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oe, 2018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영화 보는 내내 외쳤다. <라이크 크레이지>(2011), <우리가 사랑한 시간>(2013), <이퀄스>(2015), <뉴니스>(2017)를 연출한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또 다른 로맨스 영화 <조>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예사의 것들과는 다른 참신한 소재를 취해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게 건드린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전작들과 비교해 조금 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드레이크 도리머스가 현재보다 기술이 훨씬 발달한 미래를 다룬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닌데 감흥이 전작들만 하지 못하다.
단순히 인공지능 로봇이 발명되는 것을 넘어서, 인간과 인간이 관계를 맺음에 있어 그들의 관계가 긍정적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정확한 수치로 표현해줄 만큼의 기술이 발달했다. 조(레아 세이두)는 연구소의 슈퍼바이저다. 연구소를 찾아와 자신들의 수치를 알고 싶어 하는 이를 안내하기도 하는데, 문득 자신도 테스트에 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 가지 질문을 거쳐 상대방이 자신의 어떤 면을 봐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답을 하려 입을 떼는 찰나 오프닝이 그렇게 끝난다. 연구소의 목적은, 그리고 발명품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서 얻을 수 없는 부분을 대체하기 위함이다. 인간이 다른 인간과의 관계에서 상실감을 느끼고 좌절할 때 자신들의 것을 이용해 불행해지는 것을 최소화하자는 것이다. 조는 연구소의 대표 콜(이완 맥그리거)을 짝사랑하고 있다. 앞서 진행했던 테스트도 콜과 연인으로서 관계가 얼만큼의 가능성이 있는지 가늠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변수는, 조금은 뻔했지만 조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것이었다. 인간이 자신들의 불행을 막기 위해 로봇을 자아가 있는 로봇을 만들었는데, 그럼 로봇의 불행은 무엇이 대체해줄 수 있을까. 로봇이 감정을 갖는 건 어떤 것일까. 약을 먹음으로써 첫사랑의 설렘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 때의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다면 어떨까.
하지만 그 설정이 굉장히 신박한 무엇은 아니다.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지만 우린 타로를 보러, 궁합을 보러 간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은 그 점술을 얼마나 믿고 따를 것인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타로점을 봤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헤어질 것인가. 복용하면 두어 시간은 첫사랑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베니솔은 역시 지난 후에 현타만 더 세게 올 뿐이다. 자신과 적합하다는 상대방과의 만남만이 관계에 있어 정답이 될 수 있을까. 상대방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성,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의 좌절감을 피하기 위해 영화 속 사람들은 관계 연구소의 제품들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인다.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이 안 좋아질 수 있는 여지가 없기 때문에, 영화 속 관계들은 모두 평탄하기만 하기 때문에 단조롭고, 때로는 지루하게까지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그녀>(2013)가 여러모로 많이 떠오른다. 운영체제 사만다는 대화와 교감에 있어 완벽한 존재였지만, 실존하지 않는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조는 몸이 있고, 얼굴이 있어 그 감정을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역시 그렇기에 비교적 더 단조로운 전개가 펼쳐진다. 조가 인간이 만든 로봇이라서, 자신을 만든 창조주를 사랑해서, 그 창조주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만들었기에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거 같아서, 애초에 자신이 그를 사랑하게끔 프로그래밍 된 거 같아서, 인간과 로봇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서, 조와 콜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를 두고 여러 이유를 대며 오래간 시름한다.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전작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보자. 장거리 연애를 하며 시간을 되돌리길 바랐던 제이콥(안톤 옐친)과 애나(펠리시티 존스)가 있었고, 자신과 공통점이 너무 많아 심지어는 영혼까지 닮았다는 생각이 들게 한 키이스(가이 피어스)와 소피(펠리시티 존스)가 있었다. 감정이 통제된 상황에서 감정에 충실하려는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가 있었고, 온라인으로 만나 인스턴트식 사랑을 즐기던 마틴(니콜라스 홀트)과 가비(라이아 코스타)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본능이, 속마음이 이끄는 방향에 충실했다. 