔단 말인가? 이들이 비정규직인 이유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본래 정규직으로 써야 하는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번 글에 뒤이은 주제가 될 것이다. 다소 억울함이 있더라도 내가 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출발했음을 늘 자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건 나에 관련된 고민일 뿐이라. 여전히 저 기사에서 말하는 '젊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나쁘게 생각할 수가 없다. '제 밥그릇 챙기기'라는 단순한 표현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눈물을 그저 숨길뿐인지.



07. 까탈스러운 이치로, 뜻밖의 수상 소감

(`17.12.26, 백종인, 야구는 구라다, 다음 스포츠)

"새로운 제작자는 그 때 고객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이건 아주 잘 만든 도구의 한 조각 같네요. 제가 원하는 것은 제 몸의 일부 같은 느낌입니다. 대부분 한번 끼어보면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제가 만약 어느 한 부분의 수정을 말씀드리면 아마도 전체적인 밸런스가 깨질 거예요. 그걸 유지한 채 수정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스포츠 기사를 읽으며 매력적이라고 느끼게 된 건 오랜만이다. 다른 나라에도 물론 많겠지만, 일본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유독 이러한 거장이나 장인에 대한 미담들을 종종 찾을 수 있다. 오랜 시간을 투여하고, high taste를 견지하는 태도에 대해 흥미롭게 읽은 글이라 공유한다.



08. The robots are coming, and Sweden is fine

(`17.12.28, Peter S.Goodman, the New York Times)

" 'In Sweden, if you ask a union leader, 'Are you afraid of new technology?' they will answer, 'No, I’m afraid of old technology,'' says the Swedish minister for employment and integration, Ylva Johansson. 'The jobs disappear, and then we train people for new jobs. We won’t protect jobs. But we will protect workers.' "

로봇과 자동화가 일자리를 뺏어가는 시대에, 스웨덴 근로자들에 대한 NY타임스의 글이다. 일자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보호한다는 내용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기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일자리도 유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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