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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승 Mar 17. 2021

<로맨스>

Les Amours D'Astree Et De Celadon, 2007

<몽소 빵집>(1962)로 시작한 여섯 도덕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80년대의 “희극과 잠언”, 90년대의 사계절 이야기까지 에릭 로메르는 사랑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었고그의 마지막 작품인 <로맨스>는 그것들의 집대성 같은 느낌을 줬다.


집안의 반대로 아스트레(스테파니 크라옌코르)와 셀라동(앤디 질렛)은 서로를 사랑하지만사람들 앞에선 서로 아무 사이가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셀라동은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할 법한 여인과 연인인 척 연기를 하는데 그 연기가 너무 지나친 나머지 아스트레의 화를 사고 만다아스트레는 셀라동을 나무라고자기가 원할 때까지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한다셀라동은 충격에 강물로 뛰어들고 만다그렇게 찾을 수 없게 사라진 셀라동을 사람들은 죽었다고 여기게 된다한편 셀라동은 님프들에 의해 살아나게 됐지만아스트레에게 갈 수 없다도를 넘은 셀라동의 순진함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지만로메르는 다시 모럴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수집가>(1967)이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1969), <만월의 밤>(1984), <겨울 이야기>(1998) 등을 관통하는 믿음그중에서도 사랑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어기지 않는 정조에 대해 말한다셀라동이 아스트레에게 가지 못하고 숲 속에서 머물 땐 <내 여자 친구의 남자 친구>(1987)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더할 나위 없는 행복감을 느끼지만 눈물이 나던파비앙과 한 없이 가깝게 있고 싶지만 내가 싫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던 블랑쉬의 장면. <로맨스>는 프랑스 중남미의 포레즈 고원에서 17세기의 신화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했다셀라동은 아스트레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그녀의 이름을 딴 신전을 만든다.


<겨울 이야기>의 펠리시는 샤를르를 언젠간 만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살았다아스트레는 셀라동에게 모질게 말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슬픈 나날을 보내던 그녀의 앞에 사제 복장을 한셀라동과 꼭 닮은 이가 나타난다아스트레는 신께 기도한다이게 꿈이 아니길. <녹색 광선>(1986)의 델핀느가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도 그랬다. “여섯 도덕 이야기는 사랑을 포함한 감정이 극에 달했을 때에 도덕이라는 잣대를 들이밀며 이야기를 끝냈다. “희극과 잠언에선 그 이후의 시점에서 시작해 갈등과 선택에 대해 말했다. <로맨스>는 아스트레가 겪었던 찰나의 순간을 제외하곤 사랑에 대한 헌신에 집중한다셀라동은 아스트레의 이름을 딴 신전에 사랑의 계명을 적는다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에서 시작했을지 모를 로메르의 현실적인그러나 신화적 요소를 가미한 영화에서 더 이상 불신과 질투배신 같은 건 없고 사랑을 절대적인 것종교적인 것의 지위에 올려놓는다.


완벽한 연인이 되려면 끝없이 사랑하라지고한 사랑만이 값지며옹졸함은 정조보다 배신에 더욱 가깝도다한 곳에서만 사랑하고이 사랑의 모든 면을 사랑하라추구하는 행복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여야 한다.”


에릭 로메르는 그간 바닷가에서휴양지에서도시에서 여러 모양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고마지막엔 중세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신비한 힘을 지녔을 것 같은 떡갈나무가 있는 숲에서 그 사랑이 이루어지게 했다로메르의 많은 영화를 봤음에도 결코 무어라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이라는 것어서 그의 다음 영화를 보며 그것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아쉽다한동안 아스트레를 보지 못했던 셀라동은 우연히 숲에서 잠들어 있는 그녀를 보고 온몸에 눈이 달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많은 눈으로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잘 담을 수 있게 말이다로메르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나 역시 그러했다그러나 내 몸에 눈은 둘 뿐이고기억 속 이미지들은 지금도 날아가고 있다그것이 너무나 아쉽지만보고 있어도 보고 싶지만그런 아쉬움을 주는 영화가 좋은 영화가 아닐까다음에 다시 보게 될 때를 고대하며.


#에릭로메르 #앤디질렛 #스테파니크라옌코르 #에릭로메르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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