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꿈을 다시 생각하다.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
인터넷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 말하는 '꿈'의 정의다.
‘꿈을 갖고 살라.’ 한 번쯤은 모두 들어 보았을 말이다. 꿈, 좋은 단어다. 무언가를 꿈꾸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분명 가치 있는 삶이리라.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현재가 과거보다 더 낫기를, 미래가 현재보다 더 낫기를 바라지만 현실이 생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자신의 바람대로 살아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가 꿈을 꾸며 사는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일이다. 그것이 능동적으로 타인의 행복을 짓밟고 누군가를 쓰러뜨려서 쟁취해야 하는 바람만 아니라면.
꿈의 정의
“네 꿈이 뭐니?” 누구나 어렸을 적 한 번쯤은 들었을 질문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성인끼리는 쉽게 주고받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때 말하는 꿈이란 보통 어떤 직업인을 칭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릴 적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 뭐라고 답했었더라.. “대통령이 될 거예요.” 몇 살 때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통령을 꿈꿨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나이를 먹어서야 대통령은 아무나 할 수도 없거니와 아무나 해서도 안 되는 일임을 알게 됐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과학자가 될 거예요.” 내가 어렸을 때는 주로 이런 대답이 많았다. 한때는 끝 글자가 ‘사’ 자 돌림의 직업인들이 우선순위로 뽑히기도 했고… 지금은 어떨까? 과거에 비해 사회가 더 복잡해진 만큼 꿈으로 선택되는 직업인도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직업인이 꿈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직업인을 꿈으로 삼는 것이 타당할까?
직업인이 나의 희망이 되고 내 이상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의미는 축소되지만 더 구체적이지 않은가. 게다가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해도, 모든 단어를 정의에 국한해서 생각할 필요야 있겠는가? 안 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직업인이 꿈이 되는 순간, 꿈이 지닌 참 의미는 퇴색되고 그 가치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직업인을 꿈으로 삼고 그 직업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
“네 꿈은 뭐니?”
“의사요.”
“그럼 공부 열심히 해야겠네?”
“네, 그래야죠.”
명절에 만난 어떤 학생과 친척 어른의 대화 같다. 대체로 여기서 꿈에 관한 대화는 끝나고 만다. 질문자는 상대방의 희망 직업을 한 번 더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고 대답한 이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인, 즉 의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삼 다지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의사로 대답한 이는 의사라는 꿈을 좇아 오늘도 졸린 눈을 비비며 공부에 매진한다. 왜 의사가 되고 싶으며,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의사가 되어서 무엇을 할지는 없다. 물론 그 이후에 이런 질문들이 오갈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꿈에는 이미 이런 질문들이 함축되어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꿈을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러고는 자녀 또는 학생들에게 직업인을 의미하는 꿈을 가지라 말하고 그들은 깊은 고민 없이 직업인을 꿈으로 삼는다. 그렇게 희망 직업을 하나씩 갖게 하고 그 직업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인을 꿈으로 삼고, 그 직업인이 되기 위해 쏟는 노력을 굳이 문제라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관점을 좁히는 부작용을 낳는다. 더욱이 그 꿈을 이루고 나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꿈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다른 꿈을 꿀 것인가? 아니면 꿈은 직업을 선택하는 선에서만 이야기하고 그 후로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면 되는 일인가? 그렇다. 그래도 된다. 꿈이란 게 뭐라고 계속해서 꾸어야만 하겠는가. 하지만 꿈이 직업인으로 정의되는 순간 꿈은 쟁취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는 게 문제다. 누구에게나 원하는 직업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람, 즉 그 일에 내포된 상위의 목표가 없다면 그 일은 한낱 돈벌이에 불과할 뿐이다. 돈벌이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 일의 참 의미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의사가 되면 뭐할 것인가? 돈에 혈안이 된 의사라면 그 직업의 존재 목적을 제대로 달성할 수 있을까? 검사가 되면 뭐할 것인가? 권력에 빌붙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한다거나 금권에 휘말려 정의와 불의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검사라는 직업의 참 의미를 실현할 수 있을까? 다른 직업도 모두 마찬가지다.
사실 어떤 일이든 보통 실무를 경험하면 그나마 품고 있던 그 일에 대한 순수한 의미도 퇴색되기 마련인데 처음부터 그런 의미조차 생각지 않는 분위기에서 어떻게 직업의식이 나오고 직업윤리가 지켜지겠는가? 의사를 꿈으로 삼으면 어떻게든 의사만 되면 되는 것 아닌가? 그 이후는 되고 나서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사회에는 그런 의사가 참으로 많으리라 짐작한다. 언젠가 뉴스에서, 의과대학 졸업 후 돈을 잘 버는 전문의 과정에 졸업생들이 많이 몰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진료 분야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는데 그런 실태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하다.
꿈을 직업인과 동일시함으로써 그 단어의 참 의미를 퇴색시키고, 그게 당연하다는 듯 사람들로 하여금 그 직업을 쟁취하는 데 매진하게 하면서 정작 그 너머의 삶은 생각지 못하게 만든다면 이는 큰 문제다.
