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종승 Mar 28. 2021

<스파이의 아내>

スパイの妻,Wife of a Spy, 2020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이나 하마구치 류스케가 각본을 써서 그런지 나는 <스파이의 아내>를 보며 <아사코>(2018)가 내내 떠올랐다.


1940년을 배경으로 시작하는 영화에서 무역상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는 만주에 갔다가 목격한 참상을 보고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한다반역 행위이고어쩌면 자신의 안위마저 위험해질 수 있기에무엇보다 남편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그의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영화의 제목은 <“스파이의 아내>이나누가 스파이인지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는다제목과 익숙한 이름들을 보고 스릴 넘치는 첩보물을 기대했다면 의심할 것 없이 단조로운 서사에 하품을 참기 어려울 것.     

다시영화의 제목은 <“스파이의 아내>이나영화는 <스파이의 아내”>에 더 집중한다유사쿠를 스파이라 볼 수도 있지만정작 그는 스파이가 아니라고 말한다어느 편에 서는 것도 아니고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도 아닌 모두의 정의를 위해 움직이는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이라는 것이다단지 유사쿠는 극 중에서 스파이처럼 어느새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홀로 남겨진 사토코가 어떤 혼란을 겪고어떤 믿음을 갖고어떤 결심을 하는가에 더 집중한다관객의 눈에도사토코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유사쿠와 여러 방면에서 관계가감정선이 형성되는 묘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사코>에서 아사코(카라타 에리카)로부터 사라져 버린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 그리고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그아사코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바쿠인데 자신이 료헤이라 말하는 그를 두고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면서도 사토코는그리고 아사코는 그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인다그리고 그것은 사토코도 아사코도 단지 운명인 차원 그 이상의 감정으로 느낀다. <아사코>에서도 잠에 들고 깨는 것이 어떤 사건의 경계였다면, <스파이의 아내>에서도 그렇다영화 안에서 사토코가 꾸는 꿈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며후반부에는 오랜 시간 뒤로 점프하게 되는 블랙아웃도 있다.


사토코는 이 블랙아웃을 기점으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그러나 그가 정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의 여부는 바쿠냐 료헤이냐의 선택처럼 관객의 몫이 된다극 중 인물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사토코가 유사쿠와의 안위를 위해 선택한 증거물의 원본과 번역본이 그랬고유사쿠가 사토코에게 부탁한 필름도 두 개의 버전이 있었다그리고 영화 속의 영화가 있었다어려서는 사토코와 친구였지만 시간이 흘러 헌병대장으로 온 츠모리(히가시데 마사히로앞에 불려 간 사토코는 미국으로 몰래 가져가려던 필름을 빼앗긴다가져가려던 건 관동군의 생체실험이 담긴 영상이었으나유사쿠는 사토코에게 자신과 함께 만든 영화의 필름을 맡겼다전운이 감돌던 시기, 8mm 필름 안에 담긴 홈메이드 영화가 나와도그리고 다시 같은 필름 안에 담긴 참상이 음소거된 채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유사쿠는 그렇게 사토코를 남겨두고 국제사회로 나아갔고남겨진 사토코는 자신이 총에 맞아 죽는 영화로 달려든다.


다시사토코는 그래서 정말 아팠던 것일까그녀의 말처럼 완전히 멀쩡한 것일까영화 속 창문들은 창밖의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특히나 유사쿠와 사토코의 집에 달려있는 창문은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것 같기도 하다부부가 찍은 흑백 필름 속에선 하얀 섬광으로만 표현될 뿐이다흔히 창문에 빗대어 표현되는 하얀 스크린만이 바깥세상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사토코는 그런 스크린으로 달려들었다그녀의 말처럼 단지 이 나라에서는미쳤을 수도 있다.


혼란스럽지만 아사코도 사토코도 그런 현실을 피하지 않는 인물들이다자신의 선택이 바쿠인지 료헤이인지 헷갈릴 때 그녀는 방파제 위로 올라가 그 너머의 바다를 직시하는 인물이었고사토코는 문을 활짝 열어 불바다가 된 세상을 목도하는 인물이었다. <스파이의 아내>는 그렇게 자신이 선택한혹은 선택할 무엇을 대면하는 영화였다그래서 영화의 얼굴인 아오이 유우의 열연은 마지막 장면에서 더욱 비범하게 느껴졌다.


#스파이의아내 #아오이유우 #타카하시잇세이 #히가시데마사히로 #하마구치류스케 #구로사와기요시 #영화

작가의 이전글 <로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