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quals
약을 먹어서라도 기억해내고 싶다. 늘 잠에서 깨던 아침이라 눈을 떴는데, 뭔가 허전하다. 이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씻어내려 찬물로 샤워를 했지만, 오히려 더욱더 나를 감싸고돈다. 누군가 나를 좀 도와줬으면, 안길 수 있고, 기댈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내가 무슨 희귀병에 걸린 걸까 싶었던 찰나에 너를 보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눈동자, 작지만 움켜쥔 주먹이 마치 SOS처름 너의 상태를 알게 해줬다. 매일 자던 시간에 자고, 일어나던 시간에 일어나고, 또 찬물로 샤워를 하다가 거울을 보니 그것에 비친 내 입술도, 내 손도 떨고 있더라.
어느 날 밤엔가, 네가 “기대고 싶다”고 했다. 내가 “기대”라고 했다. 매일이 다른 느낌이란 거, 자꾸 다른 감정이 생기는 게 낯설고 죄짓는 것 같아서,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감정이 없는 게 편하니까. 감정을 누르려고 죽을힘을 다했다. 들키면 안 됐으니까. 죄를 짓는 것 같았다. 잘못된 감정인 것 같았다. 하지만 느낌에 잘못된 건 없었다. 이건 자연스러운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두려웠다. 너무 두려웠다. 네가 “서로 거리를 둬야겠다”고 했다. 내가 “난 못해”라고 했다. “네가 곁에 있는데 안 본 척할 수 없어. 옆에 너를 두고 내 감정을 숨길 수 없어.”
내 옆에 앉으라고 손바닥으로 툭툭 의자를 치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사랑이 어떤 건지 상상도 못 했는데, 정말 신기했는데. 폭풍처럼 내가 나를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휘감았는데. 사랑해서, 다 주고 싶었는데. 내가 원하는 건, 너랑 같이 도망가는 거였는데. 근데 사실 잘못됐다는 생각도, 두려움도, 현실을 부정하는 생각도 다 틀린 것이었다. 나는 저 먼 곳에 있는 다른 우주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사실 답은 내 앞에 있었다. 네 눈을 통해 본 너의 우주에서 그냥 같이 있자고, 좋은 만큼 함께 하자고 했다. 이제는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기억은 남아있다. 그런데 단지 기억을 더듬는 것만으로도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