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아이를 품에 안다.
“왜 이렇게 안 나오지? 괜찮은 건가? 기미도 안 보이네.”
“첫째 아이는 원래 좀 늦는다잖아. 이렇게 운동 잘하고 있으니까, 때 되면 나올 거야.”
2010년 2월 13일. 설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이미 예정일은 9일이 지났다. 명절을 앞두고 가족들이 한 집에 모였다. 아내와 함께 저녁 운동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 편히 잠들었다. 몇 시쯤이었을까? 아내가 진통을 시작했다. 바로 몇 시간 전만 해도 기미조차 없다고 했는데… 뒤늦게 잠에서 깬 내게 아내는 이제 시작된 것 같다며 간헐적으로 느껴지는 진통 주기를 측정하고 있었다.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후 우리는 미리 자연스러운 출산 과정을 교육받았다. 그래도 처음이라 낯선 경험임은 분명했다. 아내는 새벽부터 진통을 느꼈지만 진통 주기가 아직 짧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받은 대로 집에서 할 일을 다 하고 있었다. 아침을 먹었고, 샤워를 했고, 일어섰다 앉았다 하며 출산을 준비했다. 오후 5시쯤, 조산원을 향해 출발했다. 7시쯤 조산원에 도착한 우리는 따뜻한 방에 들어가 약간은 어두운 조명 아래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내는 앉아 있다가 내게 기대기도 했다가 진통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취하고 싶은 자세를 취하며 출산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급격히 산기를 느낀 아내의 요청에 조산사 분이 들어와 본격적인 출산 준비를 했다. 그 자리에 나는 아내와 함께였고 아내의 출산 장면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아내는 내 한쪽 손을 잡고 있었고 나는 다른 한 손으로 아내의 머리카락을 쓸어 주기도, 두 손으로 아내 손을 잡아 주기도 했다. 오후 9시가 되기 전, 아내는 내게 기댄 채 세상에서 가장 예쁜 우리의 첫째 딸을 출산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감격스러운 순간임은 틀림없었다.
약 10개월의 임신 기간이 지나면 드디어 부모는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진짜 아빠가 되고, 진짜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임신과 출산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듯 육아 기술 역시 부모에게는 어느 정도 내재된 자연스러운 자질 중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우리의 자질을 끄집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부모가 처한 상황에 따라 고민의 종류와 크기는 다르다. 산모의 삶, 부부의 삶은 모두 제각각이다. 각자의 방식과 이유가 있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 또는 조금만 노력하면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소신껏 육아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출산 후 육아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요소 중, 출산 후 조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출산 후
갓 태어난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는 매우 중요하다. 이 시기에 엄마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병원의 출산 시스템과 출산 후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아이와 엄마가 적잖은 시간을 떨어져 지내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다. 이런 상황을 누가 의도한 것일까? 엄마들이 원한 것일까? 혹시 아이들이 원한 것일까? 아이들이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들 중에는 이를 원하는 엄마가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출산 후 지쳐 버린 심신의 회복을 위해 짧은 시간이나마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 모든 엄마가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언제부터 우리는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했는가? 언제부터 산후조리원을 활용한 산후조리가 성행했는가? 이런 식의 출산과 산후조리가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출산 후 엄마의 심신이 매우 지쳐 있으리라는 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연히 엄마는 쉬어야 한다. 그런데 꼭 이런 방식이어야 하는가는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나라 예비 부모들은,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고 그 뒤 엄마가 산후조리원에 가서 짧게는 1주, 길게는 3-4주, 평균 2주 정도 몸조리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 산후조리원이 우리나라 여성의 신체적 특성과 사회문화적 특성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꼭 필요한 시설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라면 이는 달리 생각할 문제다. 용어의 정의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산후조리원을 ‘산후에 몸조리를 하도록 전문적인 시설을 갖춘 사설 요양원’으로, 요양원은 ‘환자들을 수용하여 요양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놓은 보건 기관’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미 산후조리원이라는 명칭 안에 산모를 환자로 이해하는 인식이 사회적 통념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아니, 임신을 하고 병원을 다니면서 이미 임부는 환자로 취급당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임부는 환자인가? 임부는 환자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지적한 바 있다. 그럼 산모는 환자일까? 물론 출산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시행하는 의료적 처치로 인해 환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모든 산모가 환자는 아닐 것이다. 혹 모든 산모가 어떤 의료적 처치로 인해 환자가 되었다면 그 사후 처치는 병원에서 완료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데 왜 모든 산모가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요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일까? 