직업인을 꿈으로 삼지 말자. 직업인이 되는 것을 꿈으로 생각하게 하지 말자. 꿈은 단순히 하나의 직업인이 되기를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말이다. 꿈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각자의 자유지만 일과 관련해서 꿈을 직업인으로 국한해 사용하는 습관적 표현은 고치는 것이 어떨까? 이것은 꿈에 대한 정의의 문제를 논함이 아니다. 꿈의 참 의미를 이해하고 사용해야 좀 더 나은 사회가 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꿈을 꾸며 살 것인가?
일에 관한 한 이 용어는 ‘내게 주어진 재능을 어떻게 발휘하여 이 사회―자기 자신을 포함한―에 선한 영향을 미치며 살 것인가’라는 의미로 쓰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꿈이야말로, 한 번의 쟁취로 마감되는 것이 아닌, 끝없이 내 인생이 다할 때까지 계속해서 이루어 가는 꿈이 될 것이다. 이랬을 때, 비로소 직업(인)은 목표가 아니라 수단이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그 직업인이 되어 그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다.
산을 오른다고 가정해 보자. 산 정상을 향한 등산로는 여러 길이다. 산을 올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산 초입에 떡 하니 서 있는 등산로 전도(全圖)를. 친절하게도 여러 등산로를 표시해 놓았다. 1 길, 2 길, 또는 A 길, B 길 등등. 한적한 산행을 원했는데 1 길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듯하면 2 길로 가면 되고, A 길보다 B 길이 낫겠다 싶으면 B 길로 가면 된다. 어느 길로 가나 산을 오를 수 있고 정상에 다다를 수 있다. 꿈은 정상이고 직업은 그 정상을 오르는 등산로와 다름없다고 생각하면 적절한 비유가 될까. 꿈은 수단보다 좀 더 높은 차원의 이상이다. 단순한 예로, 의사가 꿈이 아니라, 의사의 근본적인 역할, 이를테면 의사가 되어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낫게 해 주고 싶다는 바람이 꿈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럴 때 직업인으로서 의사가 되지 못한다 해도 꿈은 없어지지 않는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낫게 해 주는 다른 일을 찾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예컨대 고통을 줄여 주고 질병을 치료해 주는 약을 개발하는 연구원이 된다거나, 좀 더 넓게 보면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한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는 관련 업종에서 일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직업은 인생을 살아가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수단이 목표가 되면 실제 그 상위에 있는 인생의 참된 목표를 추구하지 못하는 건 차치하고 수단에 목을 매는 우를 범하게 되고, 심지어 그 수단을 쟁취하지 못하면 커다란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로 인해 좋지 않은 상황에 빠지는 경우를 우리는 주변의 이야기나 뉴스로 숱하게 접해 왔다.
등산로의 예를 다시 들어 보자. 보통 등산객의 최종 목적지는 정상이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는 길은 다양하다. 처음에 A 길을 선택했을지라도, 상황에 따라 B 길도, C 길도 내 길이 될 수 있다. 이 말은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결과를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결과론적 논리와는 다른 의미다. 물론 인생이라는 길이, 마음만 먹으면 이 길에서 저 길로 쉽게 바꿀 수 있는 등산로와 같을 수는 없다. 다만 직업 그 이상의 가치를 꿈으로 삼아 인생을 좀 더 넓은 안목으로 바라보고 유연하게 대처함이 좋다는 뜻이다. 하나의 길을 택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지만 혹여 그 길을 가지 못하더라도,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길에 목을 매는 일은 없지 않겠는가. 물론 그것이 그 길을 가기 위한 노력을 무디게 만드는, 반작용을 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살면서 꼭 어떤 구체적인 꿈이 있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앞 단락에서 등산객의 최종 목적지는 보통 정상이라고 말했지만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그냥 자연을 만끽하기 위해 산을 타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직업 그 이상의 가치를 좇아 열심히 살아가는 인생이야 당연히 의미 있는 삶이지만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혹 그런 꿈이 없다 하더라도 그냥 주어진 상황에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이다. 아니, 그런 삶 자체가 꿈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다른 등산객에게 피해를 주거나 산을 훼손하는 등 나쁜 목적으로 산을 타는 등산객이 아니라면 모든 등산객의 산을 타는 행위는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구체적으로 표현할 꿈이 없다 해도 ‘나는 왜 이럴까?’라고 생각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산을 타면서 자연과 소통하며, 오가는 등산객들과 웃음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그 등산은 행복할 것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을 하면서 스스로 행복을 느끼며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영향을 줄 수만 있다면 그 일 자체를 꿈이라 부르는 것에 문제를 제기할 이유도 없다. 그 일은 이미 꿈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지닌 것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고 좋아할 일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경쟁에서 내가 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이룰 수 있는 본질적 가치를 꿈으로 삼는다면, 꼭 그 일이 아니어도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다른 길을 선택하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보통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이 옳은 듯 어디에서나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듣기 좋은 말에 불과한 얘기다. 어떤 이의 성공 사례를 일반화해 현실과 어긋나는 바람을 품게 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권고가 아니다. 이는 상대방에게 욕심을 불어넣어 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무작정 큰 꿈을 꾸는 게 아니라 내가 구현해야 하는 가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바탕으로 꿈을 꾸어야 한다.
살아가면서 우리에게는 이루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것이 무엇이든 일에 관한 한 꿈은 좀 더 상위의 차원,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꾸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