다양한 방식이지만 비슷한 제약이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조가 인공지능 로봇인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영화적인 설정에 불과하다. 물론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로봇과 사랑에 빠지게 될 일이 아주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말이다. 그런 적 나만 있을까. 내 인생의 전부고, 내 인생의 목표처럼 여기던 이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내 옆에 있어주길 간절하게 바란 순간이, 하지만 간절한 내 바람대로 되질 않은 채 시간이 흐르고 내가 과연 진짜 사랑하고 있는 건지 의문을 갖게 되는 순간이, 관계를 시작하고 시간이 흘러 어느 샌가 처음에 느꼈던 감정과 마음이 지금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이, 나 정말 너무나 그 사람을 사랑했는데, 사랑해서 만남을 가졌는데,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로 인해 그 만남과 사랑했던 내 마음을 부정하게 될 순간이, 그 땐 정말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내 생각에 변화가 생겨 그건 진짜 사랑이 아니라고 느낄 순간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위해 여러 연구를 진행했던 콜이지만 그는 사랑에 있어 결함이 있는 인물이었다. 결혼에 실패했으며, 홀로 지낸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것을 달래줄 제품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조는 자신이 로봇이라서 인간처럼 눈물을 흘릴 수 없다는 설정으로 대표되는, 사랑하는 콜이 인간이라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들이 자신의 시스템엔 존재하지 않음을 뒤늦게 인지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콜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조의 마음, 그녀의 외모 같은 것들이 아닌 그 결함을 동정하고 연민하는 것에서 마음이 시작했다. 자신과 비슷한 상대방의 상황에 공감했던 것이다. 콜은 자신이 자초한 콜의 결함에 자책감을 느끼며 다른 것들로 그것을 채워주려 많은 것을 준비한다. 그 과정에서 조에게 일어나는 긍정적인 변화를 보며, 지속되는 관계를 통해 콜의 마음도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콜이 조와의 것이 가짜라고 느끼는 순간은 역시 다시 한 번 조가 로봇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였다. 자신과 다름을 인지는 했으나,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콜은 뻔한 실수를 되풀이한다. 다시, 오프닝에서 조는 테스트에 임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어떤 면을 봐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이 못 보는 면을 봐줬음 좋겠다.”고 답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을 로봇이 아닌 하나의 주체로서 봐주길 바랐을 것이다. 로봇이라서 교감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길 바랐을 것이다. 콜은 그것은 잠시 받아들이는 것 같았지만, 조가 교통사고를 당하며 내부 부품을 교체하려 수술 혹은 수리를 할 때 다시 한 번 실감한다. 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인간과 로봇이라는 차이를 제외하곤 조가 옆에 있을 때의 감정들이 결코 가짜가 아니었음을. 베니솔팅을 한 상대에게 콜은 계속해서 말했다. 조에게는 용기가 없어 결코 하지 못했던 말들을.
“그녀는 인조인간입니다. 난 그녀를 정말 사랑하고 싶었어요. 때때로 그녀가 정말 진짜같다고 느꼈죠. 하지만 난 그녀를 다른 존재로 볼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그녀를 내 마음에 들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만약 계속 이어갔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어떤 존재든 상관 않고 말이죠.”
콜이 오랜 방황 끝에 조를 찾아간다. 교통사고 이후에서처럼 다시 한 번 그녀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당신이 진정 날 원한다면 내가 진짜라고 말해 봐요. 당신에겐 내가 진짜라고.” 콜이 답한다. “지금 내겐 내가 상처 준 사람이 보여. 내가 살아하는 사람. 내가 잃어버렸던 사람. 당신은 진짜야. 내 평생의 그 무엇보다도.”
콜이 조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로봇이라는 한계를 거두자 조는 다시 한 번 더 진화한다. 상대방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해야 우리의 관계에도 발전이 있을 것을 말하는 건 아닐까.
영화의 시작과 끝에 시가렛 애프터 섹스의 <K>가 반복해서 나온다. 그 노래의 가사가 이 영화에서 드레이크 도리머스가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조와 콜은 그런 마지막을 맞이하지 않았을까.
“Stay with me. I don`t want you to leave. I`ve been waiting for you to slip back in bed. When you light the cand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