굳이 용어의 뜻풀이를 들어 문제를 삼고자 함이 아니다. 사실 환자가 아니어도 병원은 갈 수 있고, 받아만 준다면야 요양원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는가?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산후조리원 역시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타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생산자는 소비자(산모) 유치로 인한 수익을, 소비자는 원하는 편익을 얻는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거래다. 문제는 이 거래가, 모든 산모가 받아들여야 할 만큼 꼭 필요한 거래는 아니라는 데에 있다. 더욱이 다른 소비자인 아이에게는 결코 도움이 안 되는 거래라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신생아에게 엄마와의 접촉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는 진리 아닌가? 보통 이를 스킨십으로 표현하는데, 앞서 언급했듯, 나 역시 신생아는 가능한 한 엄마와 항상 붙어 있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생산자의 이익 추구를 탓할 수 없다는 점은 앞서도 몇 번 언급했다. 소비자가 정말 합리적 소비를 하는지를 생각하면 된다. 산후조리원이 꼭 필요한 산모가 이 시설을 이용한다면 무엇이 문제겠는가? 나는 모든 산모가 이 시설의 이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그 분위기에 깊은 고민 없이 편승하는 현상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이다. 산후조리원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시설일지 몰라도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런 시설을 이용해서 아이가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집에서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다는 것은 굳이 따져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나마, 산후조리원에서 산모가 아이와 계속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 뒤에는 “그럴 거면 뭣하러 산후조리원에 가겠는가?”라는 질문이 따라오지 않을까? 요는 엄마와 아이가 가능한 한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새벽마다 깨어 우는 아이 때문에 힘들 것이다. 틈만 나면 먹고 싸 대는(?) 아이 때문에 지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신생아다. 그런 갓난아기를 재워 주고 먹여 주고 씻겨 주고 품어 주는 일이 엄마(부모)가 할 일이다. 신생아 시기를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산후조리원에서 보내는 2주, 많게는 3-4주 이런 일을 좀 덜 하는 것이 엄마에게 얼마나 이로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남자라서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출산 직후에는 휴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남자이기 때문에 잘 모를 수 있다는 지적과 출산 직후에 휴식이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은 100% 공감하고 인정한다. 하지만 출산 직후에는 꼭 아이와 떨어져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면 이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물론 몸은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출산이 신체 작용만은 아니지 않은가? 커다란 고통을 감내하며 낳은 아이가 내 옆에 없다. 이것이 과연 엄마의 심리에 어떤 도움이 될까?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이의 입장은 어떨까? 엄마 없이 홀로 작은 공간에 누워 있는 것이 과연 아이에게 바람직한 일일까? 잠깐이라도 안아 줬다면 괜찮은 것일까? 더욱이 그 시기를 조금 편하게 지낸 뒤, 아이와 계속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 시작될 때, 그 낯섦과 어려움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이는 두말할 필요도 없고, 나는 엄마를 위해서도 출산 후에는 처음부터 엄마와 아이가 꼭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몸을 추스르는 것과 엄마 역할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해야 할 고생이라면 하는 것이 좋다. 그 누가 고생을 하고 싶겠냐마는 적어도 근본적으로 인간이 짊어져야 할, 그래서 꼭 치러야 할 고생이라면 ‘때’에 맞춰 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 당시에 겪어야 할 고생을 피하면 비록 그때에는 편할지 모르나 분명 언젠가는 다른 수고를 요구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생각한다. 역으로 ‘때’에 맞는 고생을 마치면 언젠가는 그 고생의 열매를 거둔다는 사실 또한 진리라 믿는다.
산모가 출산 직후부터 일정 기간 회복을 위해 적정한 휴식을 취하는 것은 당연하고 꼭 필요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이다. 완벽한 방법을 찾기가 어려울지는 몰라도 엄마와 아이 모두가 좋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 복지 측면에서 국가가 할 수 있는 지원이 많아지면 좋을 것이다. 그럴 수 있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면 우선 각자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찾아보아야 한다. 각 가정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기 때문에 집에서 할 수 있는 산모의 산후조리 방법을 일률적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이에게 초점을 둔다면 각 가정, 각 부부에게 맞는 산후조리 방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 싫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면 못할 이유를 백 가지라도 생각해 내는 게 사람이지만, 아이를 위해 정말 꼭 해야 하는 일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는 게 부모 아닌가?
부모가 되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하는 이에게, 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이로서 작게나마 힘을 주고자 하는 필자의 응원이라 이해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