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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

by 박종승

황량한 사막 위를 걷는 사내가 보인다. 사막에 어울리지 않게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또 어울리지 않게 빨간색 볼캡을 쓰고 있다. 그리곤 또 어울리지 않게 파란 뚜껑이 달린 물병을 들고 있다. 이질적이고 부조화스럽지만 트래비스에겐 상관없다. 그는 4년 간 가족의 곁을 떠나 이렇게 떠돌고 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랬다. 심지어는 본인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라도 시간이 흐르면 적응을 하게 마련이다. 트래비스는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람과 접촉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는 단절 된지 오래일 것이다. 여러 이유로 산티아고로 대표되는 순례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그간의 삶에 너무 지쳐서, 새로운 목표를 찾기 위해서 등 여러 이유로 순례길에 오르지만 이내 걷는 게 일상이 되고, 걷는 게 전부인 삶이 된다고들 한다. 트래비스는 그 황량한 사막 위에서 그렇게 걷고 걸었던 삶이 4년이 됐고, 그게 일상이 됐을 것이다. 사막을 걷는 삶에서 다른 이들이 말하는 도시에서의 보편적인 삶이 오히려 이질적인 것이 됐을 것이다.


트래비스는 4년 만에 발견되고 동생 월터는 그를 찾아와 “죽은 줄 알았어.”라고 말한다. 가족조차 그의 행적을 몰랐던 4년이 지났다는 말이겠다. 트래비스는 동생네 부부의 집으로 향한다. 그곳엔 자신의 아들 헌터가 있었다. 3살 남짓했던 헌터는 트래비스의 존재를 몰랐고, 월터 부부를 부모님으로 여기며 자랐다. 아직도 어린 나이지만 헌터는 두 명의 아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트래비스가 헌터에게 다가가려 여러 시도를 하지만 번번히 무산된다. 하지만 둘은 자신의 아내,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로 연대한다. 트래비스처럼 오래 간 행적이 묘연한 제인이 바로 그다. 4년 만에 나타나 자신이 생부라고 말하던 트래비스는 다시 제인을 찾으러 떠나겠다고 한다. 헌터는 간신히 트래비스의 존재를 받아들였는데 다시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는 듯, 혹은 자신의 생부와 생모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는 듯 트래비스의 여정에 동참한다.


영화는 텍사스의 사막에서, LA의 월터네 집으로, 그리고 다시 제인을 찾으러 휴스턴으로 여정을 떠나는 전형적인 로드무비 같지만, 이 영화에는 목적지가 분명히 명시되지 않고, 지나온 시간에 대해 묻지 않는다. 트래비스는 4년 전 도망치듯 집을 나왔다. 제인 역시 마찬가지였고, 어린 헌터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둘의 행동으로 인해 희생됐다. 트래비스는 “머물 수 없는 건 과거를 치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트래비스가 계속해서 걷고 또 걷는 건 어딘가로 향할 목적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나온 시간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함일 것이다. 그 도망치는 삶이 계속됐기 때문에 어느 순간 자신이 왜 도망치고 있는가에 대해 잊은 순간도 있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헌터를, 제인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가장으로서,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줬던 상처의 시간을 뒤로하고 그들을 안아주기엔 너무 자신이 못나보였을 수 있다. 감당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을 수 있다. 트래비스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해서 저질렀던 자신의 과오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내와 아들의 만남을 주선하고 떠난 것이겠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역설이 이런 게 아닐까.


트래비스에게 있어 텍사스의 파리란 가족과 함께 살고자 했던 장소이면서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은 붉은색으로 물들어있다. 다시, 트래비스는 오프닝에서 어딘가 어울리지 않게 붉은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들 헌터와 조금씩 교감을 시작할 때에도 그들의 옷이나 소품엔 붉은색이 점차 물들고 있었다. 과거를 회상하며 본 비디오 속에서 역시 붉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처음 만난 제인은 붉은색 차를 타고 있었고, 역시 트래비스가 핍쇼룸에서 제인을 처음 봤을 때 붉은색의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제인과 포터의 만남을 주선하고 홀로 떠나는 트래비스의 뒷모습에 자동차의 붉은 후미등 같은 것이 카메라에 비친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겠으나, 자신이 제인에게 했던 잘못된 사랑의 방식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트래비스는 4년 만에 핍쇼룸에서 만난 제인에게 다른 남자들과 업소 밖에서도 만나냐고 물었고, 과거의 그는 제인을 너무 사랑해서, 지나친 소유욕 탓에 발목에 방울까지 달았었다. 자신의 과오를 잊기 위해, 씻기 위해, 혹은 4년이란 시간 동안 걷고 또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에게 남아있는 자신의 지질한 면모로 인해 가족에게 또 다시 상처를 안겨주기 싫어서 다시 한 번 도망치는 것일 수 있다. 어떤 이유가 됐든 트래비스는 오늘도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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