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킹>

The Lion King, 1994

by 박종승


프라이드 랜드의 왕 무파사와 사라비의 사이에서 심바가 태어난다. 심바는 본인이 어떤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는지도 모르지만 프라이드 랜드의 가장 높은 곳에서 수많은 백성들을 내려다본다. 무파사의 동생으로 서열 2위였던 스카는 새파랗게 어린 심바에게 밀려 왕위를 차지하지 못한 것에 분노한다. 스카는 심바를 꾀어 무파사를 위기에 빠뜨리고 왕위를 차지한다. 무파사의 사고가 자신의 탓인 것 같아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 나설 수 없어 프라이드 랜드를 떠난 심바는 또 다른 정글에서 티몬과 품바를 만나 근심 걱정 없는 삶, ‘하쿠나마타타“를 외치며 살기에 이른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흐르고 심바가 성인이 됐을 어느 날, 사냥을 위해 나왔던 날라를 만난다. 날라는 심바와 결혼을 하기로 돼있었던, 훗날 여왕이 될 인물이었다. 스카의 통치 아래 날로 망가져가는 프라이드 랜드로 돌아와달라는 날라의 말을 듣고 심바는 자신의 출생에 대해, 지금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기에 이른다.

<라이온킹>에서의 비극이자 클리셰는 이미 500년 전 셰익스피어의 <햄릿>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숙부 클로디어스가 햄릿의 아버지이자 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다. 심바처럼 어렸던 햄릿은 어찌해야할지 혼란스러워하면서 동시에 클로디어스에 대한 복수심이 마음 한 켠에 자리한다. 햄릿이 다시 왕위를 쟁탈하는 복수의 과정까지 <라이온킹>과 꼭 닮아있다. 그리고 이것은 제 91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미술상, 음악상, 의상상을 수상했으며, 작품상을 포함한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블랙팬서>(2018)에서도 볼 수 있다. 티찰라는 와칸다의 왕자이며, 무파사의 프라이드 랜드처럼 모두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었지만 선왕 티차카도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다. 또한, 와칸다 왕국의 중요한 자원인 비브라늄을 외부로 빼돌리려던 숙부 엔조부가 있었고, 그의 아들 킬몽거와 티찰라가 대립한다. 이는 <라이온킹 2>(1998)에서 스카의 아들 코부가 등장해 다시 한 번 심바와 대립하는 구도와 동일하다.


나는 거기에 더해 <기생충>을 볼 수 있었다. 심바는 일국의 왕자로 태어났으며, 자신이 책임질 수 없는 자리라 생각해 도망쳤지만, 결국 그 자리로 돌아간다. 돌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라이온킹>이 시작하며 오프닝 주제곡은 “자연의 섭리가 정해져있고, 각자 모두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그것에 따라야 한다고 한다.” 심바는 자신의 정해진 운명대로 왕위에 올랐다. 기택과 기우는 자신의 운명대로 반지하로 회귀했다. <기생충>과 우리가 사는 사회에 왕이니, 백성이니 하는 계급은 없다. 하지만 신분은 있다. 왕위 세습은 없지만, 신분은 세습된다. 디지털화 된 현대의 권력은 어디에도 없고, 그러면서 어디에나 있다. 계급은 없으나, 신분은 있다. 김씨 가족은 박씨 가족의 집을 탐했고 여러 계략을 짰으나 결국 반지하로 회귀했다. 박씨네 지하에 살고 있던 근세는 지난날을 떠올리며 “아예 여기서 태어난 것 같기도 하고, 결혼도 여기서 한 것 같고, 그래서 말인데 나 여기서 계속 살게 해주쇼”라고 한다. 봉준호 감독은 기우가 그 저택을 사기 위해 얼마간 일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이 생겨 최저임금 기준으로 계산을 해봤을 때 500년이 걸린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한다. 기택과 근세는 지하에서 반지하, 반지하에서 지상으로, 다시 2층으로의 간격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음에 체념하고, 그 위치에 머무르기로 한다. 태어날 때부터 가진 신분 상승의 정해진 폭을 좀처럼 초과하기가 쉽지 않다. 근세가 기우의 머리를 산수경석으로 두 번이나 내리치는 장면은 정신 차리라고, 꿈 깨라고 하는 것 같다. 마치 날라가 심바를 일깨워주듯.


스카, 킬몽거, 기택네와 근세 부부가 절대적인 악을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입지에 반향을 일으키고 싶었을 뿐. 무파사, 티찰라, 박 사장에겐 그것이 넘지 말아야할 “선”이었고, 나름대로 선을 유지하며 지냈지만, 앞서 언급한 셋이 그 선을 넘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선을 넘은 것은 큰 과오였고, 원래 자신이 있던 자리로 돌아간다.


다시 <라이온킹>으로 돌아와서, 심바는 왕위에 올라있던 무파사의 모습과 꼭 닮은 모습으로 성장해 돌아와 세습되어 온 왕권을 되찾는다. 과정에서 스카의 행위가 잘못된 것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너무나 보수적인 세계관을 미화해놓은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블랙팬서>에선 그래도 이 클리셰들을 흑인과 여성 캐릭터를 주류로 내세워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였으며, <기생충>에선 기택네와 근세에게 자신의 위치를 인정 혹은 자포자기하는 것만이 허락돼있었다. 디즈니는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실사화를 통해 지난 과오를 씻으려 하고 있다. 2019년의 <라이온킹>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


봉준호 감독이 영향을 받았다는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의식>(1995)에서 소피는 전과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저택의 가정부로 들어간다. 게다가 글을 읽을 줄 몰랐던 소피를 주인 부부는 그것을 알고 굉장한 우월감에 빠져든다. 소피는 돈만 많지 대단할 바 없었던 그들의 무시를 참다가 결국 폭발해 총으로 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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